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전기 담는 그릇, 배터리의 역사

입력 2022. 9. 20.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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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자민 프랭클린, 볼타 등 과학자 업적이 기반

 전기는 인류 시작 이전부터 존재했다. 자연 현상에서 얼마든지 만들어져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기를 특정 물체에 담아두고 사용하는 것은 18세기 들어 시작됐다. 전기를 만드는 방법은 많았지만 저장하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하지만 1746년 전기 저장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실험으로 입증되면서 저장 기술은 급속히 발전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축전의 성공과 활용 가능성, 그리고 상용화에 나선 세 명의 과학자가 등장한다. 

 ▲뮈스헨브로이크와 벤자민 프랭클린
 미국 초기 건국 과정에서 주목받는 인물로 꼽히는 여러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이다. 대통령이 아니었음에도 100달러 짜리 지폐에 얼굴이 들어갈 만큼 미국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정치가다. 하지만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기 전까지 그는 과학자이자 사업가였다. 영국에서 태어나 인쇄기술을 익힌 뒤 미국으로 건너와 인쇄업으로 큰 돈을 벌었다. 하지만 과학에 대한 열정은 늘 식지 않았고, 발명품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1740년 초반 만든 난로, '프랭클린 스토브'는 지금도 생산되는 중이며 피뢰침도 프랭클린의 아이디어가 현실화 된 발명품이다. 

 특히 그는 전기에 관심이 많았는데 영감을 준 인물은 사업가이자 과학자, 의사, 그리고 목사였던 '아치발트 스펜서(Archibald Spencer, 1698~1760)'였다. 과학의 거장인 아이작 뉴턴의 업적을 소개하던 스펜서 강의를 들은 후부터 전기 현상에 대한 탐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스펜서는 당시 네덜란드 과학자였던 피터 반 뮈스헨브로이크(Peter Van Musschenbroek, 1692~1761)의 라이덴병(Lyden jar)을 소개했다. 이른바 축전지 분야의 최대 업적으로 일컫는 전기 저장 도구로, 담아 둔 전기를 이용해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역사적으로 배터리(Battery) 기원을 '라이덴병'으로 보는 것도 전기를 저장(蓄電, capacity)한 최초의 기구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에서 연구자로 있던 뮈스헨브로이크가 라이덴병을 발명한 것은 우연이었다. 마찰로 만든 정전기로 전기 실험을 하던 중 물이 들어 찬 유리병을 오른 손으로 잡고, 왼손은 전기발생장치에 연결된 철사를 잡은 후 전기를 통하게 했더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철사 한 끝을 병 속의 물에 넣으니 전기 충격이 발생했고 감전의 고통을 겪었다. 다시 말해 물에 저장된 전기가 철사를 통해 이동했고 뮈스헨브로이크의 몸에 흘렀던 것이다. 배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전기가 저장될 수 있고 밖으로도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 실험이었다. 

 스펜서를 통해 프랭클린에게 소개된 뮈스헨드로이크의 라이덴병은 전기에 관한 실험에 상당한 도움이 됐다. 병을 이용해 번개가 곧 전기라는 사실을 입증했고 전기와 관련된 다양한 용어 정립도 이뤄냈다. 음전자, 양전자, 전하, 도체 등 현재 전기에 사용되는 단어를 만들어 낸 인물이 바로 벤자민 프랭클린이다. 쉽게 보면 전기의 에너지 사용 가능성을 제기한 셈인데 이를 증명하기 위해 번개를 대상으로 시행한 연 실험은 지금도 유명하다. 1752년 번개가 치던 어느 날 연에 열쇠를 매달아 띄웠다. 번개에서 흐른 전하가 연줄을 통해 흐르며 초인종을 울렸던 것이다. 이 원리를 이용해 만든 발명품이 바로 피뢰침이다.  

 ▲알레산드로 볼타의 전지
 뮈스헨브로이크와 벤자민 프랭클린의 과학적 활동으로 전기가 저장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자 이탈리아 과학자 알레산드로 쥐세페 안토니오 아나스타시오 볼타(Alessandro Giuseppe Antonio Anastasio Volta, 1745~1827)의 활약이 시작됐다. 시기적으로 앞선 두 과학자가 전기 저장과 활용의 가능성을 열었다면 볼타는 하나의 물체 안에서 전기를 만들고 밖으로 흐를 수 있는 장치 고안에 주력했다. 물체 안에서 전기가 만들어지면 말 그대로 전기를 뽑아서 사용할 수 있고 이 경우 전지가 곧 일상생활에 들어올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볼타 또한 주목한 것은 라이덴병이었다. 1747년 윌리엄 왓슨(Willam Watson)이 라이덴병에 얇은 주석을 붙여 성능을 개선시켰는데, 이후 볼타는 서로 다른 두 개의 금속이 젖은 물체에 닿으면 전기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소금물과 알칼리 용액을 활용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전지가 이른바 화학물질을 이용한 최초의 전지로 알려진 '볼타 전지'다. 

