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364] 소태산의 민어 파시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박중빈의 행적을 무려 50년 동안이나 치밀하게 추적해온 박용덕(74) 교무. 천도교에 표영삼 선생이 있었다면 원불교에는 박용덕이 있다. 박 교무가 그 50년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최근 저서 ‘소태산 박중빈 불법연구회’(6권)를 읽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은 소태산이 빚을 갚기 위해 전남 신안군 임자도에 가서 민어 파시 장사를 한 부분이었다.
임자(荏子)는 ‘들깨’ 라는 뜻이다. 지금은 대파를 많이 생산하지만 100여 년 전에는 들깨를 많이 생산했던 모양이다. 섬 주변으로는 백사장이 많아서 고급 어종이 풍부하다. 민어는 7·8월, 병어는 5·6월, 갑오징어 4월, 꽃게는 봄가을, 새우젓은 6월이다. 6월에 나는 새우젓을 ‘육젓’이라고 부른다.
7~8월에 잡히는 민어. 큰 놈은 10㎏에 육박한다. 여름에 ‘상놈은 보신탕 먹지만 양반은 민어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라도에서는 고급 생선으로 여겼다. 여름이 되면 민어잡이 배가 수백 척 모여들었다. 임자도 대광리 해수욕장 바로 앞에는 썰물 때 백사장을 통해서 임자도와 연결되는 ‘타리’라고 하는 조그만 새끼 섬이 있다. 이 타리에서 민어 파시가 열렸다.
파시(波市)는 바다의 시장이다. 민어잡이 배 수백 척이 잡은 고기를 가져와 팔고, 다시 바다에 나가는 데 쓰는 생필품인 쌀, 장작, 채소, 양념 등을 사는 시장이 열린다. 소태산은 타리섬에서 민어 잡는 어부들에게 생필품을 팔았다. 많은 어부가 소태산 물건을 사 주었다.
소태산 아버지가 영광에서 마름(소작농 관리인)이었을 때 소작들이 내는 세금을 적게 낼 수 있도록 봐주었다. 그러나 지주가 바뀌면서 적게 낸 소작료를 소태산 아버지가 대신 떠안게 되었다. 아버지가 떠안은 빚을 갚기 위해서 1912년 22세의 소태산이 타리 파시에 장사하러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민어 잡는 어부들 일부는 소태산 아버지에게 신세를 졌던 도망 소작농이었다. 지주의 소작료 추적을 피해 바다의 어부가 된 것이다.
이 소작농 출신 어부들이 아버지 신세 갚는다고 소태산 물건을 집중 구매해 주었다. 소태산은 떼돈을 벌었다. 또 한 가지는 소태산이 물건을 팔면서 어부들 고기 많이 잡으라고 ‘十方神 接氣接氣’라는 주문을 외웠다. 이 주문 효과인지는 몰라도 소태산의 물건을 사 간 어부들은 재수가 있었던 것이다. 빚을 갚고 나서 영광 삼밭재 귀영바위 굴에 들어가 본격 수도 생활을 하였고, 1916년에 깨달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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