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조용한 퇴사’

김홍수 논설위원 2022. 9. 20.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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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회사를 그만뒀어. 밤 9시까지 일하고 5시간밖에 못 쉬었어. 회사는 정말 날 힘들게 해.” 팝스타 비욘세의 7집 앨범에 수록된 ‘브레이크 마이 솔(Break my soul)’의 가사다. CNN은 이 노래를 ‘대퇴직 시대(Great Resignation)에 대한 찬가’라고 보도했다. 2020년 코로나 사태 후 미국에선 매달 400만명이 넘는 직장인이 자발적으로 사표를 던져 ‘대퇴직 시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재택근무 탓에 직장 소속감이 옅어지고, 일과 삶의 경계가 흐려져 근로자들이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 것이 주원인이라는 사회심리학적 분석이 많다. 두둑한 실업수당 때문이라는 경제적 분석도 있다. 미국 정부가 코로나 대응을 위해 뿌린 실업수당 7000억달러(약 980조원) 덕에 매달 3000달러 넘는 공돈을 받게 되자 일자리의 가치를 재평가하게 됐다는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팬데믹이 근로자들로 하여금 형편없는 일자리에 계속 매여 살아야 하는지 자문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문제는 코로나 거리 두기가 끝났는데도 근로자들이 직장으로 복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 미국에는 비어 있는 일자리가 1000만개가 넘는다. 스타벅스가 종업원 시급을 14달러에서 17달러로 올리는 등 구인난은 임금 상승을 낳고, 인플레이션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게다가 최근엔 MZ세대 직장인들 사이에서 ‘딱 받는 만큼만 일한다’는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 현상이 확산해 기업들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조용한 퇴사’란 진짜 회사를 때려치우는 게 아니라 시키는 일만 하고 초과 근무는 거부한다는 ‘심리적 퇴사’를 의미한다. ‘대퇴직 시즌2’인 셈이다. 미국 갤럽 조사에서 직장인 50%가 ‘조용한 퇴사자’라는 충격적 결과가 나왔다. “번아웃(탈진)을 막고자 삶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는 행태”(영국 BBC)라거나 “근로자와 고용주가 서로 멀어지는 현상”(갤럽)이라는 등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MZ세대 직장인 75%가 이미 한 번 이상 이직 경험을 가진 한국 직장에서도 ‘조용한 퇴사자’가 많을 것이다.

▶기업마다 조용한 퇴사자의 확산을 막느라 비상이 걸렸다. 미국 고용주들이 찾은 자구책은 ‘조용한 해고(Quiet firing)’다. 연봉 동결, 승진 배제, 업무 지휘 제외 등의 방법으로 압박해 ‘조용한 퇴사자’를 실제로 퇴사하게 만드는 것이다. ‘눈에는 눈’인 셈이다. 한쪽에선 구인난, 다른 한쪽에선 해고가 일상인 전례 없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 ‘일’에 대한 정의 자체가 흔들리는 시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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