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인문학 이야기

2022. 9. 1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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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갈매나무출판사 제공

"기실 <마담 보바리>를 제대로 읽으려면 당대 프랑스 요리 문화를 이해해야만 한다. 전직 요리사이자 역사학자인 파트리크 랑부르가 저술한 <프랑스 미식과 요리의 역사>에 따르면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는 주방을 매우 싫어했다. (...) <마담 보바리>에서 요리는 단순히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지 않고 등장인물의 결정적인 심경의 변화와 욕망을 상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마담 보바리>에서 요리는 사랑을 전달하는 매체로 자주 사용된다.

마담 보바리(엠마)는 우연히 초대받은 후작의 저택에서 화려한 예술 작품과 의상에도 감탄했지만, 무엇보다 음식 문화에 가장 매료되었다. 식탁에서 풍기는 아름다운 꽃향기, 냅킨 냄새, 송로버섯 요리 향기에 취했고, 처음 먹어보는 석류와 파인애플 그리고 입속에서 파도치는 샴페인, 부드럽고 하얀 설탕 가루에 더욱 반했다. (...) 고급 포도주, 새우와 아몬드즙으로 만든 수프, 푸딩과 같은 고급 요리가 담긴 유리잔과 식기는 부딪히는 소리조차도 '식탁 위의 음악'처럼 울렸다."

<오십, 나는 이제 다르게 읽는다>(갈매나무)는 문학과 인문학이 제대로 만났다. '도스토옙스키부터 하루키까지, 우리가 몰랐던 소설 속 인문학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의 저자는 지방 소도시의 고등학교의 교사다. 페이스북에서 아내와 딸,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드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그는 고전문학마저도 인문학 책과 함께 풀어낸다.

그렇다고 전혀 어렵지 않다. 줄거리 요약에 급급해 필자만의 인식이나 통찰을 보여주지 못하는 서평집과도 확연히 다르다. 장르의 틀에 갖히지 않은 점이 이번 책의 장점이다. 이번 책에서는 그의 유쾌한 유머보다 진지한 분석이 돋보인다.

소설 읽기의 즐거움은 체험에 있다고 말한다. <감정 어휘>, <어른의 어휘력>을 쓴 유선경은 작품을 생생하고 풍부하게 체험하고 싶다면, 소설가가 쓴 씨줄뿐 아니라 이런 스토리를 탄생하게 만든 시대나 공간, 유무형의 문화적 요소 등 날줄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날줄들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게 담겨 있다.

박균호 저자의 글은 요절복통 웃기는 이야기가 장점인데, 이번 책은 진지해서 좀 아쉬웠다. 하지만, 그가 누구던가. 168쪽에 이르러 결국 터져버렸다. '운명과 본능의 외줄 타기, 꾼들의 중독사'라는 제목의 꼭지에서 다. 소설 <황금광 시대>(표명희)와 카지노의 흥망성쇠가 드러내는 인간 욕망의 역사인 <도박의 역사>(데이비드 슈워츠)를 소개하면서 이런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음식을 남기지 않으면 다음 방문 때 고기 1인분을 무료로 증정하는 쿠폰을 준다는 안내문을 보고야 말았다. 샤부샤부 육수에는 라면 사리와 기타 먹러리가 수북했다. 고기 1인분이라는 동기 부여가 생겼으므로 배가 터지기 직전인데도 꾸역꾸역 먹었다. 아내는 집에 도착하기 전에 배탈이 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찌어찌해서 다 먹어치웠는데 제기랄, 밑반찬이 남았다.

초인적인 투지를 발휘해 그마저도 먹어치웠다. 숨을 간신히 내쉬면서 한숨 돌리려고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또 제기랄, 지난치게 친절한 직원이 서비스라면서 과일 한 접시를 대령했다. 아무리 투지를 발휘해도 안 되는 일이 있는 법이다. 과일 한 접시를 두고 아내와 토론을 벌였다. 토론의 주제는 과연 서비스로 주는 과일까지 먹어치워야 고기 1인분 쿠폰을 주는지였다.

우리에겐 생사가 달린 문제였지만 그렇다고 10대 아르바이트생에게 "서비스로 주는 과일까지 다 먹어야 쿠폰을 주나요?"라고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급해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서비스로 준 과일은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아니므로 예외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지만, 혹시 우리의 생각이 틀렸다면 내가 배가 터지도록 꾸역꾸역 음식을 밀어 넣은 그간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간다. 애증의 과일을 차마 뱃속까지 넣진 못하고 목구멍 중간까지 쑤셔 넣은 다음 배를 부여잡고 간신히 계산대로 갔다."

이후의 이야기는 책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바란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가 도박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도박판이나 인생살이나 모두 '이쯤에서 그만'의 미학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이 에피소드의 마지막에 덧붙이고 있다. 이 책에는 20개의 주제로 모두 43권의 소설과 인문서를 소개하고 있다. 소설과 인문서의 가이드북으로도 손색이 없지만, 유머가 풍부한 에세이스트의 일상을 흥미롭게 엿보는 재미도 있다.

신기수 우버객원칼럼니스트(숭례문학당ㅣ즐거운예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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