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후 지정학적 리스크 최고… 한국, 정부·기업이 전략적 사고해야”

김진명 워싱턴 특파원 2022. 9. 1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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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이 만난 사람] 글로벌 경기 침체 예측한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
스티븐 로치 예일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난 12일 본지 화상 인터뷰에서“내년 글로벌 경기 침체가 올 위험성이 높고,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며“세계경제를 성장이나 회복세로 유지할 주요 동력이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로치 교수는“2차 세계 대전 이후 지정학적 리스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며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AP 연합뉴스

“최악은 아직 오지 않았다. 미국이 경기 침체(recession)를 피하려면 ‘기적’이 필요할 것이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각) 미국 CNBC방송 인터뷰에서 스티븐 로치(77) 예일대 경영학과 교수는 “잠시 지연된 통화 긴축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분명히 경기 침체가 올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리고 3주가 지난 후 미국 경제 상황은 로치 교수가 예상한 바로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지난 13일, 미국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시장 전망치(8.1%)보다 높은 전년 대비 8.3%를 기록했다고 노동통계국이 발표하자 뉴욕 증시는 폭락했다. 그는 12일 이뤄진 본지와 화상 인터뷰에서 이미 이런 상황을 우려하고 있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세일러 시카고대 교수는 지난달 말 미국 경제에 대해 “경기 침체라고 할 만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실업률이 기록적으로 낮고, 일자리는 기록적으로 높다”며 “튼튼한 경제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적이 일어나야 미국이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가.

“미국 노동 시장은 여전히 튼튼하다. 문제는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지금 미국의 통화 정책을 긴축 쪽으로 가져가겠다는 점을 매우 분명히 밝히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완화적 통화 정책을 시행 중이다. 명목상 연방기금 금리가 인플레이션율을 훨씬 밑돈다. 이런 마이너스 실질 금리에서 플러스 실질 금리로 가려는 것이다. 이는 (기준 금리를 20%까지 올리는 초고금리 정책을 펼쳤던) 1980년대 초반 폴 볼커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미국 역사상 가장 안 좋은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실질 금리가 현재 수준에서 매우 급격히 오를 것이고, 조금 지연된 그 영향이 제대로 나타날 때부터 경제는 아주 급격하게 침체하기 시작할 것이다. 내년에 경기 침체가 올 가능성은 아주 크다.”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가 11월 발간 예정인‘우발적 충돌: 미국, 중국, 잘못된 서사의 충돌’표지. 미국과 중국이 너무 짧은 기간에 신냉전으로 돌입하면서 생긴 문제를 다룬 책이다. /아마존

-글로벌 경제 역시 비관적인가.

“2023년 글로벌 경기 침체가 올 위험성이 높고,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고 본다. 유럽은 이미 경기 침체에 진입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중국 경제도 급격히 하강했다. 중국 경제가 의미 있는 회복세를 보일 가능성은 줄어들고 있다. 미국·유럽·중국이란 세계의 절반이 경기 침체로 들어갈 경우, 세계 경제를 성장 혹은 회복세로 유지해 줄 만한 다른 주요 동력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내년에 글로벌 경기 침체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이미 2023년 세계 경제 성장률을 2.9%로 낮췄다. 보통 2.5%면 글로벌 경기 침체로 본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이 전망치는 더 하향 조정될 것 같다.”

과거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을 역임한 로치 교수는 요즘 특히 중국 경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다음 달 중국 공산당 20차 당 대회에서 당 총서기직 3연임을 확정 지을 것으로 예상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경제 개발보다 이념에 몰두하는 것이 큰 문제라는 것이다. 또 미국과 중국이 너무 짧은 기간 내에 무역 전쟁과 기술 전쟁에 이어 ‘신냉전(新冷戰)’에 돌입했다고 걱정했다. 그는 이 문제를 다룬 ‘우발적 충돌: 미국, 중국, 그리고 잘못된 서사의 충돌’이란 책을 오는 11월 발간할 예정이다.

-중국 경제는 어떻게 전망하나.

“중국 경제를 예측할 때 나는 세 가지를 본다. 첫째는 느려진 경제 성장이다. 이것은 중국 경제 리밸런싱(rebalancing) 실패의 직접적 결과다. 투자와 수출이 급증하다가 이제 성장과 소비, 서비스 수요가 하락하고 있다. 둘째로 과거 지속 가능하지 않은 경제 성장을 하면서 과잉됐던 것들의 대가가 돌아오고 있다. 특히 부동산 부문의 부채나 주택 건설 시장의 침체 등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본다. 일본의 부동산 거품 붕괴 같은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한 중국 정책 입안자들의 의식적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셋째로 내가 더 우려하는 것은 (중국이)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데 있어 점점 이념적인 틀로 회귀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도 다른 나라들처럼 인구(감소)라든가 생산성(저하) 같은 장기적 문제를 안고 있지만, 정책 입안자들이 사려 깊고 창의적이라면 대응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로의 회귀는 매우 우려스럽다. 특히 인터넷 플랫폼 분야에서 민간의 활력에 규제 압박이 가해지고 있다는 점 등이 그렇다. 한 달 뒤 열리는 중국 당 대회에서 경제 개발보다는 이데올로기에 강하게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이 크다. 경제 개발보다 이데올로기를 중시했던 마오(쩌둥) 시대의 담론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나로서는 아주 우려스럽다.”

