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철균 “내 장점은 인문·디지털 융합… 군인처럼 일하겠다”

대구/이영관 기자 2022. 9. 2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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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균 신임 대구경북연구원장
유철균은 “경북도청이 있는 안동, 집인 서울을 오가며 읽을 것이 많아 캐리어를 끌고 다닌다”며 “군대에 왔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고향을 위해 마지막 봉사를 해서 행복하다”고 했다. /대구=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대구 계명대 대명캠퍼스에 도착한 양복 차림의 유철균(56·필명 이인화) 원장이 13일 차 트렁크에서 감색 캐리어를 꺼냈다. 달포 전부터 그의 동반자가 된 캐리어다. 8월 1일부터 그의 새 직함은 대구경북연구원 원장. 대구와 경상북도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1991년 설립된 공공연구기관으로 박사급 연구원만 60여 명인 이 지역 최대 싱크탱크다. ‘영원한 제국’의 밀리언셀러 소설가이자 20대에 이화여대 교수가 됐던 스타 작가, 그리고 최순실씨의 딸에게 학점 특혜를 줬다는 이유로 법정 구속되었다가 실형을 마치고 풀려나기까지, 말 그대로 파란만장 인생이다. 오랫동안 정신 문화의 수도였던 고향을 새로운 지식 기반 사회의 본고장으로 바꿔보고 싶은 꿈을 가지고 3년 임기 원장 공모에 지원했다는 그를 만났다.

-취임 소식이 알려지며 과거 학점 특혜 사건 때문에 시민단체 비판도 받았다.

“경청하면서 열심히 제 일을 하려고 한다. 제가 만약 쫓겨나다시피 공직을 떠나지 않았으면 이렇게 돌아오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대에서 제 희망과는 다르게 나오게 돼서, 나올 때 너무 슬펐다. 그래서 공직에 돌아가서 끝내겠다는 생각을 했다. 올해 초 징역형 자격 제한이 풀리자마자 원장 공모에 지원했다.”

-이른 공직 복귀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나의 의지하고는 전혀 무관하게 공적인 일을 못하는 6년을 보내다 보니, 공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의 반작용이 있었다. 또, 그 당시에 정치적 문제 때문에 감옥을 갔는데, 이제 일단락됐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사면 복권됐으니 저도 이제 다시 일을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서울에서는 저를 미워하는 분들이 많은데 고향에서는 불러주시니, 그 믿음이 고맙다.”

-당시 재판이 정치적 성격이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저 같은 이유로 처벌받은 대학교수가 나 말고 또 있나. 극히 드문 일이었다.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그 강의를 들은 사람이 2956명이었다. 정상적인 대학 강의였으면 그렇게까지 제가 무신경하지 않았을 텐데 처음 해보는 온라인 강의였고, 국내에서 해본 사람이 거의 없는 강의 형태였다. 물론 관행이라고 해서 잘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원칙적으로 안 되는 거였는데, 저도 잘못했고 그 죗값은 치르지 않았나 생각한다.”

-지역 싱크탱크 수장으로서 고민이 있다면.

“위기의 시기에 대구 경북에 돈이 돌게 하고, 사람들이 희망을 보게 하는 것들이 제 일이다. 근데 시장의 논리로 보면 기업 간 네트워크도 수도권으로 더 몰리는 게 어쩔 수 없는 방향이다. 그러나 지방을 다 비울 수는 없지 않은가. 제가 안동에서 놀란 게 있다. 낮에는 그냥 평범한 농촌 풍경인데 7시가 딱 되면, 그 평범한 농촌 풍경의 집들에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안동 인구가 약 30년 전에 27만명이었는데 지금은 16만 도시다. 면적은 서울의 2.4배인데 이 큰 땅을 놀리고 있는 거지.”

-메타버스 때문에 연구원장에 지원했다고 들었다.

“올해 1월 대구 시장님을 만났다. ‘메타버스 예산이 2조6000억 나왔는데, 대구 경북이 제조업 체질을 바꿀 기회는 지금입니다’라고 말하니까 시장님이 ‘그럴 리 없다’고 하시더라. 너무 충격받았다. 지방의 연구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 같았다. 공모를 통해서 경쟁으로 수주를 하는데, 이 예산을 못 가져간 지역은 쇠퇴하게 돼 있다. 마침 1차 원장 공모가 적임자가 없어서 무산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원했다. 고향 일이라 막 속이 터지더라. 면접에서도 ‘기관장 할 줄도 모르고, 경험도 없는데 예산안 읽는 법은 가르쳐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 심사위원들이 좋게 보신 것 같다.”

-본업이 소설가, 문학 전공자다. 다양한 지역 사업을 총괄하는 게 어렵진 않은가.

“농업, 수산업, 원자력 등 다양해서 제가 모르는 분야가 정말 많다. 그래도 제가 이대에서 있던 디지털미디어학부도 융합학부였다. 서로 존중하고 모르는 걸 물어보며, 과제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다.”

-작년에 소설 ‘2061′을 냈는데, 올해는 메타버스에 매진하고 있다.

“작년에 낸 소설이 1만3000부 찍었다. 근데 이 정도 팔리고 보니까 소설 시장이 바뀐 것 같아서 놀랐다. 지금은 몇 부가 팔리는 건 중요하지 않고, IP(지식재산권) 시장이 훨씬 더 중요해지지 않았나. 작가들이 완전히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구상한 메타버스에서 사용된 데이터로 저작권 정보를 모니터링하면, IP 시장으로 장사를 할 수 있다. 이 시장이 몇 조가 될지 모르는 시장인데 우리는 지금 이걸 버려두고 있다.”

