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의 시대에 시벨리우스를 듣다[유윤종튜브]
유윤종 문화전문 기자 2022. 9. 20. 03:01
www.youtube.com/classicgam
“어제 결선 보셨나요?”
작곡가 시벨리우스가 53년을 산 집이자 그의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핀란드 헬싱키 근교 ‘아이놀라’의 직원은 “라디오로 들었어요. 멋진 연주였죠”라고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나는 우승자의 나라 한국에서 왔어요. 당신들은 이 위대한 작곡가를 자랑할 분명한 이유가 있지만, 저는 오늘 내 나라가 자랑스럽군요.”
5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가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고 우승한 다음 날이었다. 20여 년 만에 찾은 시벨리우스의 집은 봄의 푸른 자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몇십 걸음 떨어진 그의 묘로 걸어가며 마스크를 벗었다. 코로 훅 들어오는 숲의 냄새에서 나는 문득 시벨리우스의 화음을 들었다…고 느꼈다.
얼마간 ‘민족주의적’이었던 대화로 글을 시작했지만, 그 뜰에 누워 있는 대작곡가가 내 얘기를 마음에 들어 했을지는 모르겠다. 시벨리우스는 핀란드의 민족 서사시 ‘칼레발라’에서 초기 작품의 모티브를 얻었고 러시아의 지배에 대한 저항을 담은 교향시 ‘핀란디아’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이후 그의 시선은 ‘나라’ ‘민족’에서 ‘자연’으로 향했다. 열정적으로 끝나는 교향곡 2번에 대해 세상은 ‘러시아에 대한 저항’을 떠올렸지만 시벨리우스는 관련해 답하기를 거절했다. 이후 나온 다섯 교향곡들은 열정보다 자연과의 대화가 두드러지는, 간결하고 압축된 작품들이었다.
지난 밀레니엄이 끝나갈 무렵, 이웃 나라 일본을 대표하는 음악전문지는 평론가들에게 ‘21세기에 주목받을 음악가는 누구입니까?’라는 설문을 제시했다. 여러 답 중 하나에 눈길이 갔다. “21세기에는 환경과 자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다. 자연이 드러나는 작품을 쓴 작곡가가 인기를 끌 것이다.” 이 평론가가 제시한 답은 교향시 ‘바다’ 등을 쓴 프랑스인 드뷔시였다. 이 평론가의 전제에는 분명히 공감했지만 그 순간 내가 먼저 떠올린 작곡가는 시벨리우스였다.
시벨리우스의 음악에는 북방의 바람과 눈보라, 숲의 적막이 들려온다. 그의 선율은 북유럽인의 민요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는 민요에서 멜로디의 소재를 찾지 않았다. 그는 핀란드 각지를 돌아다니며 토착 무당들의 주문을 들었고, 그 단순한 리듬과 가락이라고 할 수 없는 낭송은 그의 선율에 침투했다.
한 평론가는 “그의 음악에서는 대자연의 오르간포인트(지속저음)가 들린다”고 말했다. 위 성부가 요동쳐도 완강하게 저음을 붙들고 있는 오르간포인트처럼, 시벨리우스의 음악은 대자연의 거대함과 신성함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이 파괴한 자연의 보복이 점차 현실로 가시화되고 있는 오늘, 우리는 그가 전하려 한 대자연의 메시지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오늘(20일)은 시벨리우스가 92세로 아이놀라에서 세상을 떠난 지 65년 되는 날이다. 때맞춰 이달과 다음 달에는 풍성한 시벨리우스 음악의 선물들이 준비된다. 30일에는 장윤성 상임지휘자가 지휘하는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을 연주한다. 10월 11일에는 롯데콘서트홀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올해 임기가 끝나는 핀란드 출신 오스모 벤스케 음악감독 지휘로 교향곡 1번을 연주한다. 10월 13일에는 서울 강서구 서울식물원 옆에 문을 여는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사이먼 래틀 지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시벨리우스의 마지막 교향곡인 교향곡 7번을 연주한다. 래틀과 런던 심포니는 이틀 뒤인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도 같은 곡을 선보인다.
시벨리우스는 만년에 이를수록 민족주의를 자신의 음악세계에서 지워나갔다고 앞서 소개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의 이름은 ‘핀란드’와 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1917년 핀란드가 러시아로부터 독립했을 때 세계는 이 북방의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고, 가장 먼저 시벨리우스의 이름을 떠올렸다. 이후 이 나라는 음악가들을 정책적으로 육성했다. 그 큰 성과 중 하나가 ‘지휘대국 핀란드’로 남았다. 벤스케, 올해 KBS교향악단 음악감독이 된 피에타리 잉키넨, 최근 네덜란드의 로얄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차기 수석지휘자로 임명된 26세의 클라우스 메켈레 등 수많은 핀란드 지휘자들이 전 세계의 지휘대를 장악하고 있다.
