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안 하는 한국의 0.01%들, 中·日 초엘리트 이길 수 있나 [송의달 LIVE]

송의달 에디터 2022. 9. 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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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년부터 최근까지 320여년 동아시아 3국 역사를 보면,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이 드러납니다. 중국과 일본은 패권(覇權)국이 돼 제국(帝國)을 이루었으나, 한국은 줄곧 주변국으로 머물렀다는 사실입니다.

세계를 휩쓰는 'K 컬쳐'와 'K콘텐츠'의 위력. 음악·영화·드라마·스포츠 등에서 한국인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그래픽=백형선

21세기 들어 한국이 문화·스포츠 방면에서 두 나라를 앞서며 세계적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은 ‘새로운 희망’이자 ‘변이(變異)’입니다. 한국의 미래 세대, 즉 지금의 20~30대는 문화·콘텐츠 강국(强國)을 넘어 정치 강국, 경제 강국이 돼 합당한 국격(國格)을 향유할 수 있을까요?

◇20~30대는 미래 ‘정치 强國’의 주인공?

그럴려면 전체 인구의 0.01% 또는 0.001%에 해당하는 정치·경제 분야 초(超)엘리트들의 경쟁력이 중국·일본에 못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총 인구를 5000만명이라고 볼 때, 5000명 또는 500명의 경쟁력이 세계 최고가 돼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두 나라는 GDP 기준 세계 2위와 3위국입니다.

1870년대 박규수의 사랑방에서 함께 공부한 구한말 개화파의 중심 인물들. 당시 조선의 최상위 0.001% 엘리트들이었다. 박규수(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조선일보DB
1970~80년대 대한민국 경제 성장을 이끈 당시의 0.001% 엘리트 기업가들. 왼쪽부터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박태준 포스코 초대 회장/조선일보DB

“똑똑한 천재(리더) 한 명이 수 십만명을 먹여살린다”는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말씀도 비슷한 취지일 것입니다. 실제로 중국과 일본이 잘 나가던 시절에는 ‘뜻’[志]과 ‘역량’을 갖춘 최고 엘리트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1700년 이후 중국 역사의 최전성기는 1661년부터 1796년까지 135년 동안입니다. ‘강희제’(康熙帝·재위 1661~1722년·묘호는 성조)부터 그의 네째 아들인 옹정제, 다시 옹정제의 4남인 건륭제로 이어지는, 이른바 ‘강건성세(康乾盛世)’기입니다. 3대에 걸친 3명의 황제는 ‘믿기지 않는 리더십’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청나라의 전성기를 시작한 강희제는 재위기간 중 6차례에 걸쳐 베이징을 떠나 남쪽 지방을 순찰하는 남순(南巡)을 했다. 그림은‘강희남순도’의 일부분/조선일보DB

◇강희·옹정·건륭제...135년 ‘강건성세’

8세에 황제 자리에 오른 강희제는 “천 년에 한 번 나올 만한 황제”라는 뜻의 천고일제(千古一帝)로 불렸습니다. 220여명 중국의 역대 황제 가운데 가장 긴 61년간 재임한 그는 유교 제왕학 훈련을 받았는데, 몸이 아플 때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책벌레였습니다.

만주어(滿洲語)·한어(漢語)를 모어(母語)로 익히며 성장한 그는 엄청난 공부와 수양으로 지식과 교양을 쌓은 한편 전쟁을 직접 지휘하고 원정을 강행해 승리를 거둔 문무(文武)를 갖춘 리더였습니다. ‘존경하는 마음으로 몸을 낮춰 온힘을 쏟는다’는 뜻의 ‘국궁진력(鞠躬盡力)’을 좌우명으로 ‘안거낙업(安居樂業·백성들이 맘 편안히 살면서 즐겁게 생업을 영위하게 하는 것)’을 통치의 최고 목표로 각각 삼았습니다.

청(淸)나라 5대 황제인 옹정제(雍正帝·재위 1722~1735년)의 초상화/조선일보DB

그를 뒤 이은 옹정제(雍正帝·재위 1722~35년·묘호는 세종)는, 지방 관리가 공식 보고와는 별도로 황제에게 자유롭게 편지를 보내게 하는 ‘주접(奏摺)’이라는 소통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그는 오직 황제와 해당 지방관만 볼 수 있는 이 편지에 무엇이든 보고하라고 독려했는데, 매일 밤 50~60통의 주접을 읽고 답장을 쓰느라 자정(子正) 가까운 시각에야 잠자리에 들었고 매일 새벽 4시면 일어나 국정을 챙겼습니다.