-미·중 간 갈등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

“미국은 무역 적자부터 미국의 기술·혁신 리더십이 위협받는 것까지 모든 일에 대해 중국을 탓한다. 중국은 미국이 자국의 화평굴기(和平崛起·평화롭게 일어서다)를 봉쇄하려 하고, 혁신과 생산성에 압력을 가한다면서 모든 일에서 미국을 탓하고 있다. 이런 잘못된 담론들이 아무런 가드레일 없이 충돌하고 있다. 양국 모두 강한 국수주의적 정치가 나타나면서 지난 6년간 우리는 무역 전쟁에서 기술 전쟁으로 옮겨갔고, 지금은 신냉전에 들어섰다고 본다. 이렇게 충돌 가능성이 고조되는 구도로 가면 사고가 날 가능성이 아주 아주 높아진다. 특히 이런 잘못된 담론들이 소셜미디어에서 전에 없이 복제되고 증폭될 때는 더 그렇다. 이런 충돌을 다룰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제로섬의 양자 무역’ 틀에서 벗어나서 상황을 사전에 관리할 수 있는 다자적 접근법으로 바꿔야 한다. (미·중) 양국 간 대화와 관여에 새로운 구조가 필요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5일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미국을 겨냥한 연대를 재확인했다. 시 주석은 푸틴 대통령에게 “우리(중국)는 러시아와 협력해 책임지는 대국의 모범이 되고, 세계를 지속 가능하고 더 나은 발전의 방향으로 이끄는 역할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모스크바와 베이징 탠덤(tandem·두 필의 말이 끄는 마차)이 글로벌·지역 안보에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로치 교수는 중·러 정상이 만나기 사흘 전 이뤄진 본지 인터뷰에서 이런 중·러의 밀착을 몹시 우려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시작된 후,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어떻게 전망하나.

“이 전쟁을 일으킨 푸틴은 글로벌 공급망의 효율성이라든가, 지속할 수 있는 세계화 같은 것에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는 독재자다. 전쟁이 푸틴의 뜻대로 풀리지 않고 있는데, 이 불안정한 독재자는 세계 대부분의 나라로부터 고립돼 있지만 하나의 중요한 예외가 있다. 그게 바로 중국이다. 나는 이 전쟁에서 그 점을 가장 우려한다.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전에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있었다. 전쟁을 준비하고 있던 푸틴은 베이징에 가서 양국이 ‘제한 없는 파트너십’을 맺기로 시진핑과 합의했다. 만약 중국이 러시아에 어떤 형태의 군사 원조라도 한다면 서구는 중국에도 책임을 물을 것이다. (미·소 간) 첫 냉전의 초기 단계에서 나타난 것과 비슷한 ‘중·러 대 서구’의 지정학적 균열로 끌려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과거 수십 년보다 최근 지정학적 리스크가 더 커졌다고 보나.

“확실히 그렇게 느낀다. 동유럽에서 주요한 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는 생각은 누구도 하지 못했다. 중국의 부상을 봉쇄하려는 서구의 연합 노력이 겹쳐지면서 지정학적 리스크가 2차 대전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걱정스러운 전개다. 우리에게 이런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다룰 만한 다자적 구조가 있나? 그렇지 않다는 점이 밤잠을 설칠 만큼 우려스럽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는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

“한국은 인구가 적은, 작은 나라라서 기술과 혁신, 외부 수요의 조합으로 경제 성장을 해왔다. 한국처럼 무역에 의존하는 나라가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된 환경에 놓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미·중 간 주도권 다툼에서 누구 편을 들 것인지 선택을 강요받게 될까. 선택을 한다면 경제 성장과 개발 전략에 어떤 대가가 따를 것인가. 지정학적으로 불안정한 환경에서 외부 수요에 의존하다 보면 완전히 새로운 조합의 리스크들이 따라온다. 재능 있는 한국 정부 당국자나 기업인들이 나보다 그런 리스크에 대해 더 많이 알 것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조언은 2차 대전 이후 한 번도 본 적 없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매주 주의하고, 또 주의하라는 것뿐이다. 정책 입안자, 규제 당국, 기업 경영인들이 모두 전략적 사고를 통해 그런 리스크에 얼마나 노출돼 있는지 면밀하게 평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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