-한류 메타버스 전당이라는 구상이 생소하다.

“한국 사람이야말로 메타버스가 가장 절실한 민족이다. 세종대왕이 여진족을 우리 민족으로 통합했을 때, 여진족은 한국인과 완전히 다른 언어 체계를 가지고 있는 민족이었다. 그런데 지금 600년 만에 완전히 우리 민족이 되었고 이제 여진족은 한반도에 없다. 이렇듯 우리는 놀라운 문화적 동화력을 갖고 있는 민족이다. 실제로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에 오지 못하더라도, 매일 한국 노래를 듣고 드라마를 보고 영화를 본다. 이 사람들이 같이 모일 수 있는 곳이 어딜까. 바로 메타버스다.”

-구체적인 계획을 들려달라.

“가상공간인 메타버스에 전세계 한류 팬덤을 위한 거점을 마련하자는 거다. BTS가 아니라 팬클럽 아미(Army)가 시장을 움직이듯, 팬덤을 잡아야 돈을 벌 수 있다. 제가 구상하는 메타버스에 접속하면 세종학당 등 여러 공공기관이 제작하는 한류 콘텐츠를 모아서 볼 수 있다. 다른 팬들과 대화하고, 굿즈도 살 수 있다. 이 공간에 모인 데이터를 AI가 분석해 저작권 정보를 모은다. 영상을 통해 중국의 한 레스토랑에 BTS 사진이 무단으로 걸려있다는 걸 파악하는 식이다. 해외에 문화 콘텐츠 등을 팔려는 기업 등이 이 정보를 사려고 몰릴 것이다.”

-메타버스를 꼭 경북 지역에서 해야 할까.

“경북은 전기가 남아도는 지역이다. 지금 구미 공단에 가보면 200만평 규모 공단이 거의 비어 있다. 전기를 많이 먹고, 많은 데이터를 처리해야 되는 산업으로 가장 적합한 게 메타버스다. 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안동을 ‘한국 중에 가장 한국적인 곳’이라고 부르지 않았나. 경북에는 선비 문화 등 한국 문화 콘텐츠가 많다.”

-한류 메타버스 전당에 드는 예산이 4400억원이다.

“예산이 정말 중요하다. 아마 기획재정부를 100번은 찾아가야 할테니, 얼굴을 익혀두려고 조직도를 원장실 벽에 붙였다. 지역 사업이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할 일이다. 지금 중국 등에서 한국 콘텐츠가 어떻게 불법으로 유통되고 있는지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다. 시장 규모를 파악하고 언젠가 불법 사용에 과금을 하려면, 공공에서 만드는 이런 자료가 필요할 거다.”

-예상하지 못했던 삶을 살아보니 어떤가.

“대구, 경북도청이 있는 안동, 집인 서울에서 이틀씩 머무른다. 어디서든 문학책, 보고서 등 책을 읽어야 해서 캐리어를 끌고 다닌다. 이런 ‘장돌뱅이’ 같은 삶을 살아보니까 생각보다 괜찮다. 제가 2008년 샌프란시스코의 한 호텔에서 60세 넘은 분들이 캐리어 끌고 일하는 걸 보며 너무 충격을 받았다. 그때 그 모습이 좋아 보였고, 저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기관장으로 폼 내며 사는 것보다도, 일하면서 계속 뭔가를 읽고 배우고 가르치는 것. 그런 게 이상적인 지식 노동자의 인생이 아닐까 싶다.”

-연구원 일 외에는 무엇을 하며 지내는가.

“연구원 일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미팅이 늦게 끝나기도 하는데, 한 단락이라도 글을 매일 쓴다. 하루라도 안 쓰면 퇴보한다. 게임도 하긴 하지만, 자동 사냥만 돌려놓는다. 게임에서 동생, 친구들과 채팅 30분 정도 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이어령 평전을 쓴다고 들었다.

“선생이 부탁하셨던 평전을 마무리하고 있다. 저는 이어령이라는 분이 ‘비극적 시대착오’에서 유일하게 벗어난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 발상법 안에 들어 있는 열쇠를 공부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아주 본질적인 갈등은 ‘비극적 시대착오’다. 착한 생각을 가지고 잘하려고 하는데, 어쩔 수 없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시대착오가 일어나는 거다.”

-비극적 시대착오를 좀 더 풀어서 설명한다면.

“저는 문재인 정부 사람들이 중요한 시대착오를 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10년 단위로 주택 개념이 완전히 변한다. 2010년대 사람들은 이전과 달리 역세권 아파트를 원해서, 젊은 맞벌이 신혼부부가 들어갈 주택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거다. 이걸 이해 못 하고 전체 주택 개수만 보고, ‘우리 옛날에 저런 집에 다 살았는데 왜 주택이 부족하냐’는 생각을 한 거다. 이런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있었던 시대착오가 여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이어령 선생이 일하셨던 80대까지, 조용하게 소설을 쓰고 컨설턴트 일을 하고 싶다. 이번이 마지막 공직이 될 거다. 지금 ‘대구경북연구원 헬퍼(helper)’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과거 소설의 스토리 구상을 도왔던 프로그램과 비슷하게, 정책 보고서 만드는 걸 도와주는 거다. 인공지능이 보고서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선행연구를 정리하면, 현안 분석과 해답 제시는 사람이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인공지능과 밀접하게 연구하는 연구원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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