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따뜻하게 느끼게 해줬던 그 음악"..오랜 꿈 이룬 피아니스트 백건우
"좋은 음악성 타고나도 노력 없으면 성장 어려워"
(서울=뉴스1) 조재현 기자 = "'음악을 통해 다른 세계에 다녀올 수 있구나'라고 느낀 순간이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76)가 반세기 가까이 간직해온 꿈이었던 '고예스카스' 연주 앨범을 19일 발매했다. '고예스카스'는 스페인 작곡가 엔리케 그라나도스(1867~1916)가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7곡으로 구성됐다.
그라나도스는 국내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마누엘 데 파야, 이삭 알베니즈와 함께 스페인의 대표 작곡가로 꼽힌다. 그는 스페인의 민족음악을 바탕으로 낭만적이고 따뜻한 선율을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중 피아노 모음곡인 '고예스카스'는 그라나도스의 대표작으로, 마치 미술 작품을 감상하듯 곳곳에서 스페인의 뚜렷한 색채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백건우는 뉴욕에 머물던 젊은 시절, 피아니스트 알리시아 데 라로차의 카네기홀 공연을 통해 '고예스카스'를 처음 접한 후 큰 감동을 받았다. 이후 반세기 가까이 '고예스카스'를 앨범으로 녹음하기를 희망해왔다고 한다.
백건우는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스타인웨이 갤러리 서울에서 열린 앨범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고예스카스'에 대한 애정을 전했다. 그는 "데 라로차의 공연은 늦가을~초겨울에 열려 매우 추웠는데, 음악을 듣는 동안 카네기홀에 햇볕이 든 것처럼 따뜻함을 느꼈다"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연주에 언젠가는 이 곡을 꼭 연주하고 싶다는 결심을 했었다"고 소개했다.
그에게 '고예스카스'는 어떤 작품일까. 백건우는 "감정 표현에 있어 자유로운 곡인것 같다"며 "그라나도스의 경우 당시 유행하는 흐름을 따르는 대신 스페인 사람 답게 더 인간적이고, 즉흥적이고, 감성적이고, 열정적인 면모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백건우는 우리에게 낯선 스페인 음악을 충실하게 전달하기 위해 본인의 느낌을 살리는 데 주력했다고 한다. 그는 "피아니스트가 쓴 곡을 보면 자기 스타일이 명확하게 드러나는데, 그라나도스가 직접 연주한 것을 보면 굉장히 부드럽다"며 "그래서 내가 느끼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게 옳은 해석이라고 마음먹었다"고 전했다.
이어 "작품도 자유롭게 해석했고, 연주도 자유롭게 한다"며 "나로서도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백건우는 '건반 위의 구도자'로 불린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매일 피아노 연습과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곡에 도전하는 모습 때문이다. 그랬던 그도 이제는 음악을 즐기고 싶다고 전했다.
40~50년 전 한국인 피아니스트로서 세계 음악계에서 인정받기 위해 분투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를 찾아가고 있어서다. 작은 바람을 전하는 그의 얼굴엔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백건우는 "젊은 시절 음악인으로 살아남기가 힘들었기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음악과 친해지는 것을 느낀다"며 "이제는 음악이 나를 받아주고, 내가 음악을 받아주는 그런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음악가로서 커리어를 쌓으려면 짧은 시간에 곡도 익혀야 하고, 나와 맞지 않는 지휘자와 연주도 해야 한다"며 "그런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 여유롭게 내가 원하는 곡을 연주하고, 내 스케줄에 맞춰 연주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음악가로 활동할 수 있었던 비법을 묻자 '기본'을 강조했다. 백건우는 "좋은 음악성을 갖고 태어나더라도 결국 노력이 필요하다"며 "음악성을 더 키우지 못하면 발전하기 어렵다"고 했다.
최근 국제 콩쿠르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후배들에게도 던진 조언도 단순했다. 음악 자체에 대한 고민을 더 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현재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는 테크닉 면에서 예전에 비해 훨씬 앞서 있지만 음악은 그게 다가 아니다"라며 "음악의 언어는 폭이 넓기에 연주자들은 음악 자체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더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힘줘 말했다.
백건우는 오는 10월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백건우와 그라나도스-고예스카스' 리사이틀을 통해 국내 관객들과 만난다. 이 공연에 앞서 이달 23일 울산을 시작으로 부평, 제주, 경기 광주, 강릉 등에서도 독주 무대에 오른다.
cho8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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