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숲 거치면 풍속 2~3배 ‘휘익’…인간이 키운 ‘빌딩풍’ 인간 덮친다
최소 동 간격 법률로 지정을
지난 6일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에 상륙했을 때 부산 해안가는 그야말로 충격의 장소였다. 집채만 한 파도와 쏟아지는 폭우, 굵은 나무를 부러뜨릴 듯 부는 바람은 공포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태풍이 가진 위력을 인간 스스로 키우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빌딩풍’이다. 빌딩풍은 밀집된 고층 건물 사이에서 부는 강한 바람을 뜻한다. 공간이 좁아지면 바람의 속도가 빨라지는 ‘베르누이의 정리’라는 원리 때문에 생긴다.
빌딩 숲 사이에선 기압이 주변보다 낮아진다. 낮은 기압은 공기의 속도를 높인다. 호스의 노즐 부위를 손가락으로 꾹 눌러 구멍을 좁히면 물이 더 멀리, 더 강하게 뿜어져 나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빌딩풍은 자연적으로 부는 바람의 세기를 2~3배 키운다. 권순철 부산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팀이 힌남노가 부산을 통과한 지난 6일 엘시티 인근에서 측정한 최대 풍속은 초속 62.4m에 달했다. 엘시티는 높이 300m가 넘는 초고층 건물 3개동이 단지를 이루고 있다.
역시 초고층 빌딩 단지인 마린시티에서도 순간 최대 풍속이 초속 47.2m를 찍었다. 이날 부산의 공식 관측 지점에서 확인된 순간 최대 풍속은 28.5m였다. 태풍 ‘난마돌’이 접근한 19일 부산 주변에는 순간 초속 30m 안팎의 돌풍이 불었다. 순간 풍속 초속 40m에선 간판이 떨어지고 초속 60m가 되면 목조 주택이 파손되고, 전신주 등이 넘어진다.
문제는 대책이다. 빌딩풍으로 인한 피해가 바람의 직접적인 힘뿐만 아니라 지상에서 쓸려 올라온 작은 돌 때문에 발생하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2020년 부산에서는 바람을 타고 공중으로 떠오른 조경 목적의 작은 돌멩이들 때문에 고층 아파트의 중저층 가구 유리창들이 박살 나는 일이 일어났다. 권 교수는 “당시 아파트에선 1~14층까지 유리창이 깨졌다”며 “태풍이 오기 전 지상에 있는 조경용 돌멩이들을 치우는 것도 중요한 태풍 대비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의 일부 빌딩 구조는 빌딩풍의 힘을 약화시키도록 지어져 있다. 일본 도쿄에 있는 높이 180m짜리 NEC 슈퍼타워에는 건물 하단부에 2~3개층 높이의 커다란 바람구멍이 있다. 근본적인 대응책은 구조적으로 빌딩풍이 형성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권 교수는 “고층 빌딩을 지을 때 건물 간격을 일정 수준 이상 벌리도록 하는 법률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수 충북대 토목공학부 교수는 “주변에 빌딩이 없을 때 초속 40m 바람을 견딜 수 있도록 지어진 저층 건물들이 빌딩풍으로 인해 초속 60m짜리 바람에 노출될 수도 있다”며 “지역에 빌딩풍이 미치는 영향까지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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