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대-일반대 역할 구분 필요.. '직업교육 기본법' 제정 시급"

박정경 기자 2022. 9. 20.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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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경기 이천시 청강문화산업대 신티크 창작실에서 이 학교 만화콘텐츠스쿨 학생들이 콘텐츠 제작 실습을 하고 있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제공

전문대교협, 대학체계 ‘학문-직업 재구조화’ 주장

안경·치기공·물리치료·뷰티 등

일반대 중복 개설로 영역 축소

하위법 없어 기본계획 수립 차질

재정확보 근거 등도 미흡한 실정

인구감소·지방소멸로 교육위기

지방대보다 전문대 현실 더 냉혹

윤석열 정부는 지난 5월 발표한 110대 국정 과제에서 ‘이제는 지방 대학 시대’를 약속했다. 지역과 대학의 협력, 대학 중심 산학 협력·평생교육 등을 통해 지방대를 살리고, 산업 전환기에 신기술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미 학령인구 급감에 따른 신입생 감소와 4차 산업혁명과 기술 발전에 따른 일자리 감소, 인구와 경제의 도시 집중에 따른 지방 소멸 가속화 등으로 우리 고등교육이 위기에 처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이 중에서도 특히 수도권 대학보다는 비수도권 대학, 일반대보다는 전문대의 현실이 냉혹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위기에 처한 고등교육을 살리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의 ‘균형’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과 함께 전문 대학가에선 ‘직업교육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가는 헌법에 보장된 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교육 대상에 따라 ‘교육기본법’에 정의를 내리고 각각 해당 기본법을 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직업교육만큼은 실질적인 기본법이 없다. 일례로 유아교육에 대해서는 교육기본법 제20조에 정의하고 유아교육법을 제정하고, 초·중등교육은 교육기본법 제9조에 학교교육에 대해 정의하고 초·중등교육법을 제정하고 운영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고등교육에 관해서는 제9조 학교교육 영역에서 언급하고, 고등교육법이 따로 정해져 있다. 평생교육 분야는 교육기본법 제10조에 언급되었고, 평생교육법을 제정했다. 교육기본법에 직업교육에 대해 언급한 조항은 제21조이지만 직업교육에 대해 정의되고 운영되는 실질적인 기본법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하위 기본법이 없다 보니 직업교육 관련 정책 수립이나 재정 확보 근거가 미흡한 실정이다. 이보형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전문대교협) 사무총장은 “직업교육은 별도의 하위법이 마련돼 있지 않아 5년 주기의 직업교육발전 기본계획을 수립할 수 없다”며 “대부분의 직업교육 관련 정책과 재정사업이 단기적이고 상호 연계가 부족하다 보니 중장기적으로 예측 가능하고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직업교육법이 제정되면 직업교육기관 간의 기능 중복 등을 해소해 재정 투자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직업교육에 대한 하위의 근거 법령과 5년 주기의 직업교육 기본계획이 없다 보니 일반대와 전문대 간, 전문대와 폴리텍대 간의 역할과 기능이 중복되고 있다. 이로 인해 일반대가 전문대 전공을 카피하고, 폴리텍대가 전문대와 중복적인 학위 과정을 운영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오병진 전문대교협 부설 고등직업교육연구소장은 “현행 고등교육법을 보면 일반대의 교육 목적은 심오한 학술 이론이며 전문대는 전문 직업인 양성이지만, 다수의 일반대에서 전문 직업인 양성 목적의 학과를 개설해 교육 수요자들의 혼선이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등·고등·직업·평생 단계별 직업교육 간 연계 부족, 교육기관 간 기능 중복과 연계 부족은 국가 재정 낭비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대교협 등 전문 대학가에서는 대학을 학문연구 중심 대학과 직업교육 중심 대학으로 재구조화해 고등교육의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전문대교협 부설 고등직업교육연구소가 지난해 10월 발간한 ‘2021 인사이드 리포트’에 따르면 전문대 학문 영역으로 개설된 △보건의료 △안경광학 △치위생 △치기공 △철도 △물리치료 △작업치료 △방사선 △뷰티·미용 △응급구조 △K-pop △외식·조리 △카지노 △바리스타 △반려동물 △제빵 등과 관련된 학과를 일반대에서도 전문 직업인 양성 목적으로 개설했다. 이는 직업교육에 대한 정책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난 폐단으로 볼 수 있다. 결국 고교 졸업자의 70% 가까이가 대학에 진학하지만 직업교육 정책의 모호함 속에 졸업 후에도 미취업자로 머무르는 ‘청년 백수’가 늘어나는 구조로 귀결되는 것이다.