일본의 중국사학자 미야자키 이치사다(宮崎市定) 전 교토대 교수는 저서 <옹정제>에서 “그는 민심을 예민하게 살피면서도 민심에 휘둘리지 않았다”고 분석했습니다. ‘군주가 되는 일은 어렵다’는 ‘위군난(爲君難)’이란 글귀를 거실에 붙여놓고 “나라를 다스리는 어려운 일에 이 한 몸을 아낄 수 없다”고 자신을 채찍질했습니다.

건륭제(乾隆帝·재위 1735~96년·묘호는 고종)를 포함한 3명의 황제는 신장위구르와 티벳·대만 등으로까지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이들은 ‘천명(天命)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성실·근면·검소·절제를 견지했습니다. ‘천명’은 오늘날 현대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정치가로서의 ‘소명(召命) 의식’입니다. 어떤 신하가 강희제에게 “‘국궁진력’은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자세”라고 지적하자, 그는 “짐(朕)은 하늘을 섬기는 신하다”고 말했습니다.

2020년 9월 24일 영국 경매에서 약 5억8000만원에 낙찰된 주전자. 청나라 건륭제가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면서 가격이 크게 올랐다./조선일보DB

현군(賢君) 3명이 연속 집권하며 국력과 국격을 높인 덕분에 100만명 남짓한 만주족은 1억5000만 중국 대륙인들을 정신적으로도 복속시키면서 ‘대륙의 주인’으로 250년여 군림할 수 있었습니다. ‘강건성세’는 로마제국의 최고 전성기인 ‘5현제 시대(서기 96~180년)’보다 더 길었습니다.

‘현대판 중국의 황제’인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도 3명의 황제 배우기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2014년 중국 국영 중앙방송(CCTV)은 강희제의 치세를 다룬 ‘강희제국(康熙帝國)’을 황금시간대에 방영해 관방과 민간에 ‘강희제 학습 열기’를 고조시켰습니다.

◇中공산당 정치국원 매월 ‘집체 학습’

2002년 12월부터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원 40여명이 집체 학습을 하고 있는 것도, 0.001% 초엘리트들의 역량 강화가 주 목적입니다. 집체 학습은 평균 매월 1차례 베이징 자금성(紫禁城) 서쪽에 자리한 중난하이(中南海)의 화이런탕(懷仁堂) 중회의실에서 열리는데, 정보기술(IT)산업단지인 중관춘(中關村) 같은 장소에서 ‘현장학습’도 합니다.

중국 국영 CCTV는 2017년 12월 10일 "시진핑 총서기가 정치국 집체학습에서 빅데이터 국가전략 시행을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중국공산당 정치국 집체학습 모습/조선일보DB

중국 전문가인 박승준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은 이렇게 분석합니다.

“중국공산당의 집체학습은 링다오(領導)들이 솔선수범한다는 원칙 아래 진행되고 있다. ‘개혁개방의 설계사’로 평가되는 덩샤오핑 역시 밀턴 프리드먼을 비롯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와 재미 중국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을 초청해 공부했다. 특히 핵심 25명으로 구성된 정치국의 집체학습은 그 내용이 전 인민에게 공개된다. 또 (중국 중앙당교 기관지인) ‘학습시보(學習時報)’라는 신문을 통해 공산당원들의 학습의욕을 자극하는 교재로도 활용된다.”

1979년 1월 1일자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지의 표지 인물로 꼽힌 덩샤오핑/인터넷 캡처

◇메이지유신과 일본제국 건설의 ‘산실’

일본에서 0.01% 초엘리트 양성 전통은 160년 넘게 살아 있습니다. 야마구치현 하기(萩) 출신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1830~1859)이 주인공이며, 그가 가르쳤던 ‘쇼카 손주쿠(松下村塾)’가 산실(産室)입니다.

일본 야마구치현 하기시에 있는 쇼카 손주쿠. 기와지붕의 단층 목조건물로 50.90㎡의 작은 교육시설이다. 조슈번(長州藩)의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 강의한 사숙이다. /조선일보DB

요시다 쇼인은 도쿠가와 봉건 막부체제를 무너뜨리고 메이지유신과 일본 제국주의의 사상적 기초를 닦은 정신적 지도자입니다. 구국방략(救國方略)의 하나로 미국을 배우려 밀항을 시도하다가 붙잡힌 그는 감옥 안에서 ‘유수록(幽囚錄)’을 썼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일본이 국력을 키워 서양한테 당한 것을 만주, 중국, 조선에게서 무력으로 되찾아 오자”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당시 일본 사회에 퍼져가던 정한론(征韓論·한반도 정벌론)에 힘을 실어주었고 20세기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의 이론적 토대가 됐습니다.

