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층간소음은 누구의 잘못일까

박세준 2022. 9. 19.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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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마의자 또 켰네. 이제 못 참아. 내일은 직접 올라가 봐야 할까 봐."

"층간소음 때문에 살인 사건까지 발생했다는 뉴스가 왜 자주 나오는지 알겠더라니까" 하면서 말이다.

건축비를 아끼려고 바닥을 얇게 하고, 기둥 대신 벽면으로 하중을 지탱하는 벽식 구조로 아파트를 지은 탓에 층간소음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층간소음에 취약한 오래된 아파트 단지가 재건축에 들어간다고 가정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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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마의자 또 켰네. 이제 못 참아. 내일은 직접 올라가 봐야 할까 봐.”

아내가 첫째를 출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당시 1901호는 우리 가족 ‘공공의 적’이었다. 가까스로 아기를 재우고 평화가 찾아왔다 싶으면, 꼭 위층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부터 발자국 소리, 청소기·세탁기 같은 가전제품 소리가 모조리 생생하게 들렸다. 곤히 자던 아이가 잠에서 깨면 부아가 치밀었다. 아내는 물론, 부모님과 친구, 직장 동료들과도 윗집 험담을 했다. “층간소음 때문에 살인 사건까지 발생했다는 뉴스가 왜 자주 나오는지 알겠더라니까” 하면서 말이다.
박세준 산업부 기자
불과 3년 만에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그사이 둘째가 태어났고, 두 아들은 이내 집안 곳곳을 휘젓고 다녔다.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짓고 목청을 높여봐도 이 녀석들은 전혀 타격감을 느끼지 않았다. 집은 축구장이 됐다가 어느새 UFC 경기장이 되기도 했다. 소파에서 뛰어내렸고, 못 오르게 펜스를 설치했더니 펜스 위에서 뛰어내렸다. 화장실을 뺀 모든 바닥에 유아 매트를 깔았다. 그래도 조마조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언제 아랫집에서 초인종을 누르고 항의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1701호의 입장에선 우리 가족이 ‘공공의 적’임이 분명하다.

“우리나라 건설사들이 문제 아니겠냐.”

뛰어놀고픈 아이들을 막아서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아버지는 건설사들로 책임을 돌렸다. 건축비를 아끼려고 바닥을 얇게 하고, 기둥 대신 벽면으로 하중을 지탱하는 벽식 구조로 아파트를 지은 탓에 층간소음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건설사들도 할 말은 있다.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제14조에는 공동주택 바닥 콘크리트 슬래브의 두께를 210㎜(라멘 구조는 150㎜) 이상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 최근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바닥 두께를 기준치보다 두껍게 하면 그 비용을 분양가에 반영해주는 방식의 당근책을 제시했다. 업계에선 분양가를 조금 올려주는 정도로 바닥을 두껍게 할 수 없는 구조라고 호소한다. 층간소음에 취약한 오래된 아파트 단지가 재건축에 들어간다고 가정해보자. 바닥을 기준치보다 더 두껍게 하려면, 층고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단순히 건축비가 조금 더 들어가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층고 제한에 맞추려면 아파트 층수를 한 층 낮춰야 할 수도 있다. 당연히 재건축 이후 늘어나게 되는 전체 가구수도 줄어든다. 조합원들의 동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벽식 구조도 마찬가지다. 과거 신도시 개발로 단기간에 엄청난 물량의 아파트를 지어야 했던 상황에서 벽식 구조는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건설사는 수십년간 벽식 구조에 맞춰 시공 방식을 발전시켜갔고, 정부의 각종 관련 규정도 여기에 맞춰 자리를 잡았다.

누구나 가해자,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결국 층간소음은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방관해온 책임이 있다. 잘못 자리 잡은 아파트 건축 구조를 바꾸려면, 국민 전체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브랜드나 입지처럼 층간소음도 아파트의 가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건설사가 자연스럽게 층간소음에 더 큰 비용을 지불하고, 정부가 그에 맞춰 규제를 강화할 수 있다.

박세준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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