전문대교협에서는 직업교육 수행 과정의 비효율성과 재정 낭비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조속히 법적 기반을 마련해 고등교육기관을 기능에 따라 학문연구 중심 대학과 직업교육 중심 대학으로 재구조화를 주장하고 있다. 학문연구 중심 대학은 학부 정원 감축을 통해 세계적 수준의 연구 중심 대학으로 육성하고, 직업교육 중심 대학은 일반대 중 희망 대학, 전문대, 산업대, 기술대, 폴리텍대 등을 포괄하는 실무 중심 대학으로 육성하면 고등교육 기관 간의 기능 중복을 해소하고 재정 투자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오 소장은 “재구조화를 통한 고등교육 정체성이 확립되면 공정한 경쟁 체제에서 대학의 교육 경쟁력과 취업률이 향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의 이름보다는 적성에 맞는 전공을 선택하게 됨으로써 대학 간 서열화를 극복하고 소모적 경쟁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해외의 직업교육 지원

美, 州정부가 직업교육 예산 상향 권한… 獨, 이론·실무 이원화로 인재양성

미국을 포함한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직업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한국의 전문대에 해당하는 ‘커뮤니티 칼리지’의 무상교육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는 미국 공교육 시스템에서 커뮤니티 칼리지가 직업교육·평생교육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은 또 ‘21세기를 위한 직업기술교육 강화를 위한 법(Strengthening Career and Technical Education for the 21st Century Act)’을 제정,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직업기술교육에 대한 책무를 강화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2020년 발간한 ‘미국 직업기술교육법 개정의 주요 내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교육기관과 기업에서 실시하는 직업기술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1963년에 직업교육훈련에 대한 법률로 직업교육법(Vocational Education Act of 1963)을 제정한 이래, 제4차 산업혁명 등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필요한 지식과 기술에 대한 직업기술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1984년, 1990년, 1998년, 2006년에 법률을 개정했다. 가장 최근에는 2018년 7월에 법률을 개정했다.

2018년 7월에 개정된 ‘21세기를 위한 직업기술교육 강화를 위한 법’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연방정부는 직업기술교육의 실시에 대해 특정한 커리큘럼이나 내용을 채택하는 조건을 부가하지 않고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주정부는 현재 직업기술교육에 배정하는 예산의 비율(10%)을 15%로 상향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또한 주정부가 직업교육훈련에 참여한 인력의 성과를 평가하기 위한 지표를 개발하도록 규정하고, 연방정부 교육부는 직업교육훈련 프로그램에 대한 연구, 개발, 보급, 평가 등을 수행토록 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미국 직업기술교육법 개정에 대해 “4차 산업혁명 등 사회의 변화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의 습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우리나라도 교육부, 고용노동부 등 소관 부처의 직업교육훈련촉진법, 산학협력법, 근로자직업능력개발법 등 직업기술교육 관련 법률을 재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면서 “직업기술교육의 효과와 질을 높이기 위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만은 중등교육 단계에서부터 일반고와 직업고로 구분해 일반교육과 직업교육의 ‘투 트랙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대학의 경우 일반대에서는 이론 중심 교육을, 과학기술대에서는 실습 위주로 직업교육이 진행된다.

독일은 ‘아우스빌둥(Duale Ausbildung)’이라는 제도를 운영한다. 이원화된 직업훈련 제도인데, 기업의 수요에 맞춰 직업 활동에 필요한 이론과 실무를 기업 현장과 학교 두 장소에서 익혀 높은 효율을 달성하는 인재 양성 제도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관계자는 “한국은 일반대와 전문대 간 직업교육 경계선이 명확하지 않아 고등교육 현장의 비효율성과 노동시장에서 미스매치가 발생하고 있다”며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해 ‘직업교육법’을 제정하고, 직업교육을 전문성 있게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정경 기자 verit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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