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그래프] (39) 서울대 김민재 "농구에 대한 열정, 뒤처지지 않는다"
[점프볼=정다혜 인터넷기자] 서른아홉 번째 미생은 서울대 3학년 김민재(F, 193cm)다. 많은 굴곡이 있었지만, 농구의 끈을 놓지 않은 김민재의 ‘미생그래프’를 살펴보자.
#우등생이 농구선수로 성장하는 과정
김민재는 어릴 적부터 공부를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초등학생 때는 영재수업을 듣고 중학교 초반에는 수학 전교 1등을 하는 등 운동보다 공부에 소질이 있었다. 농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큰 키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졸업 당시 180cm였던 키가 중학교 1학년 때 185cm까지 자랐던 것. 체육 선생님들은 운동을 권유했다.
최소 196cm까지 자란다는 성장판 검사 결과에 부모님도 운동 쪽으로 마음을 기울였다. 이후 김민재는 단대부중으로 전학을 갔다. 농구를 처음 시작하는 단계였기에 적응은 쉽지 않았다. “시작하고 나서 좀 힘들었죠. 농구공을 처음 잡다 보니까 볼을 잘 잡지도 못하고 운동에 적응하는 게 힘들었어요. 그래서 처음 4달 동안은 훈련에 참여하지 못하고 사이드에서 드리블 치는 연습부터 했어요”.
2학년이 된 김민재는 기본기가 적었던 탓에 유급을 선택했다. 유급기간에도 오전, 오후, 야간훈련 가리지 않고 성실히 참여했다. 함께 힘쓴 A코치의 노력도 빛났다. “당시에 A코치님이 따로 오셨는데 오전에 제 운동을 많이 봐주셨어요. 코치님이 저를 장신 가드로 키우겠다고 하셔서 맨날 드리블치고 그랬어요. 제가 지금도 외곽에서 플레이를 하는데 그때 습관들이 남아있는 거예요”.
특히 추계 대회 금명중전에선 단대부중이 50점을 기록했는데 김민재 혼자 30점을 올렸다. 잠재력을 알아본 많은 고등학교 코치들은 김민재를 탐냈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용산고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를 회상한 김민재는 그 시절을 ‘신세계’라고 표현했다.
“그때 3학년 형들이 7명이 있었는데 1명 빼고 지금 다 프로에 갔어요. 전국대회 1번 빼고 다 결승 갔을 정도로 엄청 잘하는 형들이었어요. 형들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해서 혼도 나기도 했고 운동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었죠. 1학년 춘계 대회 땐 아예 엔트리에 못 들었어요”.
어려움 속에서도 고등학교 첫 출전의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2015 연맹회장기 경복고와의 결승전 경기에서 용산고 주전 센터가 파울 트러블에 걸려 벤치로 물러났다. 이 시간 동안 김민재는 약 5분가량 코트를 밟았는데 그에게 주어진 미션은 상대 센터를 막는 것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파울과 트래블링을 유도하는 등 잊지 못할 순간을 만들었다.
2학년 때는 주전과 식스맨을 오가며 활약했다. 운동 및 생활 면에서도 완전히 적응했다. “(1학년 때 비하면) 맞는 옷을 찾은 느낌이었어요. 고등학교 올라오고 나서는 좀 더 체계적인 농구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제가 그 조각에 못 들어갔던 거죠. 중학교 땐 우당탕탕 농구만 했던 건데 1년 동안 훈련을 하다 보니까 팀 농구를 알게 됐던 거 같아요”.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인 고등학교 3학년. 그의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사실 고등학교 올라와서 키도 더 클 줄 알았고 지금보다 더 잘하는 선수가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미래를 그려봤을 때 ‘프로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193cm에서 멈춰버린 신장과 흘린 땀만큼 나오지 않은 결과물에 확신이 없었던 김민재는 선뜻 입시에 돌입할 수 없었다. 또한, 모의고사 성적도 나쁘지 않게 나왔던 터라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그를 지켜본 담임선생님은 서울대학교 진학을 추천했다.
“농구부 부장 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이셨는데 서울대 체육교육과를 나오셨어요. 선생님께서 저에게 서울대에 농구랑 공부랑 병행해서 진학하는 길이 있는데 농구도 계속할 수 있고 공부도 되니까 그쪽 길을 추천해주셨어요”.
