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시민들 "끼니 걱정 사람들 파다한데" 길고 화려한 여왕 장례식이 불편하다
일상 멈춰 시민들 불만 폭발.."왕실 폐지하자"

70년간 영국을 대표했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열흘에 걸친 국장이 19일(현지시간) 마무리됐다. 각국 정상급 조문객만 수백명이 참석한 역대 최대 규모의 장례식이 이날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엄수됐다. 영국에선 몇 시간씩 줄을 서며 여왕을 조문한 시민들이 많았지만 57년 만에 치러지는 길고 비용이 많이 드는 국장이 불편한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런던 베스널그린에 사는 에릭(26)은 여왕의 죽음이 조금 충격적이었지만 유례없는 고유가·물가 상승으로 그 어느 때보다 먹고 살기 어려워진 와중에 장례식을 여는 데 세금이 쓰인다는 게 화난다고 말했다. 리버풀 시민인 샤론 로스(60)는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는 사람들을 매일같이 본다며 여왕의 장례식에 수반되는 화려함이 “충격적이고 역겹다”고 르몽드에 전했다.
영국은 지난 7월 물가상승률이 10.1%로 40년 만에 처음으로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씨티뱅크는 내년 1월에는 물가상승률이 18%를 넘길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에 집배원, 철도 근로자 등 공공 부문 노동자들은 실질 임금이 줄어들었다며 대대적인 파업에 돌입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장례식에 엄청난 비용이 들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폭스비즈니스는 18일 여왕의 장례식으로 영국 경제가 약 23억파운드(약 3조6000억원) 규모의 손해를 볼 것이라고 보도했다.
안젤로 디슨스라는 음악가도 현 상황을 고려했을 때 장례식에 거금을 들이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미국 공영 라디오 NPR에 말했다. 그는 “(여왕의 죽음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순간인 것은 알겠지만 이를 오히려 영국 왕실을 되돌아보고 개선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지 않겠냐”며 오히려 질문을 던졌다.

장례식으로 일상이 멈춘 데 대한 불만도 쏟아졌다. 영국 정부가 19일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하면서 문화·체육 행사가 취소됐으며, 공공기관과 상점 등이 문을 닫았다. 폭스뉴스는 장례식 당일 영국 은행들이 휴무에 들어간 것도 경제에 수천만 파운드(수백억원) 손실을 입힐 것으로 예상했다.
병원을 비롯한 일부 의료시설도 직원들이 여왕을 추모할 수 있도록 수술이나 상담을 연기하도록 해 항의가 빗발쳤다. 임신 8개월 차인 댄 오브라이언(23)은 “그날 모든 진료를 취소하기로 했다는 병원 측 전화를 받고 나서 엉엉 울었다”고 NBC에 말했다. 그는 제1형 당뇨병 환자로, 진료를 받기 위해 3주 동안 산부인과 내원만 기다려온 참이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과 인력 부족까지 겹치며 이달 기준 병원 대기자는 사상 최대치인 680만명을 기록했다.
장례식을 계기로 왕실을 폐지하자는 목소리도 표출됐다. 엘리자베스 2세의 관이 스코틀랜드를 떠나던 지난 13일 추모 행렬을 향해 야유하던 한 시민은 경찰에 끌려갔다. 12일 에딘버러에서는 군주제 반대 피켓 시위를 하던 여성 2명이 체포됐다. 여왕의 관이 시민들에게 공개된 웨스트민스터 홀 앞에서도 군주제 반대 시위가 이어졌다. 지난 12일 한 시위자는 AP통신에 “현대 사회에서 세습 권력이란 혐오감을 자아낸다”며 “찰스 3세가 (왕실) 가족으로 태어난 것만으로 정치 권력을 갖는 것은 도덕적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고 말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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