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우리 시대 클래식

입력 2022. 9. 2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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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 들은 이야기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누군가에게 물었다. "제가 사무총장으로 일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언어였나요." "아니요. 사실은 클래식이었습니다." "…."

제74회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이정재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비영어권 연기로,) 비영어권 콘텐츠로 어떻게 그렇게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나요." "연기자는 꼭 언어로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언어가 다르다는 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이번 수상을 통해 증명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주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주제에 공감하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렇다. 언어가 아니다. 주제다. 주제에 대한 뜨거운 문제의식이다. 더불어 주제에 대한 공감이다.

지난해 10월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FP)는 미 외교관들이 국무부에 보고한 한 외교 전문을 입수했다고 보도했다. ''오징어 게임'을 통해 본 한국 사회의 현실'이 주제였다. 전문에 따르면 외교관들은 한국을 '고도로 계층화된 국가'로 묘사했다. 그러면서 '오징어 게임'의 호소력은 '한국의 승자독식 사회'와 '계급 불평등에 대한 묘사'에 있다고 했다. 이것이 배우 이정재가 말한 주제였다. 전 세계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공감했다. 언어는 문제가 아니었다. 삶의 현실이 문제였다. 고통스러운 삶의 경험과 아픈 현실에 살 떨려 했고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함께 아파했던 것이다.

예술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때론 남루하기까지 하다. 예술가들은 날카로운 매의 눈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의식을 계발한다. 예술가들은 특유의 감수성으로 먼저 아파하고 더 오래 아파하고 더 깊게 아파한다. 하지만 이들은 이런 통증을 자신만의 표현의 수단을 찾아 예술적으로 형상화한다. 기록적 폭우로 서울이 물바다가 되었던 지난 8월, 외국 언론들은 다시 한 번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소환했다. 반지하는 한국어 발음 그대로 'banjiha(반지하)'였다. 현장을 보도한 영국의 BBC는 "현실에서의 결말은 더 최악"이라며 한국의 주거 불평등·경제적 양극화를 짚어냈다. 이렇듯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은,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우리 사회의 아픈 현실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해서 세상에 내놓았다. 세계 시민들과 공감을 형성했다.

불안, 불신, 불평등, 경제적 양극화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시민 모두의 문제다. 누구는 수백억 원을 내고 우주여행을 다녀오는가 하면 누구는 오늘도 물 한모금을 찾아 수 ㎞를 걸어야 한다. 세상의 파이는 커지고 있지만 정작 내 몫은 없다. 한국의 예술가들은 우리 사회의 현실이 결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시민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읽어냈다. 시대정신을 정밀하게 그려냈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자신만의 표현으로 세상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다.

클래식은 라틴어 클라시쿠스(classicus)에서 유래했는데 국가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국가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란 의미였다. 이후로 줄곧 클래식은 궁정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지금의 클래식은 영화든 음악이든 정신에 위대한 힘을 주는 예술을 의미한다. 시대정신, 보편성, 공감능력 거기에 전통까지. 한국의 대중 예술가들은 지금 우리 시대의 클래식을 창작 중이다.

[캐슬린 김 변호사·홍익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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