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영국 여왕 장례에 이어..'D-7' 아베 국장의 덫에 빠진 일본 자민당
영국 여왕 국장과 비교되며 여론은 더 악화
자민당 전 간사장 "일본인이라면 좋았다 생각할 것"
일주일 남은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국장이 기시다 후미오 정권에 덫으로 작용하고 있다. 자민당은 아베 전 총리의 후광을 입는 것을 기대하고 국장을 결정했으나 국장 날짜가 다가올수록 비판 여론이 확산되고 정권 지지율은 하락하고 있다.
교도통신이 지난 17~1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기시다 총리 지지율은 이전보다 13.9%포인트 급락한 40.2%를 기록했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46.5%로 지지한다는 응답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정권 지지율은 니혼게이자이신문 조사에서는 43%, 마이니치신문 조사에서는 29%였다. 모든 조사에서 지지하지 않는다는 여론이 더 높게 나타났다. 아베 전 총리의 국장 강행과 통일교 논란, 물가 상승 등이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오는 27일 열리는 국장은 아베 전 총리 피격 사망 엿새 만에 야당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내각회의에서 결정됐다. 직후부터 국장이 법적 근거 없이 추진되고 있으며 국민에게 추모를 강요한다는 논란이 일었다. 정부는 16억6000만엔(162억원)이라는 장례 비용을 미리 공개하고 국장 기간 지방 관공서와 학교에 조기게양을 의무화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여론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이 지난 17~1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장 반대 여론은 62%로 8월(53%)보다 9%포인트 올랐다. 엔저의 영향으로 8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1991년 이후 최대폭(2.8%)으로 오르는 등 생활비 위기가 가중되면서 국장에 대한 부정적 여론도 높아진 것으로 평가된다.
기시다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 국민의 국장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풀리지 않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은 지적한다. 아베 전 총리만 왜 특별대우하냐는 것이다. 일본에서 다른 자민당 출신 전·현직 총리가 사망했을 때는 가족장 뒤 정부·자민당합동장으로 장례를 치러 왔다. 이에 대해 기시다 총리는 아베 전 총리가 헌정사상 가장 긴 8년8개월 동안 총리직을 수행하며 나라에 헌신했기 때문이라고 답해 왔다. 니카이 도시히로 전 자민당 간사장은 지난 16일 방송에 출연해 “(국장이) 끝나면 반대하던 사람들도 반드시 (국장을 해서) 좋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일본인이라면”이라고 말했다.
자민당이 사상의 자유에 민감한 일본 국민의 정서를 가볍게 봤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치학자인 다카야스 겐스케 세이케이대 교수는 마이니치신문에 “2차 세계대전 전 일본은 국가가 가치 있다고 판단한 사람에게 국장을 치러주고 온 국민에게 상복을 입는 것을 강제했다”면서 이 때문에 전후 없어진 국장 제도를 근거 법령 없이 부활시키는 것에 국민이 반감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쟁 반대 시민단체가 지난달 31일 일본 국회 앞에서 진행한 국장 반대 시위에는 일본에서 보기 드물게 많은 인원인 약 4000명이 참가했다. 우에노 지즈코 도쿄대 명예교수 등 지식인들이 시작한 국장 반대 온라인 청원에도 40만명 넘게 서명했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국장 불참을 결정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국장도 아베 전 총리의 국장에 대한 회의론을 키웠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사망 다음 날인 일본의 한 트위터 이용자는 “이제부터 영국에서 진짜 국장이라는 것이 실시될 것”이란 글을 올렸다. 그는 “진짜가 지니는 무게감 앞에서 지금 이 나라 국민의 반수 이상이 회의적인 또 하나의 국장이 어떤 것으로 보이게 될 것인가”라고 주장했다. 그의 글에는 수만명의 일본인들이 호감을 표시했다.
압도적 추모 분위기 속에 치러지는 여왕 국장과 비교해 초라해 보이는 것도 고민거리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전 세계 500명이 참석했다. 반면 아베 전 총리의 국장엔 미국 해리스 부통령과 캐나다 트뤼도 총리 등 5명의 정상급만 참석할 예정이어서 국장을 통한 정상외교를 강조하던 기시다 총리의 입장도 궁색해졌다.
다카야스 교수는 “아베 전 총리가 7월 초순 총격 사건으로 사망한 직후에는 충격을 받아 감정적으로 국장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정부가 냉정하게 아베 전 총리의 공과를 평가하고 검토한 흔적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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