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러시아 병사들의 편지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수신인이 소속부대로 돼 있는 편지들이다. 편지에서 병사들은 휴가 또는 전역을 청원하면서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휴가를 가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장교들도 마찬가지다. 대공 미사일부대의 한 소대장은 "더 이상 군사작전에 복무할 수 없습니다. 정신적으로 너무 지쳤습니다"고 호소하며 전역을 요청했다.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중인 러시아군의 보급사정과 사기가 어느 정도로 열악한지 가감 없이 보여준다.
전선에서 쓰여진 병사들의 일기와 편지는 때로는 최고지휘부의 작전 명령서보다 더 귀한 전쟁 사료(史料)가 된다. 2차 대전 당시 독일 제6군 소속 병사 빌헬름 호프만이 1942년 스탈린그라드에서 수첩에 적은 일기는 전쟁의 참상을 가장 사실적으로 기록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말단 병사의 시각에서 소련군 반격에 대한 두려움, 추위와 배고픔, 히틀러에 대한 기대와 원망이 절절하게 배어 있다. 특히 전세가 기울기 시작한 뒤 약 두 달간의 기록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희망이 죽어서야 돌아갈 수 있으리란 절망으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준다. "경미한 부상을 입은 사람들은 운이 좋다. 고향에 돌아갈 수 있으니까" "병사들은 스스로 (곧 죽게 될) 사형수라고 생각한다" "때가 왔다. 우리는 가족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생에서." 러시아 병사들이 지금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편지와 수기를 통해 전하는 상황과 섬뜩할 정도로 흡사하다.
병력이 고갈된 러시아가 해야 할 일은 교도소에서 신병을 추가 모집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아들, 아버지를 집으로 돌려보내 주는 것이다.
[박만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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