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연금 개혁, 세대간 대타협 기회로
코로나에도 전세계는 청년 쟁탈전
젊은세대 부담 더 주면 '脫조선' 가속
개혁 성공하려면 노후 불안 해소를
정년연장·노인 의료비 경감 등 필요
2020년 4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빌미로 아시아인과 남미인의 이민을 일시 중단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조금 우습게도 같은 시기 미 국무부는 자국 대사관과 영사관에 곧바로 이민 올 수 있는 의사와 간호사를 하루빨리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외국인 혐오 정서를 이용해 집권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같은 해 중반 의료인과 기술 인력, 유학생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비자를 발급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 국가에 정말 중요한 필수 인력이 누구인지 드러낸 셈이다.
4차 혁명 시대를 맞아 기계가 인간을 대체한다지만 코로나19로 육체노동의 가치도 재평가되는 중이다. 은행원이나 변호사는 없어도 우리의 생존이 위협받지 않는다. 반면 식료품 상인, 청소 노동자, 간호사, 가사 도우미 등은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코로나19 사태로 외국인 근로자의 유입이 줄어들자 국내 건설 현장과 농촌이 아우성을 치고 생활물가가 올라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에서 트럼피즘(Trumpism·트럼프주의) 향수가 여전하고 유럽에서 반(反)이민을 내세운 극우 포퓰리즘 정당이 약진하고 있지만 사실 선진국 정부 대부분은 노골적으로 필수 인력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선진국 이민정책의 핵심 타깃은 당연하게도 청년들과 학생들이다. 이들 나라 역시 저출산·고령화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북미·유럽·동북아시아 등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3대 지역의 경우 현재 출산율로는 인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미래 세대가 떠나는 나라에 미래가 있을 리 없다. 루마니아는 2007년 유럽연합(EU) 가입 이후 전체 인구의 25% 정도인 500만 명이 서유럽으로 간 뒤 돌아오지 않고 있다. 불가리아·세르비아·보스니아 등 다른 동유럽 국가에서도 인재 유출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회만 되면 헬조선을 뜨고 싶다”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세계화 세례를 받은 데다 각종 스펙으로 무장한 2030세대는 이민에 대해 기성세대보다 개방적이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이들이 한국을 등지려는 이유는 뻔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피 말리는 경쟁을 해야 하는 데다 사상 최악의 취업난, 터무니없는 집값, 비싼 교육비 등으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으면 잘살기 힘든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빚까지 물려받았다고 분노한다. 바로 1000조 원에 이르는 국가부채나 2055년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는 국민연금 부담이다.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 정부의 연금 개혁 시도가 꼭 성공하기를 바란다. 연금 개혁은 연금 수령액을 줄이거나, 보험료를 올리거나, 연금 수령 시기를 늦추는 방식밖에 없다. 청년층보다 정치적 발언권이 센 노년층 대다수를 적으로 돌리는 인기 없는 정책이다. 역대 정부가 개혁 필요성을 알면서도 손도 대지 못한 이유다. 해외로 눈을 돌려봐도 연금 개혁은 누적된 재정적자에 나라가 부도 위기에 직면했을 때나 가능한 사안이다.
이 때문에 연금 개혁이 성공하려면 세대 간의 사회계약을 새로 합의하는 수밖에 없다. 바로 미래 세대의 재정 부담을 줄이면서도 노후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노인들이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비록 청년들이 반발하고 있지만 정년을 기대 수명과 연계해 연장하거나 정부가 의료 신기술 개발을 대폭 지원해 노인들의 생활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의료비 부담을 줄여주는 방법이다.
한 가정 내에서 자녀에게 빚을 물려주려는 부모는 거의 없다. 법으로도 부모의 빚을 자식이 상속해 대신 갚도록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기성세대가 자식 세대에게 빚을 물려주는 것은 집단적인 도덕적 해이다. 이러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 글로벌 인재 확보 전쟁이 더 격화하면 유능한 청년들이 우르르 한국을 떠날까 우려된다. /choi@sedaily.com
최형욱 기자 choihuk@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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