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 탄소중립 시작은 우리의 현실을 파악하는 것이다
기후선진국들은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현재를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 기후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겐 한국의 현황을 면밀히 파악해서 필요한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과학적 토대가 필요하다
병원에 가서 정확히 내 몸의 문제점을 찾아 치료하듯, 이제 한국의 탄소현황을 면밀히 진찰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지금 유럽의 한 작은 마을에서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각국에서 모인 과학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서울에서 13시간 비행기를 타고 다시 2시간 기차를 타고 들어온 네덜란드 와흐닝엔 외곽의 작은 호텔에서는 기후변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와 메탄에 대한 모델링과 모니터링에 대한 국제학술대회가 열리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몇 년간 온라인으로 회의가 진행되기는 했지만, 3년 만에 열리는 대면 학회에는 생각보다 많은 과학자가 모였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과거에 비해 참석자 숫자가 너무 많아졌다는 점이다. 전 지구적인 이상기후, 국제사회의 탄소중립 선언, 산업 분야의 RE100 등 이제 이산화탄소, 메탄 같은 온실가스가 세상의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여느 국제학회 모두 비슷하겠지만, 지금 이곳에도 앞서가는 자와 쫓아가는 자들이 있다. 앞서가는 자들은 자신들의 과학적 우수성을 자랑하듯 새로운 기술과 연구 결과들을 늘어놓으며 이래저래 너스레를 떤다. 보고 있으면 너무 부러워서 입이 쩍 벌어진다. 반면에 쫓아가는 자들은 학창시절 모범생처럼 앞서가는 자들의 말 한마디 놓치지 않기 위해 눈과 귀를 집중하며 빛의 속도로 받아쓰기를 한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쫓아가는 자들이다. 부러움과 시기가 교차하지만 아직은 쫓아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지금부터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열심히 받아쓰기한 내용을 풀어보고자 한다.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이산화탄소는 대기 중, 즉 공기 속에 있는 이산화탄소이다. 물, 땅, 나무, 석탄, 석유 등에 들어있는 탄소가 아니라 공기 중에 얼마나 많은 탄소가 있느냐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숨쉬는 공기 속에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가 있고(대기 중 농도), 어디에서 왔는지(배출원), 어디로 가는지(흡수원)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현재 인류가 가장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사실은 공기 중에 이산화탄소 양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관측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온실가스 장기관측소인 미국 하와이섬 마우나로아 지구 배경대기 관측소는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공기 중에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이러한 배경대기가 지구 여러 곳에서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측정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배경대기는 탄소 배출원의 영향을 받지 않는 깨끗한 청정대기를 의미한다. 즉 우리가 지금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배출원(도시·공장·농축산 등) 지역에서의 공기 속에 얼마나 있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것이다.
총량 정보보다 시공간 정보가 중요
여기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잘못된 편견이 있다. 이산화탄소라는 기체는 공기 중에 배출되면 잘 섞이고 화학반응을 하지 않기 때문에 전 지구 어디에서나 농도가 같을 것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해본 사람들은 많이 봤을 것이다. 먼저 얼음 잔에 아메리카노 샷을 부으면 투명한 물에 커피 원액이 들어오면서 얼룩덜룩 검정으로 색깔이 바뀌어 간다. 그리고 우리가 빨대로 저어주면 전체적으로 하나의 색으로 변한다. 지금 우리는 이렇게 하나의 색으로 바뀐 지구를 상상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막 샷을 부은 얼음잔처럼 지구의 대기는 아주 얼룩덜룩한 상태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가 더 진하고 어디가 덜 진한지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유럽, 미국, 중국, 일본 등의 기후과학 선진국들은 자국의 공기 중에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가 있는지 배출원 지역에 지상관측을 늘리거나, 하늘에 인공위성을 띄워서 그 지역의 공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파악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은 현재 2개의 저궤도 위성을 하늘에 띄워두고 전 지구 여러 곳의 공기 속 이산화탄소의 양을 측정하고 있으며, 자국의 배출원 지역을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보기 위해 1개의 정지궤도 위성이 추가로 올라갈 것이다. 일본 또한 2개의 저궤도 위성이 운용되고 있으며 2개의 온실가스 전용 위성을 추가로 띄울 계획을 갖고 있다.
