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스토킹 범죄 면죄부 '반의사불벌죄' 없애야

윤예원 기자 2022. 9. 19.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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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오후 서울남부지법에서는 피해자를 스토킹하며 죽이겠다고 협박해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던 중년 남성 A씨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렸다.

A씨는 피해자의 목에 가위를 들이대거나 수개월에 걸쳐 '가정을 파탄 내겠다' '죽고 싶냐'고 메시지를 보냈다.

A씨가 선고 직전 '처벌불원서'를 들먹인 것도 그가 선처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피해자와 합의밖에 없기 때문이다.

스토킹 가해자들이 피해자들과의 합의에 목숨 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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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예원 기자

지난 14일 오후 서울남부지법에서는 피해자를 스토킹하며 죽이겠다고 협박해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던 중년 남성 A씨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렸다. A씨는 피해자의 목에 가위를 들이대거나 수개월에 걸쳐 ‘가정을 파탄 내겠다’ ‘죽고 싶냐’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더는 쫓아다니지 않겠다고 피해자와 합의한 이후에도 계속 스토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판사는 선고를 내리기 직전, A씨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냐고 물었다. 그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피해자가 처벌불원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판사는 “피해자가 쓴 처벌불원서는 더 접근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받은 것 아니냐. 이후에도 계속 스토킹했으니 인정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날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9월을 선고했다.

같은 날 늦은 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는 순찰하던 여성 역무원이 자신을 스토킹하던 전 직장동료에게 살해당했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피해자와 서울교통공사 입사 동기로, 불법 촬영 영상물을 빌미로 피해자를 협박했다. 피해자는 정부와 사법당국을 믿고 가해자를 고소했지만,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던 가해자는 1심 재판 선고 하루 전날 범행을 저질렀다.

A씨와 신당역 살인사건의 가해자는 모두 피해자의 경찰 신고 이후에도 끊임없이 피해자에게 접근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문가들은 스토킹 처벌법의 반의사불벌죄를 그 이유로 꼽는다. A씨가 선고 직전 ‘처벌불원서’를 들먹인 것도 그가 선처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피해자와 합의밖에 없기 때문이다. 스토킹 가해자들이 피해자들과의 합의에 목숨 거는 이유다. 신당역 사건의 가해자 역시 피해자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자 수백 회에 걸쳐 ‘찾아갈 수밖에 없다’는 식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부는 이제야 스토킹 처벌법에 대한 반의사불벌죄 폐지 수순을 밟는다고 한다. 늦어도 한참 늦었다. 그러는 동안 수많은 스토킹 피해자가 가해자의 연락 속에 공포에 떨어야 했다.

처음부터 법과 제도를 잘못 만든 법무부, 그리고 반의사불벌죄 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의 스토킹 처벌법 개정안이 올라왔는데도 ‘시기상조’라며 결론을 미룬 국회 모두의 잘못이다.

신당역 여자 화장실 앞 사건 현장에 붙어있는 메모지에는 스토킹이 살인으로 이어진 것을 막지 못한 정부와 사법당국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국회와 정부, 모두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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