사진 왼쪽은 일본 교토(京都)대학 부속 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요시다 쇼인상(像). 오른쪽은 1854년 3월 시모다(下田) 감옥에 수감됐다가 6개월 후 하기(萩)의 野山獄으로 이감된 요시다 쇼인의 모습을 담은 그림/월간조선 제공

요시다 쇼인은 1856년 3월부터 개인 교육기관인 ‘쇼카 손주쿠’를 열어 신분·계급을 가리지 않고 제자를 받았습니다. 순수한 사숙(私塾) 운영은 1년 2개월. 감옥 강의까지 합쳐도 3년 남짓한 기간에 교실은 다다미 8첩(약 4평) 크기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쇼인은 “지성(至誠)을 다하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없다(至誠而不動者未之有也)”는 신념으로 문하생들의 ‘영혼’을 이끌어 냈습니다.

1868년 도쿠가와 막부에 저항하는 반란을 일으킨 사쓰마 번과 조슈 번의 젊은 사무라이들. 맨왼쪽이 이토 히로부미, 맨 오른쪽이 오쿠보 도시미치.

초대 총리대신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1841~1909)와 ‘일본 육군의 교황’으로 불리는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1838~1922) 등 92명의 문하생 가운데 총리 2명, 장관 4명을 포함해 일본 영웅으로 평가되는 22명의 엘리트들을 배출했습니다. 제자 중 20명은 메이지유신 성공을 위해 젊은 나이에 목숨을 바쳤습니다.

다다미 8장 규모의 '쇼카 손주쿠' 내부 모습. 요시다 쇼인이 제자 92명을 길러낸 곳이다. 문하생으로서 일본의 국민적 인물이 된 사람의 사진을 벽에 게시해놓고 있다./조선일보DB

<요시다 쇼인 시대를 반역하다-일본 근현대 정신의 뿌리>의 저자 김세진은 이렇게 평가합니다.

“메이지유신 이전에 죽은 20명을 제외하면 30.6%의 쇼카 손주쿠 학생이 국가 지도자와 고급 관료가 된 것은 에도막부 시대 일본의 그 어떤 교육기관도 따라올 수 없는 성과이며, 그들이 근현대 일본 건설에 공헌한 실적은 막대하다.”

요시다 쇼인은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에 ‘미래를 내다본 선각자’로 기술돼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2015년 ‘쇼카 손주쿠’ 학당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고, 공영방송 NHK는 같은 해 요시다 쇼인의 일대기를 다룬 대하드라마 ‘꽃 타오르다(花燃ゆ·하나모유)’를 방영했습니다.

2015년 한 해 총50부작으로 일본 NHK가 방영한 대하드라마 ‘하나모유(花燃ゆ)’. 요시다 쇼인의 여동생 스기 후미를 주인공으로 설정했다./인터넷 캡처

◇21세기에도 초일류 엘리트 배출

요시다 쇼인과 쇼카 손주쿠는 과거의 죽은 유물이 아닙니다. 고(故) 아베 신조 총리는 2004년 ‘월간 쇼카 손주쿠(月刊 松下村塾)’ 창간호에 “쇼인의 가르침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가치관을 창출해 내자”고 축사를 썼습니다. 그를 위시한 많은 보수우익 정치인들은 쇼인을 21세기 일본의 사표(師表)로 받들고 있습니다.

도쿄시 지요다구에 있는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는, 원래 이토 히로부미가 스승인 요시다 쇼인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곳입니다. 메이지유신 100주년(1968년)을 즈음해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총리는 ‘쇼카 손주쿠’ 마당에 ‘메이지유신 태동지지(明治維新 胎動之地)’라는 친필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2013년 8월 13일 아베 신조 총리가 '쇼인 신사'를 방문해 참배하고 있다./일본 마이니치신문
요시다 쇼인을 기리는 쇼인신사. 현판 글씨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가 썼다./조선일보DB

