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알고리즘엔 죄가 없다
‘차별은 없다.’ 카카오모빌리티가 만든 ‘모빌리티 투명성 위원회’가 카카오택시 알고리즘검증 결과를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택시노동자들은 카카오가 가맹택시에 콜을 몰아주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공정거래위원회와 서울시에서 조사 중이다. 이에 대응해 카카오가 자체 위원회를 구성 검증에 나선 것이다. 위원회가 설명하는 알고리즘은 손님에게 가까운 택시노동자를 먼저 찾아낸 다음, 콜 수락률이 높은 택시노동자에게 배차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위원회는 “목적지 정보 표시 없이 자동 배차되는 가맹 기사와 목적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일반 기사 사이에 배차 수락률 차이가 발생하는데, 이는 일반 기사의 선택적인 콜 수락으로 생긴 차이로 차별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키 170㎝ 이상인 사람만 취업이 가능하다고 상상해보자. 키를 측정하는 업무를 인간 관리자에게 맡기면 각종 로비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인간 관리자를 모두 업무에서 배제시키고 모든 사람의 키를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기계를 개발한다면, 입사과정에서 어떠한 차별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의 키 성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요소를 고려하면 결과가 달라진다. 부모의 경제력, 성별, 지역, 세대에 따라 키 차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이 가맹과 비가맹택시를 차별하지 않지만 비가맹택시가 가맹택시에 비해 낮은 수락률을 기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 수락률 차이에 따른 배차 차이 문제를 함께 고민해봐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구조적 차별이라 부른다.
알고리즘에 구조적 차별이 있다고 문제가 해소되지는 않는다. 알고리즘의 지시를 잘 듣는 노동자에게 이득을 주는 게 뭐가 문제냐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카카오는 처음에 무료 중개 서비스로 택시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시장을 지배하면서 유료서비스를 하나둘 도입하기 시작했다. 프로멤버십을 도입해 중개서비스를 유료화했고, 교육비와 랩핑비, 수수료를 받는 가맹택시 사업도 시작했다. 카카오 알고리즘의 지시를 거부하면 일감을 얻기 힘들다는 로직이 발표됐으니 일반택시노동자들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수수료를 내고 가맹택시를 신청해 알고리즘의 지휘감독 아래에서 일하든가, 자유롭게 일을 하면서 카카오로부터 받는 일감을 포기해야 한다. 물론 효과를 알 수 없는 프로멤버십에 가입할지는 계속 고민해야 한다. 카카오는 단순히 시장을 지배하는 걸 넘어 알고리즘으로 택시노동자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알고리즘은 수집한 데이터와 기업의 목표에 따라 언제든 변할 수 있다. 배차뿐만 아니라 요금, 업무평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알고리즘이 활용될 가능성도 높다. 문제인식 없이 알고리즘 로직의 객관성에만 주목하다가는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기업이 노동권과 시장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투명성위원회에 이해당사자인 택시노동자와 비판적 감시자인 노동시민사회단체를 배제한 게 문제가 되는 이유다.
알고리즘은 달콤한 말이나 따뜻한 술이 통하지 않는 차가운 관리자다. 어떠한 예외도 없이 회사가 작성한 매뉴얼에 따라 차별 없이 노동자를 관리하는 원칙주의자다. 알고리즘엔 죄가 없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알고리즘 설계자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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