[하종강 칼럼] 어떻게 쌓아 온 노동교육인데..

한겨레 2022. 9. 20.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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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칼럼]물의를 빚는 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이른바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교육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는 말을 쉽게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전혀 교육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것 상당수는 이미 학교에서 열심히 교육하는 내용일 때가 많다. 학교에서는 세월호 사건 뒤 연간 51시간 안전교육도, 15시간 성평등 교육도, 약물·사이버중독 예방 교육도, 폭력 예방 교육도, 환경교육도 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이 2013년에 발간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교과서 4종.

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2019년 학교비정규직노조가 파업했을 때다. 라디오 경제프로그램의 인터뷰에서 “파업이 계속되면 점심 먹는 데 너무 불편하지 않겠어요?”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한 실업계고 학생은 이렇게 답했다. “불편한 것은 맞는데, 제가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그분들이 이 파업을 하지 않고 평생 이렇게 힘들게 살아오셨던 것을 또 꿋꿋이 견디면서 사시는 게 맞나? 이 파업이 잘 돼서 그분들이 정규직이 되면 더 맛있고 더 즐거운 급식시간이 될 텐데…. 우리가 불편한 것은 정말 일시적이니까 감수하는 게 그분들도 더 힘을 내실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의 이런 변화를 보는 시선은 크게 둘로 나뉜다. 몇년 전부터 도입된 특성화고 노동교육의 성과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불순한 교사들이 학생들을 물들여 나타난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라고 우려하는 시각도 여전히 존재한다.

노동교육이 교과서에 하나의 독립된 단원으로 등장한 것은 2013년 경기도교육청이 개발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교과서부터다. 초등학교 3·4학년용과 5·6학년용, 중학교용, 고등학교용 <민주시민> 교과서 4종을 발간했다. 교과서마다 노동 단원이 포함됐다. 집필자인 교사들은 우리 학교 연구실에서 몇차례 모임을 가졌고, 최종 원고를 정리하는 단계에서는 글쓰기 강사가 참여해 함께 원고를 손봤다. ‘급식 아주머니’라는 용어가 문제가 됐을 때 “학생들에게 가장 친숙한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는 바람에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라고 고치는 데만 몇시간 토론이 필요했다.

심의 과정을 거치며 수정 요구가 너무 많아서 “집어치우자”는 말까지 나왔지만 “첫번째 시도라는 것에 의미를 두자”고 서로 마음을 달래가며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 그 교과서가 세상에 처음 나온 날 집필자 중 한분인 장윤호 선생님이 “드디어 오늘 교과서가 나왔어요!”라고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전화하며 보내준 문자가 지금도 소중히 보관돼 있다. “여러분들 덕분에 교과서가 나오게 됐습니다. 비록 충분치 않고, 내용도 미약하지만 많은 분의 관심과 지지 덕분에 이나마도 가능했습니다.”

2015년 개정 교육과정부터는 일반 초·중등학교에 노동교육이 포함됐고 문재인 정부 들어 교육부에 민주시민교육과가 신설됐다.

물의를 빚는 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이른바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교육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다. 현장의 이의진 선생님 글에 의하면, 사람들이 “전혀 교육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것 상당수는 이미 학교에서 열심히 교육하는 내용일 때가 많다. 학교에서는 세월호 사건 뒤 연간 51시간 안전교육도, 15시간 성평등 교육도, 약물·사이버중독 예방 교육도, 폭력 예방 교육도, 환경교육도 하고 있다.

교육 내용이 부실하다고 지적하겠지만, 교육 담당 교사가 내용을 준비하기 위해 자신을 갈아 넣다시피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눈물겹다. 나이 지긋한 사람이 교육에 관해 뭔가 지적하고 싶을 때는 자신이 학교에 다녔던 수십년 전과 지금 교육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선진국의 앞선 노동교육과 민주시민 교육을 일찍 깨달은 교육정책 담당자들과 일선에서 앞장서 교육을 실천해온 교사들의 땀과 눈물이 그나마 그러한 변화를 가능케 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학교 노동교육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교육부 민주시민교육과를 폐지하고 인성체육예술교육과로 통합한다고 한다. 이미 경기도교육청은 민주시민교육과를 미래인성교육과로 바꿨다. 민주시민 교육이 희석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이름을 바꿀 필요까지 있을까.

2003년 서울시의회의 직업전문학교 행정업무감사에서 민주노동당 심재옥 의원이 “직업전문학교에서라도 노동교육을 실시하라”는 의견을 제시했을 때, 보수정당 의원들은 “이것은 노동운동을 유도하는 발언”이라며 “노동운동 하는 졸업생들을 파악해 데려다가 ‘인성교육’을 다시 시켜야 한다”고 반대했다. 보수세력이 생각하는 ‘인성교육’이란 고분고분 말 잘 듣는 노동자와 시민을 만들겠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지난해 발표한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계획에 포함돼 있던 ‘일과 노동의 의미와 가치’는 지난달 발표한 총론 시안에서는 빠졌다. 청소년들이 노동문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현상을 “불순한 교사가 물들인 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부의 교육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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