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처, 文 정부 때 붙인 회의실 이름 변경.. 평화실→밴플리트홀

박수찬 2022. 9. 19.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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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가 문재인 정부 시절 확정한 회의실 이름을 바꿨다.

19일 보훈처에 따르면, 청사 5층 회의실 명칭이 평화실에서 밴플리트홀로 바뀌었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밴플리트 장군의 이름을 딴 회의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유엔참전용사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한 다양한 사업 추진을 통해 한미동맹과 보훈외교를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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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가 문재인 정부 시절 확정한 회의실 이름을 바꿨다.

19일 보훈처에 따르면, 청사 5층 회의실 명칭이 평화실에서 밴플리트홀로 바뀌었다. 밴플리트홀은 미 8군사령관으로 6·25 전쟁에 참전한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의 이름을 땄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국가보훈처 제공
박민식 보훈처장은 “밴플리트 장군의 이름을 딴 회의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유엔참전용사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한 다양한 사업 추진을 통해 한미동맹과 보훈외교를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밴플리트 장군은 1951년 4월 11일 6·25전쟁에 미 8군사령관으로 참전해 중공군의 공세를 꺾고 38도선 북쪽으로 전선을 옮겼다.

한국 도착 직후 “승산이 없는 전쟁이니 도쿄로 철수해야 한다”는 참모의 건의를 듣고, “나는 승리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나와 함께하기 싫다면 당장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역 후에도 코리아 소사이어티(Korea Society)를 설립하여 생의 마지막까지 한미 우호 증진에 크게 기여한 한미동맹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의 아들 제임스 밴플리트 2세도 6·25전쟁에 자원해 폭격기(B-26) 조종사(미 공군 대위)로 활약하다 1952년 4월 4일 북한의 순천지역(해주 부근)에서 폭격임무를 수행하던 중 적의 대공포를 맞고 실종됐다.

밴플리트 대위를 찾는 수색이 시작됐지만, 밴플리트 장군은 “내 자식을 찾는 일로 다른 장병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된다”며 수색을 중단시켰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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