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 전 세계 유례없는 주식매매 신고제, 자본시장의 기본 가치는 지켜야

정해용 기자 2022. 9. 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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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8일 금융위원회(정부)는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 도입방안을 보도자료 형식으로 배포했다. 12일 기사화된 이 자료의 핵심 중 하나는 상장회사 임원과 주요주주 등 기업 내부자가 자사 주식을 매수 또는 매도할 때 매매 예정일 최소 30일 전에 매매 목적과 가격, 수량, 매매 예정 기간 등을 공시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공시하지 않거나 거래계획을 이행하지 않으면 형벌, 과징금, 행정조치 등 제재를 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정부는 자본시장법을 개정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상장사 내부자들의 주식 거래를 제한하려는 것은 지난해 12월 카카오그룹 계열사인 카카오페이 경영진의 대량 주식 매도와 연관이 깊다. 작년 12월 10일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 등 이 회사 경영진 8명이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을 행사해 얻은 카카오페이 주식 900억원어치를 시간 외 매매 방식으로 매도해 수백억원의 차익을 얻었고 이 때문에 주가가 급락해 개인투자자들이 피해를 봤다.

일반적으로 주요 경영진은 자사의 주식을 상장 후 일정 기간 보호예수(락업)를 설정해 팔지 못하는데 스톡옵션으로 받은 주식은 이런 보호예수 설정의 예외였고 경영진들이 이를 이용해 상장 후에 한 달 만에 주식을 대량 처분했다. 상당한 논란이 일자 정부는 지난 3월 스톡옵션으로 취득한 주식에 대해서도 일반 주식과 마찬가지로 6개월간 매도를 제한하도록 규제했다. 여기에 더해 모든 내부자가 주식매매 한 달 전 사전에 계획을 공개토록 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상장 직후 주가 급등을 이용한 카카오페이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개인의 재산인 유가증권에 대한 거래계획을 모두 사전에 정부에 보고하고 공시하라는 법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생각은 자율성을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한 시장 관계자는 “사실상 내부자들이 주식을 팔지 말라는 이야기”라고 했다.

정부는 이 방안을 발표하면서 미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제도를 운용한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은 상장사 내부자가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매매계획을 사전에 보고, 공시해야 하는 의무가 없다. 다만 내부자가 자율적으로 매매계획을 사전에 수립, 제출하면 추후 미공개 중요 정보를 이용했다는 혐의를 받을 때 이 혐의를 부인(否認)하는 근거로 사용될 수 있어 일부 내부자들이 사전에 SEC에 매매계획을 제출할 뿐이다. 또 매매계획을 제출하더라도 SEC에만 보고할 뿐 SEC의 공시 시스템인 EDGAR(Electronic Data Gathering, Analysis, and Retrieval system)에 공시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 공산권 국가인 중국은 어떨까? 중국도 주식 거래를 사전에 공시해야 하는 의무는 없다. 지난 6월 27일 중국 최대 인터넷기업 텐센트 주가는 1.6% 하락했다. 대주주인 남아프리카공화국 미디어 기업 나스퍼스(Naspers)의 자회사 프로서스(Prosus)가 텐센트 주식을 매도할 계획을 공시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공시는 텐센트와 프로서스가 자율적으로 한 공시였다. 프로서스가 2018년 3월(2%)과 2021년 4월(2%)에 텐센트 주식을 매도하면서 주가에 충격을 줬기에 이런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자율적 IR 활동이었다.

정부는 사전에 주식 매매계획을 공개하라고 하는 이유 중 하나로 내부자가 중요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주가를 조작하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금융위원회는 보도자료에서 최근 5년간 증권선물위원회에 상정‧의결된 불공정거래 사건 247건 중 미공개 중요 정보 이용행위가 119건으로 가장 높은 비중(43.4%)을 차지하고 있다며 임원과 주요주주를 사전적, 예방적으로 규율,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한 전문가는 “미국은 주주들의 권한이 강하고 내부자가 사익을 위해 부당한 방식으로 주식거래를 하면 막대한 규모의 집단소송이 걸릴 수도 있다. 또 SEC가 내부자의 부당거래를 적발해 내는 능력도 뛰어나다”라며 “우리 정부는 내부자의 부당거래를 잡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소액 주주들도 소송 등 법적으로 대응하지도 못해 내부자 주식 거래를 통제하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부가 내부자들의 부당거래를 잡을 능력이 없다고 100여 건의 사례를 들어 모든 상장회사의 내부자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국가는 지구상에 없다. 또 매매계획을 1개월 전 공시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제재하겠다는 발상을 하는 국가도 없다. 한 달 후 시장 상황과 주가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기에 주식 거래는 사전에 계획한 대로 될 수 없다는 현실을 알기 때문이다. 또 근본적으로 주식을 매매하는 의사결정은 내부자이든 외부 투자자이든 온전히 본인의 책임에 따른 재산권 행사의 영역임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이렇게 세계에 유례가 없는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면서 여야 합의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자본시장법을 개정해야 하는 사안”이라면서도 “야당인 민주당하고는 조율이 되지 않았다”라고 했다.

어느 순간 정부의 정책은 일정 ‘선’을 넘어가고 있다. 15억원이라는 특정 금액을 정해놓고 금융사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하도록 했고, 임대계약에 대해선 계약을 갱신할지 여부도 정부가 정해줬다. 기업이 주식시장에 상장(IPO)할 때 공모주를 모든 청약자에게 똑같이 나눠주는 균등 배분 방식도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일종의 주식 배급 제도다. 대부분은 자본시장의 기본 가치와 룰(rule), 더 나아가서는 헌법적 가치인 사유재산권 행사의 문제까지 침해하는 부분이다. 금융위원회와 관계부처들이 우리 경제의 작동원리인 시장경제 시스템에 대해 좀 더 이해하고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기를 바란다.

[정해용 시장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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