일개 시골 학숙에 불과한 이곳을 총리가 찾아와 메이지유신 태동지로 공식 명명한 데서, 요시다 쇼인과 쇼카 손주쿠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쇼카 손주쿠 뒷편에 세워진 쇼인신사(松陰神社)는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신사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경영의 신(神)’으로 불리는 마쓰시다 고노스케가 사비(私費)를 들여 1979년 문을 연 ‘마쓰시다 정경숙(松下 政經塾)’오마에 겐이치(大前 硏一)의 ‘잇신주크(一新 塾)’는 모두 ‘쇼카 손주쿠’ 정신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두 곳의 목적은 일본을 이끄는 최상위 0.001% 리더들을 양성해 배출하는 것입니다.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지카사키시에 있는 마쓰시타 정경숙(松下政經塾)의 정문 모습. 마쓰시타 전기의 창업자로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오른쪽 위 작은 사진)가 초일류 엘리트 양성을 위해 1979년 세웠다./조선일보DB
'마쓰시타 정경숙'의 홈페이지 프론트 화면. '젊은 제군에게 미래를 맡기고 싶다'는 마쓰시타 고노스케 설립자의 유훈이 적혀 있다./인터넷 캡처

◇'民의 힘’으로 성장한 대한민국 30년

1700년대 세계 최강국 청나라와 1900년대 전반에 동양의 최고 국가가 된 일본은 애국심과 능력, 의지로 무장한 최상위 리더들이 하나가 돼 국가 발전과 민생 증진에 앞장섰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조선과 대한민국은 강희·옹정·건륭 같은 성군(聖君)을 연이어 갖는 지도자 복(福)도, 29세의 불꽃 같은 삶을 살며 지사(志士)들을 기른 정신적 스승도 없습니다. 대신 ‘자유(自由) 대한민국’을 반석 위에 올려 놓은 이승만·박정희 두 분 대통령이 있습니다. 생의 마지막 3년간 ‘사랑방’ 공부로 젊은 개화(開化)파 인재들을 키운 환재(瓛齋) 박규수(朴珪壽·1807~1876) 선생도 계십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30여년에서 국민적 존경을 받는 민간 엘리트 정치인은 찾기 힘듭니다. 하영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는 이렇게 진단합니다.

'자유 대한민국'의 기틀을 다진 이승만(왼쪽), 박정희 대통령/조선일보DB

“대기업을 필두로 한 비즈니스 분야와 최근 세계 젊은이들을 홀리고 있는 BTS에서 보듯 문화, 스포츠 분야에서 한국의 성취는 대단하고 놀랍다. 그러나 정치 무대를 보면 유독 정치 지도자의 운(運)이 없다. 지난 한 세대동안 리더를 중심으로 미래 지향적으로 정치 무대가 움직였다면, 우리는 이미 1인당 소득 6만~7만달러 나라가 됐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발전은 ‘민(民)의 힘’ 덕분이다. 사회의 나아갈 바를 제시해야 하는 정치 리더들이 완장만 차고 한 세대(약 30년)쯤 뒤떨어져 있다.”

1990년대 이후 30년동안 대한민국 성장의 견인차는 민간 기업인들이었다. 사진 왼쪽부터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박용성 당시 대한상의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조선일보DB

◇“술과 골프로 살아가는 韓 엘리트들”

대한민국이 중국, 일본에 멸시 당하거나, 국가 주권(主權)이 농락당하는 수모를 다시 겪지 않으려면 최상위 정치 엘리트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작금의 상황을 걱정하는 시선이 많습니다. 30년간 정치 현장에 몸담고 있는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는 기자와의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50세 넘은 한국 0.01% 엘리트들의 경쟁력은 선진국과 비교하기 민망한 수준이다. 대부분 치열한 공부나 학습은 하지 않고 술과 골프로 인맥을 확장하며 살아가고 있어서다. 명문대 졸업하고 고위직 지낸 분들이 60세 넘으면 유튜브 방송이나 신문에 자신의 뇌(腦)를 의탁하고 있다. 이래선 한국의 미래가 없다.”

격변기에 선배들이 분발하고 쇄신(刷新)해 모범을 보인다면, 차세대 청년 엘리트들도 한결 달라질 것입니다. 세계적 혁신 대학을 목표로 2023년 3월 개교할 예정인 태재(泰齋)대학을 비롯해 우리나라를 이끌 초일류 인재를 키우려는 노력이 본격적으로 불 붙기를 소망합니다. 그럴 때 ‘K컬쳐’를 넘어 ‘K정치’, ‘K경제’로 대한민국이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 무대에서 당당한 주체로서 이바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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