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녹색 어머니’와 다이어트

이미란 롯데문화재단 홍보책임 2022. 9. 1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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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지인이 식사 자리에서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해서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가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깜짝 놀랐다. ‘녹색 어머니’ 활동을 나가야 하는데 유니폼이 안 맞아 강제 다이어트 중이라고 했다. 특히 그 학교는 눈에 띄는 형광색 조끼가 아니라, 경찰 제복 같은 스커트와 블라우스 유니폼을 입어야 해서 부담이 된다고 했다. 다이어트에는 수많은 이유와 동기가 있지만 녹색 어머니 때문에 다이어트를 해야 하다니.

녹색 어머니회는 아이들 등·하굣길 안전을 위해 통학로에서 하는 교통 안전 봉사 단체다. 학교 재량에 따라 참여를 원하는 학부모들만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곳도 있고, 사실상 반강제로 의무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각종 맘카페에는 녹색 어머니에 대한 다양한 고민과 질문이 쏟아진다. 연관 검색어로 ‘비 오는 날 녹색 어머니’가 뜨기도 한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써도 되는지, 우비를 입어야 하는지, 우비를 입는다면 조끼는 우비 속에 입어야 하나 밖에 입어야 하나 등 추운 날은 추워서 문제, 더운 날은 더워서 문제다.

아이들 등교 시간보다 20분 이상 일찍 안전 지도를 나가야 하니 그 전에 혼자 등교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를 미리 챙기는 것도 부담이 된다. 녹색 어머니 신청이 저조해 강제화가 되다 보니 ‘녹색 어머니 알바’ 대행 업체도 생겨났다. 아버지 혹은 할머니가 대신 해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남들은 전혀 관심 없는 다이어트와 스타일링 등 고민을 가득 안고 매일 아침 전국의 등굣길을 굳건히 지키는 사람들은 대부분 엄마들이다. 몇 해 전 어느 유명 여배우도 녹색 어머니 활동을 하는 모습으로 화제가 됐다. 아마 그녀도 ‘블라우스 아래 어떤 청바지를 입을까, 선글라스는 뭘 써야 하나’하고 고민했을 것이다.

아이보다 20분 먼저 출근하는 나는 아파트 입구 횡단보도에서 봉사하는 녹색 어머니들께 매일 아침 인사를 드린다. 처음엔 ‘왜 인사를?’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지만, “곧 제 아이가 건널 거라서요, 감사합니다” 하면 그제서야 방긋 웃어주신다. 힘찬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노란 깃발이 펄럭 하고 올라간다.

일사일언 필자 이미란 롯데문화재단 홍보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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