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영원한 ‘1등 기업’은 없다

김성민 실리콘밸리 특파원 2022. 9. 2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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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현지 시각) 미국에서 전해진 인수합병 소식이 큰 화제다. 사진 편집 프로그램 포토샵으로 유명한 디자인 소프트웨어 기업 어도비가 직원 800명인 스타트업 피그마를 200억달러(약 28조원)에 인수하기로 한 것이다.

피그마는 2012년 설립된 클라우드(가상 서버) 기반 디자인 소프트웨어 업체다. 올해 예상 매출은 4억달러, 기업 가치는 100억달러다. 직원 수 2만6000명, 연간 매출이 158억달러, 시가총액이 1400억달러인 어도비에 비하면 구멍가게 수준이다. 하지만 어도비는 이 업체를 1년 매출보다 많은 돈을 주고 사들였다.

일각에선 어도비가 너무 비싸게 샀다고 한다. 하지만 테크 업계에선 “디자인 소프트웨어 ‘왕좌’를 지키기 위해선 결코 비싸지 않은 금액”이라는 말이 나온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어도비의 적수는 없었다. 디자인이나 사진, 영상 제작을 하는 사람들은 열이면 열 어도비 프로그램을 썼다. 하지만 피그마, 스케치, 캔바 등 신생 업체들이 등장해 어도비보다 빠르고, 가볍고, 확장성이 좋은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특히 피그마는 스마트폰·태블릿 등 다양한 IT 기기에서 사용하는 앱 UX·UI(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고속 성장했고, 다양한 디자인 툴(도구)을 적용하며 어도비와 직접적인 경쟁을 벌였다. 디자이너들 사이에선 “피그마 프로그램이 더 좋다”는 반응이 많았다. 어도비 입장에선 초조했을 것이다. 가만히 놔두기엔 목에 가시였을 테다. 어도비 입장에선 미래를 위협하는 그 가시를 제거하는 데 쓰는 200억달러가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사례는 ‘비즈니스 세계에 영원한 1등은 없다’는 말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이미 대기업이 장악한 시장에서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파고들어 세력을 키우는 스타트업들이 즐비하다. 안도하며 시장을 유지하려는 방어적 전략을 취하는 순간 패권을 잃을 수 있다. 영원한 구글, 영원한 애플, 영원한 삼성전자는 없다.

대표적인 예가 메타(페이스북)다.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업체인 메타는 짧은 동영상 플랫폼인 틱톡의 부상 이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틱톡과 비슷한 서비스를 뒤늦게 내놓아도 한번 기운 대세를 뒤집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내 산업계도 무섭게 쫓는 경쟁자의 추격을 받고 있다. 철옹성 같았던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 산업은 중국의 성장으로 위기에 몰렸다.

기존의 것을 유지하며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전법은 유효기간이 다했는지 모른다. 아예 다시 바닥부터 제2의 창업을 해야 무섭게 쫓아오는 경쟁자들을 이겨낼 수 있다. 자동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 수많은 마차 업체들이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업체들은 마차의 구조를 바꾸고, 말의 속도를 높이는 방안을 끊임없이 연구했다. 하지만 결국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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