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발란스는 어떻게 '편한 신발' 대명사 됐나
[브랜드 인사이트]
“옛날 옛적에….”
어렸을 때 엄마 입에서 나오는 저 ‘주문’은 우리를 흥미진진한 세계로 이끌었다. 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건조한 팩트도 스토리로 인격화되면 우리 이야기처럼 몰입할 수 있다. 사람들이 스토리를 읽고 보고 말하는 이유는 스토리의 구조에 매혹돼서가 아니다. 캐릭터에 몰두하기 때문이다.
스토리 컨설턴트인 리사 크론은 스토리가 ‘주인공이 불가피한 외적 문제를 해결하며 내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다룬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브랜드 스토리는 무엇일까.
브랜드 스토리는 브랜드가 자신만의 정체성이 발현되는 과정을 고객에게 말하는 것으로, 고객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스토리 안의 캐릭터는 브랜드 자체다. 브랜드(캐릭터)의 철학·성격·생각을 보여줌으로써 고객이 브랜드에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는 고객에게 브랜드의 이미지가 각인되는 효과를 준다.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브랜드 스토리는 고객이 ‘주인공’이다. 브랜드는 고객이 주인공이 돼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 또는 멘토가 된다. 모든 이의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고객은 자신이 중심이 되는 스토리를 접했을 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게 된다. 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브랜드를 사용하게 된다는 뜻이다.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① 발견의 순간, 스토리가 되다
뉴발란스 :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신발
1906년 33세였던 윌리엄 라일리 뉴발란스 창업자는 발에 무리가 가지 않는 신발을 연구하다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 닭의 발가락을 봤다.
여기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발을 안정적으로 지지해 주는 ‘아치 서포트(지지대가 있는 신발 깔창)’를 개발하게 된다. 뉴발란스라는 브랜드명도 ‘불균형한 발에 새로운 균형을 창조한다’는 의미에서 유래됐다.
뉴발란스의 브랜드 스토리는 헤리티지와 착용감(fit)이라는 핵심 가치를 강조한다. 고객에게 건강한 삶을 위해 최고의 편안함이라는 도움을 주는 도구라는 뜻이다. 편안한 운동화를 찾고 있는 고객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이키가 아닌 뉴발란스를 선택할 것이다.
② 존재의 이유, 스토리가 되다
룰루레몬 : 스웨트 라이프를 위한 멘토
룰루레몬의 브랜드 스토리는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스웨트 라이프’로 새롭게 정의한다. 이는 땀 흘리고(sweat), 관계를 맺고(connect), 성장함(grow)으로써 건강하고 행복한 개인과 커뮤니티를 만드는 라이프스타일을 말한다.
룰루레몬은 개개인 모두가 땀 흘리고 연결되며 성장하는 스웨트 라이프를 바탕으로 숨겨진 잠재력을 발휘하고 그런 개인들이 모여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킨다고 주장한다. 룰루레몬은 단순히 운동을 위한 의류를 판매하는 기업이 아니다. 스웨트 라이프로 세상을 조금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곳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브랜드다.
신체 활동을 넘어 몸과 마음의 성장을 바라는 고객들은 그들의 스웨트 라이프를 위해 룰루레몬을 선택할 것이다. 룰루레몬은 스웨트 라이프를 누리기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도구이자 멘토다.
③ 새로운 기능, 스토리가 되다
아에르 피크 : 여행을 일상으로 돌아오게 한 마스크
마스크 브랜드인 아에르는 삶의 기본을 높이는 라이프케어 브랜드라고 스스로를 정의한다. 아에르는 제품 라인에 적용한 스토리가 흥미롭다. KF 80 보건 마스크인 ‘아에르 피크 라이트’는 ‘다시, 여행을 만나다’라는 콘셉트로 컬러별로 세계 명소를 연결해 패키지에 적용하고 있다.
스페인과 연결해 ‘가우디가 걷던 길을 거닐다’라고 말하며 아에르 피크 라이트와 다시 여행을 시작하라고 하는 라이트퍼플이 한 예다. 코로나19 시기에 너무 많이 들어 피로도가 높아진 바이러스 이야기 대신 세계 명소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가벼운 마스크라고 어필한 것이다.
여행이 일상으로 돌아온 요즘 좀 더 편한 여행을 위해 고객들은 아에르 피크 라이트를 선택할 것이다. 삶의 기본을 넘어 고객의 여행도 일상으로 돌아오게 만든 기특한 도구라는 것을 짧은 스토리로 충분히 표현하고 있다.
④ 헤리티지, 스토리가 되다
로얄코펜하겐 : 여왕이 만든 덴마크의 품격
24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덴마크 왕실 도자기 브랜드 로얄코펜하겐의 브랜드 스토리는 상당히 구체적이다. 덴마크의 왕 프레데릭 5세의 부인 줄리안 마리 여왕은 덴마크 국내 제품과 서비스 발전을 도모하고 국가의 경제적인 부를 지키기 위해 1775년 덴마크 왕립 자기 공장을 설립했다.
줄리안 마리 여왕은 처음부터 로얄코펜하겐의 모든 자기 제품에 로얄코펜하겐만의 마크가 찍혀야 한다고 단호하게 주장했다. 그 마크는 덴마크의 외레순 해협, 대벨트 해협, 소벨트 해협을 직접 손으로 페인팅한 물결무늬였다.
또한 자기 공장과 왕실 사이의 밀접한 유대 관계를 강조하기 위해 왕관 마크를 새기도록 했다. 이러한 헤리티지와 30명의 장인, 762번의 붓질, 소의 귀 털이나 순록의 배 부분의 털로 만든 브러시로 페인팅, 블루 컬러의 역사 등을 언급하며 도자기의 생산 과정을 아주 면밀하고 상세하게 말해 주고 있다.
즉 고객이 로얄코펜하겐의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덴마크의 역사·기술·디자인을 구매하는 것과 다름없다. 또한 스토리에서 강조하는 여왕·왕실·장인 정신의 이미지는 고객이 여유와 품격을 누릴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가 된다.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스토리의 힘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미코노미(자기 중심 소비) 소비관과 소비를 통한 미닝아웃(신념을 소비로 표출)이 자연스러운 요즘 업계에서는 초개인화에 주목하고 있다. 개인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을 겨냥하는 것이다.
게다가 온라인과 모바일을 통해 구체적인 정보까지 접할 수 있는 오늘날 넘쳐 나는 정보 속에서 지쳐 있는 소비자들에게 초개인화는 반가운 선택지가 된다.
이러한 시대에 브랜드 스토리는 퍼스널라이즈를 위한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고객과 브랜드는 스토리를 통해 일대일 소통하고 이를 바탕으로 브랜드에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된 고객은 브랜드와 친밀감을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고객 자신의 맥락에서 브랜드를 받아들이게 한다면 고객의 마음속에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각인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문제는 브랜드 스토리의 내용이다. 우리 브랜드가 얼마나 대단한 ‘영웅’인지 구구절절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주인공인 고객, 당신을 영웅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멘토이자 도구라는 것을 어필해야 한다.
고객들은 자신이 주인공이 될 수 있게 해 주는 브랜드를 선택한다. 헤리티지·철학·약속 그리고 고객에게 줄 수 있는 가치 등 모든 것이 브랜드 스토리의 소재다. 하지만 브랜드 스토리는 이것들을 단순히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브랜드가 고객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이것을 상상하게 할 때 힘 있는 브랜드 스토리가 탄생한다.
김서연 인터브랜드 한국법인 수석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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