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日·열기구 月 품은 주경기장..아이유, 도착지인 줄 알았던 출발지(종합)

이재훈 2022. 9. 18.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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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반딧불 드론 등 화려한 연출 돋보여
17~18일 공연에 약 9만명 운집
2012년 첫 콘서트 이후 공연 시작한 지 10주년
세트리스트 고민한 흔적 역력
서른살 맞은 올해 '팔레트'·'좋은날' 졸업식
곳곳에 막대한 제작비 흔적…티켓값 싸다고 느껴져
이날 데뷔 14주년…아이유애나 이름으로 2억원 기부

[서울=뉴시스] 아이유 올림픽주경기장 콘서트. 2022.09.18. (사진 = 이담 엔터테인먼트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우리는 오렌지 태양 아래 / 그림자 없이 함께 춤을 춰 ♪ ♬"

18일 오후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 오후 7시가 되자 가수 겸 배우 아이유(29·이지은) 목소리만으로 '에잇'이 울려퍼졌다.

때마침 하늘도 군데군데 오렌지빛으로 물들었다. 그 오렌지빛 태양이 '팔레트'가 돼 지붕이 뚫린 올림픽주경기장 안으로 붓질한 것처럼, 아이유 팬덤 '유애나'가 들고 있는 응원봉 '아이크' 역시 주황빛으로 번졌다. 그렇게 노을이 콘서트장으로, 관객들 마음으로 아련하게 들어왔다.

노랫말과 자연경관 그리고 인공적인 빛이 맞물려 노래의 정서를 가득 살려낸 명장면이었다. 이번 콘서트 타이틀 '더 골든 아워(The Golden Hour) : 오렌지 태양 아래'가 오롯하게 재현됐다. 하늘에선 불꽃이 수놓았다.

한국 여성 가수 처음으로 '국내 대중음악 공연장 성지'로 통하는 올림픽주경기장 무대에 선 아이유는 그렇게 시작부터 4만여 팬들에게 잊지 못할 선물을 했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공연한 이들은 H.O.T, 신화, god, 조용필, 동방신기, 이승환, 이승철, JYJ, 이문세, 서태지, 엑소, 방탄소년단, 싸이, NCT 드림 정도다. 해외 팝스타 중에서는 마이클 잭슨, 폴 매카트니, 콜드플레이 등이 공연했다. 해외 여성 가수 중에는 2012년 레이디 가가가 공연했다.

[서울=뉴시스] 아이유 올림픽주경기장 콘서트. 2022.09.18. (사진 = 이담 엔터테인먼트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런 역사적인 순간에도 거대한 건축물과 환경을 압도하는 권위적인 연출이 아니라, 자연적인 시간대의 특성을 활용해 자신의 공연 안으로 수렴하는 근사하고 겸손한 연출을 선보였다. 최근 몇년 간 국내에서 펼쳐진 여러 콘서트 중 손꼽히는 오프닝이었다.

벌판이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가을 초에 아이유의 팬덤 '유애나'의 팬심도 그렇게 익어갔다.

아이유는 "'에잇'을 만들 때부터 석양을 배경으로 '에잇'을 꼭 부르고 싶었다"고 했다. 아이유는 사실 2020년에도 올림픽주경기장 공연을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에잇'은 2020년 5월 아이유와 글로벌 슈퍼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슈가가 공동 프로듀싱하도 피처링도 한 곡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미뤄졌고, 결국 아이유는 2019년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KSPO DOME·옛 올림픽체조경기장) 이후 3년 만에 이곳에서 팬들을 만나게 됐다.

이날 오후 6시30분부터 하늘이 오렌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공연 시작 10분을 남기고는 이번 콘서트의 주요 모티브 중 하나인 모래시계가 대형 스크린에 등장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오후 6시55분에 아이크에 불이 켜졌고 객석에선 환호가 터졌다.

[서울=뉴시스] 아이유 올림픽주경기장 콘서트. 2022.09.18. (사진 = 이담 엔터테인먼트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에잇' 이후에 아이유는 '셀러브리티'를 부르며 무대 전면에 나섰다. '마칭 밴드' 단장을 연상케 하는, 근사한 붉은 옷이 유독 빛났다.

마침 이날은 아이유 데뷔 14주년 당일이기도 했다. 아이유는 2008년 9월18일은 엠넷 음악방송 '엠카운트다운'에서 '미아'라는 곡으로 데뷔했다. 이를 기념해 아이유는 자신과 팬덤 유애나의 이름으로 최근 2억원을 기부한 사실을 이날 밝혔다. 소속사 이담(EDAM) 엔터테인먼트는 소셜 미디어 계정을 통해 아산사회복지재단과 서울특별시아동복지협회 각각 1억원씩 기부한 증서를 공개했다. 아이유는 운이 좋은 날이라고 했다.

이날 콘서트는 매 무대 연출이 돋보였다. '팔레트'를 부를 땐 붓이 팔레트에 물감을 푸는 것처럼, 객석이 보라빛으로 하나둘씩 칠해졌다. 그런데 아이유는 이날이 콘서트 세트리스트에서 '팔레트'가 졸업하는 날이라고 했다. 아이유는 "스물다섯 살에 만든 곡인데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때라면서 지금이 그때만큼 좋아 '팔레트'의 졸업식을 하겠다"고 했다.

전날 같은 장소에서 열렸던 '더 골든 아워(The Golden Hour) : 오렌지 태양 아래' 첫날 콘서트에선 관련해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었다. "스물다섯 살에 '태어나서 이렇게 살면 되는구나'를 느꼈다"고 했다. "자기 혐오에서 벗어났고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났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 공연을 준비하면서 그 시절 지금 그 때처럼 좋은 때였다. 서른살이 스물다섯처럼 좋았다"는 것이다.