 볼타는 전지 발명 초기에 아연을 납에 연결하고 납을 주석에 붙이고, 주석을 철에 연결하고 다시 철을 처음의 아연에 연결시켰다. 이 때 전기는 발생했지만 이동이 일어나지 않았고 해결책으로 액체를 주목했다. 게다가 당시 과학자 갈바니가 전자를 개구리에 흘려보냈더니 뒷다리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주목했는데 갈바니를 비롯한 과학자들은 전자의 연결 통로로 개구리 몸 안의 체액을 꼽았다. 볼타가 전자의 흐름을 파악해 내놓은 볼타 전지의 원리를 구축한 배경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볼타 전지의 원리는 지금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볼타는 전자가 통하는 금속이나 고체 물질을 1종 도체, 이외에 전자가 이동 가능한 액체나 동물의 몸 등을 2종 도체로 규정했다. 그리고 1종 도체는 회로를 만들 수 있어도 전류는 얻을 수 없는 반면 2개의 다른 1종 도체를 2종 도체로 연결하면 전류가 흐른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볼타의 발명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곳은 엉뚱하게 프랑스였다. 나폴레옹이 볼타의 업적을 인정하며 연구소를 지원했고 덕분에 전기가 인류의 미래를 많이 바꿀 수 있으며 활용 범위도 무궁무진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예측대로 이후 전지는 빠르게 산업사회로 들어왔다. 1836년 영국의 화학자인 존 프레드릭 다니엘(John Frederic Daniell, 1790~1845)이 발명한 다니엘셀은 최초의 실용적인 전기 공급원으로 통신 네트워크 전원으로 보급됐다. 다만, 황산 및 아연과 같은 물질이 액체 전해질을 거쳐 전자를 이동시키는 과정은 볼타전지 원리와 같았지만 유리병이 사용돼 깨지기가 매우 쉬웠다. 그러자 1886년 독일의 과학자 칼 가스너(Carl Gasner)가 액체 구성의 습식 전지 단점을 개선한 건식 전지를 고안했다. 이전의 습식과 달리 가스너의 건전지는 견고한 데다 유지 보수가 필요 없고 액체 누출이 없었다. 전압은 1.5V였는데, 최초의 대량 생산은 1896년 내셔날 탄소회사가 처음 판매 한 콜럼비아 건전지였다. 

 ▲자동차로 들어온 배터리
 초창기 자동차에는 배터리가 없었다. 전기로 작동되는 경음기 대신 벨이 사용됐고, 전조등 대신 가스등이 장착됐고, 시동은 막대기로 돌렸다. 그러자 1918년 미국의 허드슨자동차는 이런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 배터리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충전이 되지 않아 잦은 교환이 불가피했고 당시만 해도 전압은 6V에 머물렀다. 자동차 내 전력 소모량이 많지 않아 6V로도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엔진 내 압축비가 높아지고 다양한 전자적 기능이 들어가면서 1950년대 중반 배터리 전압은 12V로 높아졌다. 물론 폭스바겐 비틀과 시트로엥 2CV처럼 1960년대 중반, 나아가 1970년까지 6V 배터리가 활용된 사례도 있지만 차츰 자동차용 배터리는 12V가 일종의 표준 전압으로 자리 잡게 됐다. 그러는 사이 1971년 알터네이터가 엔진 옆에 달리자 12V 배터리의 충전이 가능하게 됐고 덕분에 배터리 교체 주기가 길어졌다. 
 
 그런데 시간이 자꾸 흐르면서 자동차의 전력 소모량도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수많은 전자장치가 자동차에 접목되면서 12V를 넘어 고전압 배터리의 필요성이 제기되자 1990년 48V 충전식 배터리 개념이 등장해 이미 일부 차종에 적용되고 있다. 

 물론 배터리를 아예 자동차의 구동에너지로 사용한 역사는 오래됐다. 1881년 프랑스 발명가 구스타프 트루베가 국제전기박람회에서 삼륜자동차가 작동하는 것을 입증했고 1895년에는 미국에서도 배터리가 탑재된 전기차의 관심이 높아졌다. 내연기관과 달리 기어를 바꿀 필요가 없어 편리했고 매연이 없어서였다. 그러나 큰 물체를 움직일 때 사용할 만한 전기를 배터리에 담아내기에는 자동차가 너무 컸던 만큼 속도 발전이 쉽지 않았다. 또한 가격도 비싸 결국 내연기관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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