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세상에서 가장 작은 목격자

윤진용 법무법인 저스티스 변호사 2022. 9. 19.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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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용 법무법인 저스티스 변호사

얼마 전 영구미제사건으로 남을 뻔했던 대전 둔산동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사건이 DNA를 이용한 과학수사의 발전으로 인해 21년 만에 범인을 잡았다. 당시 범행에 사용된 차량에서 발견된 마스크와 손수건에서 소량의 DNA를 검출하는데 성공해 이 유전자와 충북 소재 불법 게임장에 남겨진 유전자가 일치하는 것이 확인되면서 범인들을 검거했다. 물론 이러한 쾌거는 범인을 끝까지 잡고야 말겠다는 수사기관의 끈질긴 노력의 결과다.

미국드라마에서나 보던 유전자 분석이 본격적으로 수사에 활용된 건 1991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유전자 분석실이 신설되면서부터다. 현재 DNA 검사는 범죄 수사뿐 아니라 질병예측, 실종 가족확인 등 여러 분야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다. DNA는 그 사람의 질병유무, 가족관계, 얼굴형태, 생활방식까지 알아낼 수 있다고 한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을 열린 결말로 끝낼 수밖에 없게 했던 '화성부녀자연쇄살인사건' 또한 2019년 유전자 분석결과 10건의 사건 중 5건의 현장에서 발견된 DNA를 분석해 당시 다른 사건으로 수감 중이었던 범인의 유전자와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고 사건 일체의 자백을 받아내며 사건을 종결시켰다. 영화에서도 보여주듯이 당시에는 박두만(송강호 분), 서태윤(김상경 분) 형사처럼 범인을 잡겠다는 열정은 충분했으나, 결정적으로 증거를 보존하고, 분석하고 수사할 인력도, 장비도, 기술도 없었던 그런 시대였다.

30년이 지난 지금 유전자 분석 없는 범죄 수사는 상상하기 어렵다. 현재 우리나라의 유전자분석기술은 수십 년 전에 현장에 남아있었던 극미량의 흔적만으로 용의자의 DNA를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이다. 여기에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검사로 익숙해진 PCR 증폭 방식이 큰 역할을 했다. 1ng(나노그램, 1ng은 10억분의 1g)의 유전자만 있어도 양을 폭발적으로 증폭시켜 분석이 가능하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목격자인 셈이다.

정확도 또한 말이 99.999…%이지 범인이 외계인만 아니면 100% 동일인이라고 한다.

통상 이렇게 분석된 DNA정보는 ' DNA 데이터베이스'와 대조 분석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DNA 데이터베이스에는 현재 'DNA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엄격한 요건과 절차에 따라 수집된 범죄자와 범죄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물에 담긴 DNA 정보가 담겨져 있다. 이러한 대조 분석 작업을 통해 용의자를 특정해 내게 된다.

물론 DNA 데이터베이스의 대상 범위와 사회적 이용을 어디까지 하느냐는 개인의 정보보호와 상충되기 때문에 앞으로도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통한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며칠 전 신문에서 6200만 년 전 초기 포유류 치아 화석을 분석해 몸무게, 임신기간, 수유기간, 수명까지 멸종한 고대동물의 일생을 추적해냈다는 기사를 보고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이 이 정도까지인가 싶어 새삼 놀란 적이 있다. 현재 DNA을 가지고 사람의 생김새를 추정해 몽타주를 만드는 기술연구가 생명과학발전과 함께 속도를 내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이미 DNA외형 정보를 수사에 적용할 수 있는 법을 마련했다고 한다,

필자가 초임시절에 방화현장을 촬영한 CCTV 영상 화질이 좋지 않아 화질개선팀에 요청해 그나마 개선된 영상을 받아 보았는데도, 여전히 범인과 범행도구를 식별할 수 없어 담당자에게 항의한 적이 있었다. 당시 담당자가 "검사님 혹시 미국 드라마 많이 보셨어요? 현실에서는 불가능해요"라는 답변을 들은 기억이 난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우리나라의 과학수사는 정말로 많은 발전을 해왔다.

미래의 과학수사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포렌식 기술과 같은 디지털기술을 이용한 자동화가 급속히 발전할 것이다. 컴퓨터에 정보만 넣으면 3초 안에 범인을 특정해 내는 영화 속 장면들이 현실화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과학수사만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것은 안 된다. 결국 수사는 사람이 하는 것이고, 과학기술로 확인된 증거들을 판단하는 것도 사람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자기는 서류만 믿는다는 서태윤 형사를 우리가 신뢰할 수 없는 것처럼,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섣불리 사용하거나 과학수사에만 의존하는 수사는 오히려 억울한 또 한 명의 피해자를 만들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오랜 시간 그 분야를 경험해온 전문가의 직관과 행간을 읽는 능력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그것을 통제하고 적재적소에 이용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럼 의미에서 이번에 둔산동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사건 범인 검거는 숙련된 수사관과 과학수사의 합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 크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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