작곡가 시벨리우스가 53년을 산 집이자 그의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핀란드 헬싱키 근교 ‘아이놀라’의 직원은 “라디오로 들었어요. 멋진 연주였죠”라고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나는 우승자의 나라 한국에서 왔어요. 당신들은 이 위대한 작곡가를 자랑할 분명한 이유가 있지만, 저는 오늘 내 나라가 자랑스럽군요.”
5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가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고 우승한 다음 날이었다. 20여 년 만에 찾은 시벨리우스의 집은 봄의 푸른 자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몇십 걸음 떨어진 그의 묘로 걸어가며 마스크를 벗었다. 코로 훅 들어오는 숲의 냄새에서 나는 문득 시벨리우스의 화음을 들었다…고 느꼈다.
얼마간 ‘민족주의적’이었던 대화로 글을 시작했지만, 그 뜰에 누워 있는 대작곡가가 내 얘기를 마음에 들어 했을지는 모르겠다. 시벨리우스는 핀란드의 민족 서사시 ‘칼레발라’에서 초기 작품의 모티브를 얻었고 러시아의 지배에 대한 저항을 담은 교향시 ‘핀란디아’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이후 그의 시선은 ‘나라’ ‘민족’에서 ‘자연’으로 향했다. 열정적으로 끝나는 교향곡 2번에 대해 세상은 ‘러시아에 대한 저항’을 떠올렸지만 시벨리우스는 관련해 답하기를 거절했다. 이후 나온 다섯 교향곡들은 열정보다 자연과의 대화가 두드러지는, 간결하고 압축된 작품들이었다.
지난 밀레니엄이 끝나갈 무렵, 이웃 나라 일본을 대표하는 음악전문지는 평론가들에게 ‘21세기에 주목받을 음악가는 누구입니까?’라는 설문을 제시했다. 여러 답 중 하나에 눈길이 갔다. “21세기에는 환경과 자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다. 자연이 드러나는 작품을 쓴 작곡가가 인기를 끌 것이다.” 이 평론가가 제시한 답은 교향시 ‘바다’ 등을 쓴 프랑스인 드뷔시였다. 이 평론가의 전제에는 분명히 공감했지만 그 순간 내가 먼저 떠올린 작곡가는 시벨리우스였다.
시벨리우스의 음악에는 북방의 바람과 눈보라, 숲의 적막이 들려온다. 그의 선율은 북유럽인의 민요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는 민요에서 멜로디의 소재를 찾지 않았다. 그는 핀란드 각지를 돌아다니며 토착 무당들의 주문을 들었고, 그 단순한 리듬과 가락이라고 할 수 없는 낭송은 그의 선율에 침투했다.
한 평론가는 “그의 음악에서는 대자연의 오르간포인트(지속저음)가 들린다”고 말했다. 위 성부가 요동쳐도 완강하게 저음을 붙들고 있는 오르간포인트처럼, 시벨리우스의 음악은 대자연의 거대함과 신성함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이 파괴한 자연의 보복이 점차 현실로 가시화되고 있는 오늘, 우리는 그가 전하려 한 대자연의 메시지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오늘(20일)은 시벨리우스가 92세로 아이놀라에서 세상을 떠난 지 65년 되는 날이다. 때맞춰 이달과 다음 달에는 풍성한 시벨리우스 음악의 선물들이 준비된다. 30일에는 장윤성 상임지휘자가 지휘하는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을 연주한다. 10월 11일에는 롯데콘서트홀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올해 임기가 끝나는 핀란드 출신 오스모 벤스케 음악감독 지휘로 교향곡 1번을 연주한다. 10월 13일에는 서울 강서구 서울식물원 옆에 문을 여는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사이먼 래틀 지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시벨리우스의 마지막 교향곡인 교향곡 7번을 연주한다. 래틀과 런던 심포니는 이틀 뒤인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도 같은 곡을 선보인다.
시벨리우스는 만년에 이를수록 민족주의를 자신의 음악세계에서 지워나갔다고 앞서 소개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의 이름은 ‘핀란드’와 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1917년 핀란드가 러시아로부터 독립했을 때 세계는 이 북방의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고, 가장 먼저 시벨리우스의 이름을 떠올렸다. 이후 이 나라는 음악가들을 정책적으로 육성했다. 그 큰 성과 중 하나가 ‘지휘대국 핀란드’로 남았다. 벤스케, 올해 KBS교향악단 음악감독이 된 피에타리 잉키넨, 최근 네덜란드의 로얄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차기 수석지휘자로 임명된 26세의 클라우스 메켈레 등 수많은 핀란드 지휘자들이 전 세계의 지휘대를 장악하고 있다.
유윤종 문화전문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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