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 속도가 생명이지만.. 신탁보수 내면 비용 증가

김노향 기자 입력 2022. 9. 20.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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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S리포트 - 8·16대책 신탁사 '파티' 될까] ② 조합설립 대신 신탁사, 재건축 '신의 한 수' 될 수 있나

[편집자주]토지 등 부동산을 위탁받아 각종 인·허가와 분양계약, 자금 입·출금 등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신탁업계가 부동산 개발사업까지 눈독을 들이고 있다. 정부의 금융규제 완화로 금융업의 부동산업 진출이 활발해진 가운데 신탁사들은 새 정부 첫 부동산대책인 '8·16 주택공급대책'을 통해 시행사업에 보다 쉽게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2016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으로 신탁사들의 도시정비사업(재건축·재개발) 참여가 가능해졌지만 그동안 높은 신탁보수로 인해 시장 선점 효과는 미미했다. 등록업체 수 증가로 보수율이 떨어지고 신탁사 재정건전성 문제가 불거진 상황에 한줄기 희망이 되고 있다. 다만 업계는 표정관리를 하는 모습이다. 사업성이 높은 정비사업 특성상 그동안 시공사와의 주도권 경쟁이 치열했고 인플레이션 등 사업비 증가 요인이 늘어나 선뜻 신탁방식을 선택하는 사업지는 많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어서다. 정부안이 실제 시행되기 위해선 국회의 문턱도 넘어야 한다.

투명성과 전문성 강화라는 장점에도 토지 등 소유자가 신탁방식 정비사업을 선택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비용'이다. 신탁업계에 따르면 신탁보수는 차입형·관리형 등 자금조달 주체가 신탁사인지 여부에 따라 최대 사업비의 4% 안팎이다. /그래픽=김영찬 디자인 기자
정부가 신탁사에 대해 전폭적으로 정책 지원에 나선 취지는 주민들로 구성된 도시정비사업(재건축·재개발) 조합 운영의 투명성과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조합의 각종 비리 등으로 선량한 조합원과 내 집 마련을 기다린 일반분양 대기자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실패 사례를 막겠다는 명분이다.

하지만 투명성과 전문성 강화라는 장점에도 토지 등 소유자가 신탁방식 정비사업을 선택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비용'이다. 신탁업계에 따르면 신탁보수는 차입형·관리형 등 자금조달 주체가 신탁사인지 여부에 따라 최대 사업비의 4% 안팎이다. 사업비 1조원 프로젝트일 경우 신탁보수만 400억원의 비용이 발생하는 셈이다. 사업 지연 시엔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증가할 위험이 있다.

정비사업의 최대 관건이 속도전인 이유는 사업성, 즉 비용 대비 이익인데 신탁방식 정비사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해 사업기간을 단축해도 신탁보수가 발생함에 따라 메리트가 없는 경우 굳이 신탁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가뜩이나 글로벌 인플레이션 장기화로 원자재가격은 물론 공사에 들어가는 인건비, 자금조달 금리마저 오르면서 신탁보수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정말 파티일까… 신탁업계 표정관리


정부의 8·16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에 따라 빠르면 내년부터 토지 등 소유자가 조합을 설립하지 않아도 신탁사를 통해 정비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신탁사를 사업시행자로 지정하는 요건이 완화돼 현재는 '사업구역 내 전체 토지주 3분의 1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개선안에 따라 '국·공유지를 제외한 토지주 3분의 1 이상' 동의만 받아도 된다. 신탁방식 정비사업은 사업계획을 통합처리 해 사업기간이 3년 이상 단축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주장이다.

신탁보수를 개발비용으로 처리해주는 법안도 추진된다. 서울 강남 등 주요 재건축 사업지에 '규제 대못'으로 지목되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의 부담금 부과를 위한 이익 산정 때 신탁보수를 비용 처리해 부담금을 낮추는 것이다.

주택업계 한 관계자는 "개발비용이 조합원 이익 감소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어 현 정부는 신탁보수뿐 아니라 여러 부분에서 규제 완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서 "개발비용 인정은 합리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신탁뿐 아니라 리츠 등 다양한 방식의 민간정비사업들도 합리적인 비용 처리가 논의돼야 한다"면서 "금융비용이나 조합원 재산세, 보유세 등도 공제 항목으로 인정해 사업 유지비용으로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는 '도심복합개발법' 제정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으로 정부는 올 12월 관련 법안들을 통과시키겠다는 계획이나 지자체·전문가 등의 의견수렴 절차를 밟아야 한다. 직접 수혜가 예상되는 토지신탁업계는 법안 통과의 가능성을 예단하기가 어려운 만큼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신탁업계 한 관계자는 "세부안이 나오지 않고 방향성만 설정된 상황에서 정책 효과 등을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고 전제하며 "현업 입장으로 보면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지만 통상 정비사업은 동의 절차 등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해 어려운 것에는 변함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정부에서 공공정비사업에 대한 인센티브가 강화된 가운데 민간도 규제 완화를 해 형평 문제를 해소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사업성 높은 사업지 신탁 필요 없어"


신탁방식 정비사업의 또 다른 장점은 안정적인 자금조달이다. 자금조달 능력이 취약한 토지 등 소유자가 신탁사에 사업비를 의존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이는 조합방식 정비사업에서 조합이 대기업 시공사에 자금을 의존하며 계약조건 등 협상력을 발휘하기가 어렵고 사업 주체와 계약자 간 갑을관계가 바뀌는 문제점이 신탁사로 옮겨가는 것뿐이란 의미도 된다. 소유자 입장에선 차이가 없으면서 신탁보수만 늘어나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논란을 의식한 듯 국토교통부는 신탁방식 정비사업에서 주민의 계약해지 권한 보장과 신탁 종료 시점 명확화, 주민의 시공자 선정권 명시 등을 포함했다. 주민-신탁사의 공정한 계약 체결과 토지주 권익보호를 위한 표준계약서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신탁방식 정비사업을 추진하다 문제가 발생한 사례도 있다. 충남 천안시는 2015년 동남구 문화3·성황구역을 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고시했지만 해당 구역은 교보자산신탁과 함께 사업을 추진하다가 최근 재개발 해제 위기에 놓였다. 문화3·성황구역 추진위원회는 교보자산신탁과 지난 3월31일 시에 지정개발자 방식 사업신청서를 제출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두 차례 정비구역 해제 기간을 연장한 끝에 사업 최종 기한에 맞춰 진행했다.

하지만 신청서 검토 결과 조합원 동의율이 법적 기준인 75%에 미달된 점이 확인됐다. 교보자산신탁은 지난 6월9일 동의율 요건을 갖춰 다시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시는 사업 최종 기한을 넘긴 것으로 보고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20조(정비구역 등의 해제)에 따라 정비구역이 해제된다고 판단했다. 현재 시는 법제처에 법령 해석을 요청한 상태다.

이동주 한국주택협회 산업본부장은 "일반적으로 사업성 낮은 지역이 신탁방식을 도입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는 보수를 내더라도 금융조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복잡한 사업 인·허가 절차가 개선되는 부분이 있겠으나 강남 주요 정비사업, 특히 재건축은 굳이 보수를 내면서까지 신탁방식을 선택할 필요성이 낮아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노향 기자 merr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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