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129] 신이여, 여왕을 지켜주소서

강헌 음악평론가 2022. 9. 1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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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x Pistols ‘God Save the Queen’(1977)
Sex Pistols ‘God Save the Queen’ (1977)

본명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 공식 호칭은 ‘영국 연방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폐하’가 70년 재위 끝에 눈을 감았다. 20세기 이후의 전 세계 군주 중에서 70년 왕좌를 지킨 국왕은 타이의 푸미폰 국왕과 함께 유이하다. 검증 가능한 역사 기록이 남아 있는 왕 중에선 태양왕 루이 14세의 72년 재위를 첫손에 꼽는다. 기나긴 왕조의 역사를 지닌 중국의 역대 왕 중에서도 60년을 간신히 넘긴 왕은 고작 2명이며 우리 역사에서는 조선 최장수 왕인 영조의 52년 재임 기록이 있다.(고구려 장수왕의 79년 재위 기록이 역대 최강이다.)

여성 왕족 가운데 평민들과 동등한 훈련을 받으며 군 복무를 한 여왕은 엘리자베스 2세가 유일하다. 2차 세계 대전 중 스무 살이 된 당시 공주는 아버지 조지 6세를 설득, 여성 국방군에 입대한다. 전쟁 중의 그의 군번은 230873. 수송보급 장교로 복무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여 영국민들의 무한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70년은 그 자신에게나 그의 조국에나 모두 영욕의 70년이었다. 64년을 재위하며 대영 제국의 영광을 맘껏 누린 그의 고조모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제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왕은 어떤 위기 국면에서도 강건하게 중심을 잡고 신중한 균형을 고도로 행사하면서 왕실의 권위를 지키는 동시에 영국민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제국의 추락까지 막을 수 있는 권능이 그에겐 없었고 즉위 25주년을 한해 앞두고 제임스 켈러헌 노동당 내각은 굴욕적인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기에 이른다. 당시 실업률이 20%를 기록하면서 영국 젊은이들은 절망과 분노에 빠졌고 공화주의자들은 공공연히 입헌군주제의 폐지를 이슈화하기 시작했다.

펑크록의 신화적인 밴드 섹스 피스톨스가 자신들의 국가(國歌)를 패러디하며 신성불가침이었던 여왕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싱글을 발표한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신은 여왕을 수호하신다/그녀는 인간도 아니야/영국의 꿈 안에서는 미래도 없다.(God save the queen/She ain’t no human being/There is no future/in England’s dream.)”

근엄한 여왕은 이 예술적 부랑아들의 노래를 들었을까?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이 열세 시간이나 줄을 서면서 여왕의 마지막 길에 조문했다는 소식이 막 전 세계로 타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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