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집권기 10번 방북한 독일 정치인 "북한 사람들 마음 파악해.."

이제훈 2022. 9. 19.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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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원로 정치인 볼프강 노박 방한
김정은 집권 첫해부터 10차례 방북
"남북 자주 만나 신뢰부터 쌓아야"
볼프강 노박 전 유럽의회 의원. 이제훈 기자

“북한사람들의 마음과 바라는 바를 잘 파악해 한반도 평화 과정을 촉진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

볼프강 노박 전 유럽의회 의원이 노구를 이끌고 평양과 서울을 자주 찾는 이유다. 경기도 주최 ‘2022 DMZ 포럼’의 여러 프로그램 가운데 16일부터 세종연구소와 베를린자유대가 조직한 ‘한국-유럽 평화 포럼’ 고양 킨텍스) 일정을 마친 그를 17일 오후에 만났다. 그는 세종연구소 국제자문위원이기도 하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시절 그는 연방총리부에서 정치분석과 기획국장을 지내는 등 독일 사민당에서 잔뼈가 굵은 퇴역 정치인이자 관료다. 노박은 전쟁과 냉전과 분단의 그늘 속에서 어린시절과 청년시절을 보냈다. 그는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3월27일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이내 독일은 서독과 동독으로, 베를린은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으로 쪼개졌다. 중년시절 분단 독일의 느닷없는 재통일을 봤고 노년에 이르도록 통일독일의 빛나는 성취와 함께 고통스런 몸부림도 지켜봐야 했다. 그가 분단 한반도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까닭이다.

그는 착잡한 낯빛으로 말했다. “재통일과 함께 독일은 (다시) 분단됐다. 재통일 이후 동독 시민들은 자기 나라에서 이주노동자로 전락했다. 익숙한 모든 것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사법체계, 경제시스템, 심지어 언어까지.”

통독의 그늘을 되새기던 그의 입가에 이내 웃음기가 스민다. “통독 이후 전문가들과 청년들은 주로 동에서 서로 이주했다. 그런데 최근 옛 서독 지역의 우수한 인력이 더 현대적인 일자리와 매력적인 노동 환경을 찾아 옛 동독 지역으로 이주하는 추세라는 경제계의 보고가 있었다. 옛 동독 지역을 재건하는 데 30년이 걸린 셈이다.”

그는 “독일식 통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흔히 지적되듯 “준비되지 않은 통일”이었을 뿐더러, 무엇보다 “위기에서 시작된 통일”이라 그렇다는 것이다. 그의 긴 설명을 압축하면 이렇다. “전후 유럽에서 독일의 재통일은 관심사가 아니었다. 30살 미만 서독인의 60% 정도가 동독을 외국으로 여겼을 정도다. 무엇보다 독일의 분단은 2차 대전 때 독일의 잘못이 초래한 결과다. 그런 독일이 재통일됐다. (1980년대 말 옛 소련을 포함한 동유럽 사회주의체제의) 위기에서 통일 과정이 시작됐다. 사실 독일은 통일에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위기에서 통일이 시작되면 상처받는 사람이 너무 많다. 피할 수도 있었을 고통스러운 과정을 너무 오래 거쳐야 한다.”

“위기에서 시작된 통일”을 피하라는 그의 거듭된 조언은, 30년째 오지 않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붕괴”를 주문처럼 외는 나라 안팎의 어떤 이들을 염두에 둔 경고처럼 들린다.

그는 ‘차라리 따로 따로 살자’며 북한을 ‘외국’으로 대하려는 경향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강해지는 최근 한국사회의 세태를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사실 지금 남과 북은 통일을 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준비되지 않은 통일은 부담과 고통을 높일 뿐이다. 거듭 말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위기에서 시작된 독일식 통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선 만나고 대화하며 신뢰를 쌓아야 한다. 유럽연합(EU)처럼 부분별 교류협력으로 신뢰를 쌓고 동질감을 높여야 한다. 독일이 오스트리아, 스위스, 네덜란드 등 이웃과 평화롭게 지내는 것처럼 남과 북도 우선은 평화롭고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과 관계를 만드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러며 긴 시야로 통일을 추구하는 게 낫다. 어렵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는 지금껏 북한에 10차례 다녀왔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 집권 첫해인 2012년 평양에 처음 갔고, 2019년 3월 방북이 열 번째였다. 그뒤론 세계적인 코로나19 대유행, 무엇보다 중국의 ‘봉쇄형 방역’과 북한의 국경폐쇄 탓에 3년 넘게 북녘땅을 밟지 못했다.

그가 주로 소통하는 북쪽 창구는 조선노동당 중앙위 국제부장이거나 국제 담당 비서다. 그가 유럽의 중심 국가인 독일, 그 독일의 대표적 정치세력인 사민당에 강력한 인맥을 갖춘 원로라는 사실이 ‘평양’의 관심을 끈 듯하다. 실제 그는 2014년 9월엔 ‘미국 정부의 찬성이 없다’며 반대하던 독일 외무성을 설득해 강석주 당시 노동당 국제비서의 독일 방문을 성사시켰다. 한반도에 전쟁위기의 먹구름이 짙게 깔린 2017년엔 평양에서 이수용 당시 노동당 국제부장을 만나 평창겨울철올림픽(2018년 2월9~25일 강원도 평창)에 참가해야 한다고 격정적으로 설득했다. 헛된 노력은 아니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1월1일 신년사에서 “대회가 성과적으로 개최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노박은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직후 방북했을 때”를 10차례 방북 가운데 “최고의 순간”으로 꼽았다. “2017년과 비교해 그곳은 거의 전적으로 달랐다. 낙관주의와 낙관의 정서를 모든 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 기대가 꺾이면 북한사회에 역풍이 불 위험이 있다’고 걱정했을 정도다.” 그러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은 최악이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한테는 “선제타격 같은 말은 입에 담지도 말라”고, 김정은 위원장한테는 “열린 마음”과 “인내심”을 당부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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