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 그 사연] 더 블루 '너만을 느끼며', 1990년대초 '아이돌'..유행을 선도하다

2022. 9. 19.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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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계에 '아이돌'이란 말이 생기기 전, '하이틴 스타'란 말이 있었다.

1990년대 초반 최고의 하이틴 스타 중에 김민종과 손지창이 있었다.

두 사람은 배우로 활동하다가 1992년 초콜릿 광고 현장에서 만나 '더 블루'를 결성하고 노래 '너만을 느끼며'를 발표했다.

이후 이들을 알아본 제작진은 두 사람에게 함께하기를 제안했고 그렇게 더 블루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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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을 느끼며’가 수록된 더 블루 1집, 1992

가요계에 ‘아이돌’이란 말이 생기기 전, ‘하이틴 스타’란 말이 있었다. 1990년대 초반 최고의 하이틴 스타 중에 김민종과 손지창이 있었다. 지금은 연예인으로 가수와 배우를 겸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과거엔 드문 일이었다. 배우가 가요계에 진출해 히트곡을 내며 유행을 선도한 초기 인물이 이들이다. 두 사람은 배우로 활동하다가 1992년 초콜릿 광고 현장에서 만나 ‘더 블루’를 결성하고 노래 ‘너만을 느끼며’를 발표했다.

더 블루 결성은 흥미롭게도 1980년대 후반 한국 사회를 강타한 홍콩영화 붐에서 시작한다. 1986년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화양극장에서 초라하게 개봉한 주윤발·장국영 주연의 영화 <영웅본색>이 입소문을 타고 흥행하면서 패션·영화·음악 등 한국 대중문화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의리 있는 뒷골목 사내들의 이야기가 공감을 받은 것이다.

<영웅본색>의 인기로 장국영은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내한해 초콜릿 광고를 찍고 노래 ‘투유(To you)’도 취입했다. 이 광고 현장에서 배우로 활동하던 김민종과 막 신예로 떠오른 손지창이 만났다. 이후 이들을 알아본 제작진은 두 사람에게 함께하기를 제안했고 그렇게 더 블루가 탄생했다. 더 블루는 광고 음악으로 ‘너만을 느끼며’를 부르고 음반을 발표하자 당시 10∼20대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1992년 김민종과 손지창은 일종의 상징과 같은 존재였다. 한국사회가 1980년대 이데올로기 시대에서 1990년대 소비 시대로 전환하던 때, 10∼20대가 영화·음악의 구매파워로 떠오른 시점에 등장한 스타였다. 이들은 1994년 KBS드라마 ‘느낌’의 주연을 맡고 주제가 ‘그대와 함께’를 불렀다.

하지만 영원한 부귀영화는 없고 화려함에는 늘 어두운 면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1996년 김민종은 자신이 부른 영화 주제가 ‘귀천도애’가 일본밴드 ‘튜브’의 노래와 유사하다는 표절 시비에 휘말리면서 고초를 겪었다. 이후 그가 출연한 영화가 대부분 흥행에 실패하면서 깊은 좌절을 맛보았다. 손지창 또한 남다른 가정사가 공개돼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렇게 잊혀갔던 더 블루는 2013년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소환되며 살아났고 2022년 ‘히든싱어7’을 통해 또다시 생명력을 이어나갔다.

이들 삶의 궤적을 보면 <명심보감>의 한 구절, ‘천유불측풍우(天有不測風雨) 인유조석화복(人有朝夕禍福)’이 떠오른다. ‘하늘에는 측량하기 어려운 비바람이 있고 사람에게는 아침저녁으로 바뀌는 화복이 있다’는 뜻이다. ‘히든싱어7’을 시작으로 다시 의미 있는 두 사람의 활동을 기대해 본다.

박성건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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