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의 어떤 시] [87] 슬픔(Sorrow)
슬픔은 쉬임 없는 비처럼
내 가슴을 두드린다
사람들은 고통으로 뒤틀리고
비명 지르지만,
새벽이 오면 그들은 다시 잠잠해지리라.
이것은 차오름도 기울음도
멈춤도 시작도 갖고 있지 않다.
사람들은 옷을 차려 입고 시내로 간다.
나는 내 의자에 앉는다.
나의 모든 생각들은 느리고 갈색이다.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아무래도 좋다. 혹은 어떤 가운
아니면 어떤 구두를 걸치든.
-빈센트 밀레이(Vincent Millay 1892~1950)
(최승자 옮김)
이렇게 아름답게, 아름다운 이미지들로 슬픔을 노래하다니. 미국의 여성 시인 빈센트 밀레이의 시적 능력에 어떠한 찬사도 부족하리라. 절묘한 각운과 밀도 높은 언어들, 꽉 짜인 구성…무엇이 그녀를 슬프게 하는지, 직접적인 설명은 피하면서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비유가 탁월하다.
쉬지 않고 땅을 두드리는 비처럼 슬픔이 내 가슴을 두드린다. 밤에 고통으로 뒤틀리던 사람들도 새벽이 오면 잠잠해지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옷을 차려입고 나가지만, 그녀의 슬픔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 낮이든 밤이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슬픔이 나를 두드리는데, 어떤 옷을 입든 어떤 신발을 걸치든 무슨 상관인가.
슬픔이라는 구제 불능의 감정을 이토록 설득력 있게 묘사한 시를 나는 보지 못했다. 가까운 누가 죽었나. 사랑하는 이가 떠났나? 슬픔의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가 슬프다는 것.
*
Sorrow (시 원문)
Sorrow like a ceaseless rain
Beats upon my heart.
People twist and scream in pain, —
Dawn will find them still again;
This has neither wax nor wane,
Neither stop nor start.
People dress and go to town;
I sit in my chair.
All my thoughts are slow and brown:
Standing up or sitting down
Little matters, or what gown
Or what shoes I wear.
-Edna St. Vincent Millay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천영우 “김대중·클린턴 정부, 北의 제네바 합의 위반 알고도 덮어”
- [Michelin Stars in Seoul] ⑫ 7th door, where every open door tells a story of flavor
- 추석 즈음 피는 물매화가 주연인 소설 [김민철의 꽃이야기]
- “대게 2마리 37만원” 부른 소래포구 점검 나갔더니...그 결과는
- 인천 센트럴파크에서 땅꺼짐 발생...인명 피해는 없어
- 김우빈 “암 진단 당시 짧으면 6개월 산다고...너무 무서웠다”
- 서울 강남에서 코인 거래 위해 위폐 2억여 원 사용한 피의자들, 구속영장 신청
- ‘잭슨 파이브’ 멤버...‘마이클 잭슨 형’ 티토, 70세로 별세
- “새롭게 시작합니다”...‘갑질 의혹’ 강형욱, 무료 설루션 예고
- “토란 캐고 이발하고”…조국, 10·16 재선거 앞둔 호남 일상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