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지불되지 않은 동료애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2022. 9. 20. 03: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택배 물량이 폭증하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유독 눈길이 가는 책이 있었다. 갓 출간된 <마지막 일터, 쿠팡을 해지합니다>(민중의소리)라는 제목의 책이다. 책은 2020년 10월12일 새벽 6시 자택 욕실에서 안타깝게 사망한 장덕준씨의 어머니 이야기로 시작된다. 27세의 건강한 남성이 쿠팡 칠곡물류센터에서 1년반을 근무한 끝에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무리한 근육 사용으로 횡문근융해증까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지난해 2월9일 근로복지공단은 장덕준씨의 죽음을 ‘업무상 재해’에 의한 사망으로 판정했다.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책을 보며 눈을 뗄 수 없었던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휴식을 권했던 가족의 만류에 장덕준씨가 답했던 말이었다. “(내가) 안 나가면 다른 사람이 고생한다.”(43면) 그의 대답에는 오랫동안 동고동락한 동료들에 대한 걱정이 묻어났다. 물론, 장기 알바생이 한 명 빠진다고 물류센터가 정지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용직이 대다수인 곳에서 소위 ‘고인 물’로 불리던 장기 알바생은 로켓처럼 빠른 물류 배송을 위해 꼭 필요했다.

회사는 일용직에게 출근을 강요한 적이 없다고 항변한다. 설사 과로라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의 선택이었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들이 지친 몸을 이끌고 야간근무 출근을 강행한 것은 일당 9만원 때문만이 아니었다. “일용직이라고 뽑아 놓은 사람들끼리 동료라 칭하며, 서로의 빈자리를 메운 행위”(47쪽)였다. 그들은 자신의 휴식이 야간근무 동료들의 고생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국제암연구소는 야간노동을 ‘2급 발암물질’로 규정할 만큼 고된 작업이며, 따라서 야간노동은 주간노동의 30%를 가산하여 업무시간을 산출한다고 한다. 이 사실을 장덕준씨와 동료들은 매일 밤 함께 체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고된 업무의 양과 속도를 맞추기 위해 장기 일용직 동료들이 보여준 협력심은 제대로 평가받고 지불되고 있었을까? 노동자의 시간당 물품처리 개수(Unit Per Hour)를 측정하여 업무 속도가 낮은 노동자를 공개적으로 호명하고 수치심을 주는 첨단기술을 활용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 노동자의 어려움을 채워주는 주변 동료들의 협력심은 측정되지 않았다. 혹시 그 협력심마저 계산하고 최소한의 일용직을 활용하는 것은 아닐까? 감정마저 상품으로 만드는 시대를 넘어 이제는 동료애까지 무임금으로 착취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장덕준씨는 쓰러지기 전 가슴 통증을 호소했다고 한다. 그가 이때까지 견뎌낸 통증들은 오로지 그의 몸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동료들과 함께 공유하는 통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회사는 그 통증이 회복되는 시간까지 계산하지 않았다. 그것은 일용직을 ‘선택’한 당사자의 몫이었다. 어찌 보면 통증의 인내까지도 일당에 포함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페미니스트 과학사회학자 주디 와이즈먼은 어떠한 기술도 사회적 관계의 특징, 모순, 갈등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한다. 대형물류회사의 첨단기술에는 통증의 인내심마저 당연시되는 저임금의 비정규직 노동시장 현실이 밑바탕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의료인류학자 줄리 리빙스톤은 보츠와나에서 아프리카 암 환자를 연구하며 18·19세기 서구인들이 아프리카인들의 통증에 대한 세 가지 선입견에 오랫동안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서구의 지식인들은 그들이 통증 자체를 잘 느끼지 못하며, 백인보다 통증에 대한 인내심이 강하고,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다고 보았다. 그런데 리빙스톤은 실제로 목격된 보츠와나 사람들의 통증에 대한 인내가 ‘본능’이 아니라 ‘문화적 지혜’라고 설명한다. 그들은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성인식 입문의례, 출산의례 등을 통해 통증을 인내하는 법을 배우고 그 과정에서 구성원들과 통증의 사회적 의미를 함께 공유하는 법을 배웠다고 보았다.

리빙스톤은 아프리카인들이 이러한 경험을 통해 누군가 치명적인 질병과 불의의 사고로 인한 극심한 통증을 인내하고 있을 때, 그 곁에서 함께 고통을 공유하는 법을 실천한다고 설명한다. 즉 서구인들은 통증에 잘 견디는 아프리카인들만 보았을 뿐, 그들의 곁에 함께 통증을 짊어질 구성원들이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 같은 서구인들의 무지는 지금 이곳 한국에서 똑같이 반복되고 있지는 않을까? 회사가 자랑하는 첨단기술에 의한 편리한 주문 및 신속한 배송이란 것이 실상 ‘지불되지 않은 동료애’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통증은 절대 공짜일 수 없고, 설사 지불되었다고 해도 당연시될 통증은 없어야 할 것이다.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