고민 끝에 그 길을 택한 김민재는 다시 펜을 잡았다. 공부하는 와중에 동계훈련이나 팀 훈련도 마다하지 않았다. 공부와 운동의 병행으로 체력적으로 힘이 부쳤지만, 노력하는 만큼 성적도 응답했다.
하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진 못했다. 수시 원서 6개 중 서울대 한 군데만 지원했고 ‘불합격’ 통지를 받았기 때문. “(농구부) 동기가 저 포함 7명이었는데 저 빼고 다 대학에 합격했어요. 고등학교 3학년이면 입시가 전부일 나이잖아요. 죄인이 된 거 같아서 펑펑 울고 그랬어요”.
서울대에 진학하고 나서도 농구를 계속할 예정이었던 김민재는 사라진 기회에 절망에 빠졌다. 결국, 운동을 잠시 멈추고 공부에 집중하기로 했다. 재수학원에 다니는 동안 모의고사 성적도 준수하게 나왔기에 다시 한번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변수가 생겼다. 당시 수능 국어 난이도가 수험생들의 발목을 잡았고 김민재도 이 과목으로 인해 또다시 서울대 입학에 실패했다. 타 대학 건축학과에 진학했지만, 서울대에 미련이 남았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그는 다시 한번 수시에 지원했고 1차 합격자발표날 바라고 바라던 ‘합격’ 글자를 마주했다. 2차인 면접과 실기까지 응시한 김민재. 마침내 서울대생이 됐다. “주변 사람들이 축하를 많이 해주셨어요. 2020년에 입학을 하게 됐는데 나이로 치면 유급까지 해서 4수라고 볼 수 있죠(웃음)".
#다시 시작된 농구 인생
공부와 농구를 병행할 수 있게 됐지만, 1학년 시절은 아쉬움만 남았다. “2020년에 코로나가 터졌잖아요. 그때 서울대 농구부 전력이 역대급이었어요. 근데 코로나 때문에 MBC배도 취소됐고 어떨 땐 1주일 전에 취소되고 그래서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아쉬움이 남는 만큼 2학년 땐 활발하게 활동했다. 김민재는 KB국민은행 Liiv M 3x3 코리아투어 2021 4차 인제대회 남자오픈부에서 우아한 스포츠 소속으로 우승을 차지한 기억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MBC배 때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예선에서 서울대는 우석대 상대로 111점을 기록하면서 MBC배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김민재는 38점 11리바운드 4어시스트로 맹활약했고 대회 평균 29점을 기록했다.
올해 3학년이 된 그는 3x3 국가대표 선발 트라이아웃에 참가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오픈부에선 우승을 몇 번 했다. 하지만 이번 트라이아웃 참가를 계기로 리그부에도 도전하고 싶은 목표가 생겼다. 2년 전부터 오픈부로 3x3 무대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 이제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볼 때다"라며 참가 이유를 밝혔다.
국가대표 예비엔트리 6인 명단에 올랐던 김민재는 첫 번째 탈락자가 됐지만 후련한 듯한 모습이었다. “솔직히 탈락할 줄 알고 있었어요. 형들에 비해 부족한 것도 알았고 형들이 너무 잘하더라고요. 저는 거기서 같이 훈련한 것만으로도 많은 걸 배웠어요”.
세 번의 도전 끝에 서울대에 입학하고 3x3 국가대표에 도전하여 예비엔트리 명단에 올랐던 김민재의 다음 도전은 드래프트다. “나중에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을 바꾸고 싶다는 개인적인 목표가 있는데 그 목표를 이루는 데 있어서 다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바꾸려면 선수로서 높이 올라가야 사람들이 보기에 믿음이 갈 거 같아서요”.
또한, 김민재는 배움에 있어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사실 고등학교 때 이후로 체계적인 운동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래서 3x3 훈련 갔을 때도 ‘오랜만에 체계적인 시스템 속에서 진짜 선수다운 훈련을 하는구나’라고 느꼈어요. 만약 프로에 가게 되면 더 체계적인 훈련을 하게 되잖아요. 그 안에서 배우는 것들이 많을 거 같아서 기대돼요”.
이어 그는 “제가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공백이 많으니까 농구 실력이 떨어지는 걸 알지만, 농구에 대한 열정이나 진심만큼은 다른 선수들한테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트라이아웃 때도 열정 있고 책임감 있는 모습 보여드릴 테니 좋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며 열정을 드러냈다.
#사진_점프볼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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