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임진왜란 때 나팔수는 없었다

엄민용 기자 2022. 9. 1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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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는 한자의 음과 한글의 표기가 다른 것이 무척 많다. ‘陰달’을 ‘음달’이 아닌 ‘응달’로 적고, ‘初生달’을 ‘초생달’이 아닌 ‘초승달’로 적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산스크리트어(고대 인도의 표준 문장어) 중에는 그런 말이 더 많다. 누구나 아는 ‘나무아미타불’도 한자 표기는 ‘南無阿彌陀佛(남무아미타불)’이고, 불교에서 “온 세계”를 뜻하는 ‘시방세계’ 역시 한자 표기는 ‘十方世界(십방세계)’다.

이런 사례를 잘 알지 못해 사람들이 잘못 쓰는 말이 적지 않다. 군대에서 행군을 하거나 신호를 할 때 쓰는 악기 ‘나팔’도 그중 하나다. ‘나팔’은 산스크리트어 ‘rappa’에서 온 말이다. 여기에는 “입을 크게 벌린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를 중국에서 나팔(喇叭)로 표기했다. ‘喇’는 “나팔 라(두음법칙을 적용하면 ‘나’)”이고, ‘叭’은 “입 벌릴 팔”로 읽히는 한자다. 따라서 ‘喇叭’을 ‘나팔’로 적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가 않다. 한자 표기는 ‘喇叭’이지만, 우리 조상들은 이를 ‘나발’로 소리내왔다. 따라서 “군중(軍中)에서 호령하거나 신호하는 데 쓰던 옛 관악기”는 ‘나발’을 표준어로 삼고 있다. 다만 우리의 옛 악기 나발과 비슷하게 생긴 서양 악기 ‘트럼펫’은 ‘나팔’로 쓸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국립국어원도 표준어규정 2장 1절 3항의 해설을 빌려 “ ‘나발’은 옛 관악기의 하나이고, ‘나팔’은 금속으로 만든 관악기의 하나다. 이 둘은 구별해서 써야 한다”고 밝혔다. 결국 옛날에 우리 조상들이 썼던 악기는 ‘나발’이고, 요즘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현대 악기는 ‘나팔’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승전한 견훤의 군사들이 승리의 나팔을 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등의 글에서 보이는 ‘나팔’은 ‘나발’의 오자다. “충렬탑에는 봉수지기와 나팔수 등을 새겨 임진왜란 당시 우리 민족의 굳센 단결을 표현했다”는 문장의 ‘나팔수’도 ‘나발수’를 잘못 쓴 말이다. ‘나팔수’는 현재 “다른 사람의 말이나 입장을 덮어놓고 따라 외워 대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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