공기 중에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정확히 측정했으면 왜 어떤 곳은 농도가 높고 또 다른 곳은 농도가 낮은지를 이해해야 한다. 얼음잔의 검정이 진한 부분과 진하지 않은 부분의 차이를 보는 것이다. 농도가 특별히 높은 곳은 당연히 배출량이 많다는 뜻이다. 그럼 왜 이곳에서 배출이 많은지는 살펴봐야 한다. 이제 배출량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이라는 정보가 있다. 국가의 탄소배출량에 대한 연간 총량 정보이다. 하지만 이러한 총량 정보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변화를 전혀 설명할 수가 없다. 그래서 지금 많은 국가가 시간과 공간의 정보를 담은 온실가스 배출량 정보를 생산하고 있다. 일본 환경부는 전 지구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의 공간 간격으로 시간당 정보를 생산하고 있다. 상상해보라, 전 지구를 바둑판처럼 1㎞ 간격으로 눈금을 그어 들여다보는 것이다. 자국뿐만 아니라 타국의 탄소배출량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 엄청난 기후기술이다. 이러한 기술은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중국 또한 확보하고 있는 기술이다.
한국, 기후기술 확보가 가장 시급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작은 지역, 즉 농도가 낮은 지역은 배출원이 없거나 강력한 흡수원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우거진 숲이나, 식물이 가득한 공원, 푸른 바다 등은 실제 공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양의 탄소를 어디에서 흡수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흡수원이 존재하니 당연히 탄소를 흡수할 것이라는 추정은 할 수 있지만, 정확히 얼마나 흡수할지에 대한 정량적 평가는 어려운 실정이다. 하지만 이제는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상황이다. 바로 탄소중립 때문이다. 탄소중립은 배출량과 흡수량이 같아 더 이상 공기 중으로 이산화탄소를 내보내지 않는 상황이라 정확한 배출량의 산정만큼 흡수량의 산정 또한 중요한 과정이다. 그리고 흡수량 또한 앞에서 언급한 배출량과 마찬가지로 시시각각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파악해야 한다. 사실 탄소흡수량 변화의 시공간 정보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요즘 들어 빈번해지는 이상기후는 육상 및 해양 생태계의 탄소 흡수 능력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지만 총량 위주의 정보 파악으로는 기후변화에 대한 생태계 반응을 전혀 파악할 수가 없다.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은 자국을 넘어 전 지구의 육상 및 해양 생태계 탄소흡수량의 변화를 진단하고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다양한 위성을 통해 즉각적으로 탄소흡수량을 측정하여 폭염, 가뭄, 집중호우 등에 따라 변화하는 생태계의 흡수량을 정확히 산정하고 있다.
앞서가는 기후선진국들의 연구 내용을 정리해보면, 국가의 기후변화 대응 및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현재를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 기후기술의 확보가 가장 시급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을 촘촘한 바둑판으로 만들어 격자 사각형 사이사이의 공기 속 이산화탄소, 시시각각 변하는 격자 속의 배출량과 흡수량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 배출량을 줄이는 에너지 기술, 탄소포집 및 저장, 생태기반 흡수량 증진 등의 다양한 탄소중립 기술에 대한 투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면밀히 살필 수 있는 충분한 지상관측이나 위성도 없고, 배출량의 시공간 변화를 파악할 수 있는 체계가 없으며, 우리가 가진 자연 생태계의 탄소흡수량이 시시각각 어떻게 변해 가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늘 기후변화의 주범이라 몰아세우는 중국조차도 앞에서 언급한 과학적 기후기술 체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이쯤 되면, 이제 우리가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답은 나온 것 같다. 탄소를 줄이기 위한 기술도 중요하지만 지금 우리 한국의 현황을 면밀히 파악해서 필요한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과학적 토대가 필요하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의사의 진찰을 통해 정확히 내 몸의 문제점을 찾아 치료를 하는 것이 정석이다. 정확한 진단 없이 함부로 약을 먹다간 더 큰일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의 탄소현황을 면밀히 진찰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이것이 기후선진국들의 연구를 통해 얻은 교훈이다.
■정수종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원,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 연구원, 중국 남방과기대 교수를 거쳐 2018년부터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로 근무 중이다. 연구팀을 꾸려 기후변화의 원인과 영향을 밝히기 위한 관측 및 모델링 연구를 진행 중이며, Global Carbon Project, 유럽 항공우주국 기후 모니터링, NASA 온실가스 및 생태계 모니터링 등 국제 공동연구를 수행 중이다. 2018년부터 서울 남산타워 꼭대기에서 도시의 이산화탄소를 측정한 정보를 매일 공개하고 있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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