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씁쓸한 ‘법원의 날’ 기념사
지난 13일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제8회 ‘법원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법원의 날’은 우리나라가 사법 주권을 회복한 1945년 9월 13일을 기리고자 제정한 날이다. 이날 김명수 대법원장이 낭독한 기념사 대부분은 자신의 임기에 도입된 법원 행정 제도를 소개하는 데 할애됐다. 요컨대 자신이 재임한 지난 5년간 법원이 좋아졌다는 내용이었다.
첫째로 그는 “과거의 체제와 과감히 결별하고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대안을 찾아 정립하는 데 전력을 다해왔다”면서 ‘대등 재판부 제도의 정착’을 언급했다. 대등 재판부란 비슷한 경력의 중견 판사 3명(부장판사급)이 수평적 관계로 재판부를 구성해 ‘실질적 3자 합의’가 이뤄지게 하자는 취지로 김 대법원장이 일선 법원까지 확대했다. 취지는 좋았지만 현실은 다르다는 게 법조계 일반적 평가다.
실제로는 세 판사가 자신이 주심을 맡은 사건 외에는 관심을 갖지 않아 오히려 ‘재판의 단독화’가 심해졌다는 것이다. 또 부장판사가 배석 판사들을 독촉해 사건을 빠르게 처리하는 비(非)대등 재판부와 달리, 대등 재판부는 서로 사건에 간섭하기를 꺼리기 때문에 사건 처리 속도도 늦는다고 했다. 한 현직 부장판사는 “서로 각자 일하는 판사 3명을 한 방에 넣은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 말과 확연히 결이 달랐다.
본지는 약 한 달 전 두 차례에 걸쳐 대등 재판부 제도의 운영 실태에 관한 자료를 법원행정처에 요구한 적이 있다. 일선 지적대로 문제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대등 재판부와 비대등 재판부의 사건 처리 평균 시간을 물어본 것이다. 그런데 행정처는 “그런 자료는 없다”고 했다. 각 재판부의 사건 처리 내용을 수치화한 적이 없어 비교가 불가하다는 것이다. 정작 행정처는 대등 재판부 제도에 관해 기초 자료도 안 갖고 있는데 대법원장이 대표적 치적으로 꼽은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김 대법원장이 이날 기념사에서 법원 제도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온 사례로 언급한 고법부장 승진제 폐지, 법원 사무분담위원회 도입, 지방법원장 후보 추천제 시행 등은 현장에서 많이 비판받는다. 고법부장 승진 제도 폐지로 판사들이 열심히 일할 동기가 사라지면서 재판 지연 현상이 심해지고, 법원장을 인기 투표로 선출하면서 선배 판사들이 후배들 눈치를 보느라 정당한 업무 지시도 꺼린다는 일선 판사들의 비판이 잇따랐다.
이날 대법원장의 기념사에 대한 일선 판사들의 평가는 대체로 냉정했다. “대법원장이 현장의 불만과 문제를 애써 못 본 척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다수였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임기는 내년 9월까지다. 바란다면 1년 남짓 남은 기간에 문제가 될만한 정책은 더 이상 추진하지 않았으면 한다. 자신은 떠나면 그만이지만 한번 망가진 사법 정책은 고쳐 쓰기 어렵다. 엉망이 된 사법 제도로 국민이 고생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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