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백의자유롭게세상보기] '추석 리디자인'

2022. 9. 1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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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와 감사 가득해야 할 한가위
명절증후군 등 갈등으로 얼룩져
변화하는 사회·문화 반영하면서
추석의 진정한 의미 전달 고민을

유난히 이른 시기에 찾아온 추석이 지난 지 일주일이 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거리두기가 해제됨에 따라 추석 이동 인원이 지난해보다 15.8% 늘었다고 한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게다가 성균관이 깜짝 발표한 ‘차례상 표준안’ 때문에 전 부치는 수고가 줄었다는 가정도 있다 하니 조금은 격식의 부담을 더는 추석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잘 알다시피 추석은 대략 삼국시대부터 유사한 형태가 있었다고 여겨지는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농경 사회에서 추수 후 감사 의식을 하는 행위는 종교적으로도 상당히 보편적인 현상이며, 우리 역사에서 유교는 물론 불교의 사상과 의례와도 이어져 왔다. 선사시대 이후 수천년간 농경 사회에서 살아온 우리 민족에게 추수는 곧 생존을 뜻했고 팔월 대보름에 가족 및 이웃과 추수를 조상의 음덕으로 돌리는 풍습을 당연하게 여겨왔다.
김중백 경희대 교수·사회학
그러나 풍요와 감사로 가득해야 할 추석 대신 명절 증후군으로서의 추석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경우가 계속된다는 언론 보도는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엄밀한 인과 관계를 따지기는 어렵지만 2018년과 2019년 연달아 추석 이후 이혼 건수가 추석 전보다 늘어난 반면 코로나19 첫해로 이동이 극히 제한되었던 2020년에는 오히려 이혼 건수가 줄어든 현상은 추석 스트레스라는 현상이 단순한 허구는 아님을 보여준다.

또한, 과거에는 주로 노동력을 제공하는 여성의 입장에서 스트레스가 발생했는데 최근 들어 청년 세대가 중장년 세대와 소통하며 발생하는 스트레스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라디오 토크쇼에서 한 출연자가 추석 때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세 가지가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라는 훈계, “앞으로 계획은 뭐니”라는 간섭, 그리고 “요즘 예뻐졌다”라는 외모 평가라고 할 정도로 가족, 친척 간 일상적으로 나누었던 대화도 이제는 세대 갈등의 불씨로 작용하기 십상이다. 감사와 나눔의 추석이 누군가에게 불편함의 시간이 된다면 그 원인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회학자의 눈으로 본 추석은 사회의 구조, 산업의 형태, 공동체의 특징, 사람들의 행위 양식이 총체적으로 결합한 사회문화적 산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관찰되는 추석의 본질은 베이비붐 세대까지는 널리 받아들여졌던 남성 기반의 가부장적 공동체 사회 구조와 농경 사회라는 낮은 생산성의 산업 구조가 합쳐진 사회적 의식이자 역사문화적 습속이다.

추석을 즈음하여 발생하는 갈등은 2022년의 대한민국 사회가 추석의 근간이 되었던 과거의 우리 모습과 매우 다르다는 데서 기인한다. 가령 현재 사회 구조의 뼈대는 저출산과 도시화 현상이다. 1983년 이미 대체출산율 이하로 내려간 출산율은 대가족과 농경 사회 기반의 추석을 경험했던 세대에 비해 이후 세대의 비중을 상대적으로 줄이며 추석 관련 의식과 습속의 변화를 더디게 만들었다. 92%에 달하는 도시 지역 인구 비율은 인구의 집중화로 이어져 추석 시기의 가족 모임에 예전보다 가치를 두지 않는 결과를 가져왔다.

산업의 형태가 1차 산업에서 제조업을 거쳐 서비스업 중심 사회로 변하며 팔월 대보름의 시기는 그냥 초가을의 어느 하루가 되어버렸다. 물자는 넘치고 원하는 물건은 하루 만에 살 수 있는 현시점에서 추수의 의미를 찾고 한 해의 결실을 감사함에 의미를 두기는 쉽지 않다. 물론 농업의 가치, 추수의 의미를 결코 낮게 볼 이유야 없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 양식과 사고 체계 안에서 차례상에 놓인 음식이 결실과 감사를 상징하기는 어렵다.

공동체의 형성과 소통 방식의 변화 역시 추석의 전통적 모습과 잘 맞지 않는다. 1인 가구가 가구 형태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2015년 27.2%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 유사하였으나 2021년에는 40%를 훌쩍 넘어버렸고 그 결과로 4인 가구는 20% 이하로 감소하였다. 혈연관계인 가족과 행정단위인 가구를 같은 개념으로 볼 수 없긴 하나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가족 형태는 점차 당연하지 않게 변화되고 있다.

그런데 가구는 분리되었더라도 통신기기와 미디어의 발달로 이미 가족 간 일상적인 소통과 정보의 교환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다. 떨어져 살지만 소통은 된다는 사실은 한편으로 긍정적이긴 하나 또 한편으로는 정서적 유대와 상호 이해는 부족한 얕은 소통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때 추석을 통한 가족과 친족의 만남은 자칫하면 불필요한 간섭과 오해로 이어질 수 있다.

추석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수천년을 이어온 우리 민족의 명절이며, 감사와 나눔을 실천하는 풍습이기에 오랫동안 간직해야 할 우리만의 유산이다. 하지만 추석을 상징하는 행위와 습속의 뿌리가 되었던 사회, 문화, 역사적 환경이 크게 변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추석의 의미는 지키더라도 변화하는 사회를 반영하며 새로운 사회 구성원에게 추석의 진정한 의미를 전할 수 있도록 추석의 리디자인(Re-Design)이 필요하다. 앞으로도 추석을 큰 명절을 뜻하는 ‘한가위’로 이어가는 노력은 바로 기성세대의 몫이다.

김중백 경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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