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민주노총만 지켜주는 노란봉투법?
‘노란봉투법’이 다시 정국의 중심에 섰다. 노동조합의 쟁의행위에 대해 막대한 규모의 손해배상을 무분별하게 청구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이다. 2015년 처음 국회에서 발의된 이후 7년간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국회가 미뤄온 사이에 또 곳곳에서 노동자들이 손해배상 청구를 받아야 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이 받은 액수는 470억원, 2014년 쌍용차 노동자들이 받았던 47억원의 정확히 10배다.
이런 일 막자고 발의한 법안을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인 성일종 의원은 “민주노총 방탄법”이라고 불렀다. 참 악의적인 표현인데, 성 의원은 왜 노란봉투법을 민주노총 방탄법이라고 불렀을까. 이 질문은 이렇게도 번역된다. 왜 민주노총만이 노란봉투법의 보호를 받는가? 이렇게 질문을 바꿔 생각해 보니 성 의원의 악의 섞인 표현이 민주노총에 대한 상찬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화물·택배 등 특수고용노동자들을 노동관계법상 ‘근로자’로 포함시키고, 하청·파견·도급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 사실상 지배력을 행사하는 원청에 사용자성을 명확히 부여하는 내용이다. 이런 법이 민주노총만을 보호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지난해 2월 기준으로 민주노총 전체 조합원 중 30%가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한다. 화물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화물연대는 이미 2002년에 출범했고, 택배노조는 2017년 출범해 조직을 넓히고 있다. 이 법이 어째서 ‘민주노총 방탄법’이 될 수밖에 없는지 분명해 보인다. 정규직 노동자에 그치지 않고 보호망 바깥에 놓인 이들을 가장 적극적으로 조직해온 것이 민주노총이라는 얘기다.
쟁의행위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 노란봉투법의 두 번째 내용이다. 현행법상 ‘임금·근로시간·복지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국한된 노동쟁의의 대상을 ‘근로조건 및 노동관계 당사자 사이의 주장’으로 확대하겠다는 것. 이렇게 되면 정리해고 철회나 노동조합 활동 보장, 기업의 사회적 책임 요구 같은 의제들이 쟁의행위의 대상이 될 여지가 생긴다. 예컨대 철도 민영화 저지 투쟁과 같이 공기업의 공공성 강화를 요구하는 파업도 가능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내용이 민주노총에만 해당된다면 그것은 또 무슨 의미인가? 소위 ‘밥그릇 싸움’으로 불리는 임금 문제에 그치지 않고 노동자 전체의 권리 확대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촉구를 위해 파업도 불사하는 것이 민주노총이라는 얘기 아닌가. 그러니 이것이 민주노총을 향한 상찬이 아니고 무엇일까.
노란봉투법의 마지막 내용은 손해배상 청구범위를 제한하고 청구액의 상한선을 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 어째서 민주노총을 위한 방패가 되는가? 손해배상 청구가 사실상 ‘전략적 봉쇄소송’으로 기능해왔기 때문이다. 막대한 손해배상 청구로 노동조합 활동을 억제하고, 손해배상 철회를 조건으로 조합 탈퇴를 유도하며, 이 사건을 지켜보는 다른 노동자들로하여금 쟁의행위를 망설이게 한다. 이 정도 수준의 압박을 가해야만 통제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조직이 민주노총이라면, 그 자주성과 비타협성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 마땅하다.
성 의원은 폄하의 의도로 민주노총 방탄법이라고 했을 테지만, 그 명명은 역의 방향으로 어떤 진실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간 보수언론과 보수정당이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조성해 온 “대공장 정규직의 밥그릇 지키기”라는 편견과는 영 딴판이다. 물론 노동조합의 첫 번째 목적이 조합원의 권익 증진에 있다는 점에서 그것이 부당하다고 비난받을 이유도 별로 없지만,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이 단지 거기에 머물지 않고 더 폭넓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절대적인 신뢰를 보낸다. 노란봉투법이 그 역할을 더할 수 있는 것이라면 역시 서둘러 제정되는 것이 좋겠다.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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