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산업부문 '탈탄소'와 정부 역할

2022. 9. 2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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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시멘트 등 소재 분야
설비교체 비용 워낙 막대해
자발적 탄소저감 쉽지 않아
같은 문제 당면한 EU 국가
저탄소 전환 유도책 참고를
지난주 삼성전자가 RE100에 가입하며 민간기업의 탈탄소 행보가 본격화되고 있다. RE100은 전 세계 영향력 있는 기업들이 주도하는 자발적 기후 저감 이니셔티브지만 회원사들이 RE100 실천을 자사에 한정하지 않고 가치사슬로 엮인 전 세계 협력사들에도 요청함에 따라 민간이 주도하는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RE100에 가입하기 시작한 시점은 대체로 2020년 이후로 글로벌 기업에 비해 2~3년 정도 늦고 비중도 낮다. 국내 기업이 글로벌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해서가 아니라 재생에너지 비중이 10%에 미치지 못하는 국내 여건상 RE100 달성이 사실상 어려웠기 때문이다.

사실 에너지 전환, 특히 화석연료가 아닌 저탄소 전원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것은 기후변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모든 국가의 핵심 전략이다. 특히 파리협정에 따라 각국이 제출한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 여부는 저탄소 전원을 얼마나 확보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2030년까지 우리는 재생에너지 확보에만 총력을 기울이면 되는 것일까? 2030년 NDC 목표만을 본다면 재생에너지 확보만으로 충분할지 모른다. 그러나 2030년 NDC 후엔 주요 국가 대부분이 선언한 '2050 탄소중립' 목표가 대기하고 있다. NDC를 중심에 둔 탄소 저감에서의 성패가 청정에너지 기술의 개발과 상용화에 의해 좌우된다면, 2050년까지 탄소 저감에서의 성패는 에너지 기술뿐만 아니라 산업 부문 탄소중립 기술의 개발과 상용화에 의해 결정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45년 즈음엔 저탄소 제품이 글로벌 상품시장의 대세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며, 이러한 글로벌 시장 추이와 설비 교체 주기를 고려해 늦어도 2030년까지 산업 부문에서 저탄소 기술이 상용화되어야 한다는 로드맵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런데 산업 부문은 탄소 저감이 어려운 부문으로 유명하다. 산업 부문 탄소배출 대부분은 철강, 화학, 시멘트 등 소재산업에서 나온다. 이들은 정보통신기술(ICT), 우주항공, 자동차, 재생에너지 등 미래 또는 성장 산업에 투입재를 공급한다. 즉, 이들 소재산업의 경쟁력이 미래 성장산업의 경쟁력에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미래의 상품시장을 고려하면 저탄소 방식으로 생산해야 하지만 설비교체 비용이 엄청나고 기존 방식에 비해 생산단가가 비싸 기존 방식으로 생산한 제품과의 가격경쟁에서 불리하다. 물론 탄소가격이 충분히 높다면 생산비용 차이를 상쇄하고 가격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으나 현재 탄소가격은 그 수준에 훨씬 미달한다. 게다가 탄소가격이 어느 정도 상승하면 당장의 국제 가격경쟁력을 걱정한 정부가 개입해 탄소가격을 낮춰왔기 때문에 기업이 저탄소 기술을 도입할 유인은 별로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간기업의 합리적 선택은 어느 정도 수요가 확보될 때까지, 또 생산비용이 기술 발전으로 충분히 낮아질 때까지 기다리며 다른 기업의 도전과 실패 경험을 보며 배우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현재의 상황에서는 2030년까지 저탄소 기술 개발이나 상용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다행인 것은 우리만 어려운 시험지를 받아들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 국가들, 특히 제조업 강국인 독일도 같은 고민을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에 대한 대응으로 EU는 배출권 가격이 더 이상 폭락하지 않도록 탄소시장을 개선하는 한편, 배출권 판매 수입을 이용해 핵심 소재 산업의 저탄소 기술 개발과 조기 상용화를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환경에서 산업 부문의 저탄소 전환을 위해 어디까지 시장 기능에 의존해야 하며 정부는 어느 정도 개입하는 게 적정한 것인지, 개입의 방식은 어떠해야 하는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1차 에너지 전환에 이어 2차 산업 부문 탈탄소화 경쟁에서도 뒤처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오형나 경희대 국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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