[서울=뉴시스] 아이유 올림픽주경기장 콘서트. 2022.09.18. (사진 = 이담 엔터테인먼트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파도와 달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영상 이후엔 눈 앞에 마법 같은 상황이 그려졌다. "달이 익어가니"라는 노랫말에 맞춰 대형 분홍 열기구가 올림픽주경기장에 두둥실 떴다. 아이유가 이때 부른 곡 '스트로베리 문' 제목처럼 분홍 달이었다. 아이유는 열기구를 직접 타고 2,3층 관객과 눈을 마주치며 올림픽주경기장을 한바퀴 돌았다.

이처럼 이날 콘서트엔 세트리스트 구성과 그에 맞춘 곡 콘셉트에 대한 고심이 역력했다. 하늘을 난 뒤 무대에 돌아와 '내 손을 잡아'를 부르는 맥락이 그랬다. 지난 2011년 MBC TV 드라마 '최고의 사랑' OST로 발매된 이 곡은 아이유의 첫 자작곡이다. 발표 10년 만인 지난해 차트에서 무섭게 역주행했고 재조명됐다.

올해는 또 아이유가 첫 콘서트를 연 지 1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2012년 6월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첫 콘서트를 연 이후 2013년 경희대 평화의 전당, 2014년 서강대 메리홀, 2015년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잠실 학생체육관, 2016년 올림픽공원 SK 핸드볼 경기장, 2017년 잠실실내체육관, 2018년 국내 콘서트업계 꿈의 무대로 통하는 케이스포 돔 입성, 2019년 케이스포 돔에서 여성 가수 처음으로 공연장 객석을 꽉 채우는 360도 공연을 했다. 그리고 이번에 올림픽주경기장에에 입성한 것이다.

사실 아이유는 이번 콘서트 직전에 제대로 런스루를 하지 못해 불안했었다. 콘서트 전날인 16일 비가 엄청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이유는 달을 타 봤다. "무서워서 이거 하지 말까 생각했는데,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웃었다. 전날은 살짝 흐렸고 오늘은 화창했다. 9월 중순 치고 더운 날들이었지만 이렇게 날씨도 도와준다.

아이유의 대표곡 '좋은 날' 연출도 돋보였다. 막바지 3단 고음에 맞춰 불꽃이 맞춰서 터지는 순간의 카타르시스가 대단했다. 그런데 아이유는 눈물이 나올 뻔했다고 털어놨다. 이 곡 역시 이번 콘서트가 세트리스트 졸업식이기 때문이다. 아이유는 "많은 추억이 있는 곳이지만 (막바지에 퇴장을 위한) '좋은날' 배치가 빤해지다 보니 비슷한 진행이 되는 게 아쉬웠다"고 했다. "'좋은날'이 빠지면 저 역시 부담이 되고 아쉬운데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에요. 더 좋은 공연을 만들기 위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 아이유 올림픽주경기장 콘서트. 2022.09.18. (사진 = 이담 엔터테인먼트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제 '좋은날'을 '라일락'이 대신하게 될 지 모른다. 아이유는 "콘서트에서 이 순간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며 해당 곡을 불렀다.

이날 게스트로 아이유와 '가나다라(GANADARA)'를 협업한 힙합가수 박재범이 나왔다. 그는 객석을 향해 "아이유 씨는 저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존경한다. 14년 동안 톱 위치를 유지하면서 연기, 앨범 모든 걸 완성도 있게 해내 멋있다.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에 따라 얼마나 큰 힘듦과 희생을 했는지 안다. 아이유 씨 팬으로서 행복하겠다"고 말했다. 전날엔 그룹 '있지'(ITZY)가 게스트로 나와 "아이유 선배님을 존경하고 콘서트에 초대 받아 영광"이라고 했다.

3부의 시작은 조용한 곡들이었다. 아이유가 스스로 생각할 때 가수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잘 담았다고 여기는 자작곡 '무릎', '무릎'을 썼을 때 마음을 많이 찾아보려고 했다는 '겨울잠'을 연이어 불렀다. 아이유는 두 곡이 세트라고 생각한다며 두 곡이 키(key)가 같고 감정선도 비슷하다고 했다.

아이유가 10대 때 부른 '나만 몰랐던 이야기'는 밴드 마스터 홍소진의 피아노 솔로가 마지막을 장식했다. 드라마틱한 감성적인 연주가 돋보였다. 아이유는 "30초 동안 저도 관객이 돼서 즐기며 한숨 돌릴 수 있는 콘서트에서 유일한 순간"이라며 홍 밴드 마스터를 극찬했다.

이어서 최근 아이유를 대표하게 된 '밤편지'를 불렀다.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 당신의 창 가까이 띄울게요 / 음 좋은 꿈 이길 바라요"이라는 이 곡의 마지막 노랫말 이후 이날 콘서트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던 순간이 펼쳐졌다. 국내 대형 이벤트에서 펼쳐지는 규모에 못지 않은 드론쇼가 반딧불처럼 하늘을 수놓았다. 높은음자리가 박힌 하트, 아이유 상반신 그리고 시계 등의 형상이 별자리처럼 그려졌다. 시계 모양 뒤 '시간의 바깥'을 불렀고 이후 수많은 댄서들이 나와 뮤지컬 무대 같은 화려한 장면을 연출했다. 곡의 드라마틱한 선율이 맞물라며 아이유와 관객 모두의 감정선이 뒤흔들렸다.

[서울=뉴시스] 아이유 올림픽주경기장 콘서트. 2022.09.18. (사진 = 이담 엔터테인먼트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아이유는 "아빠가 드론쇼에 놀라워하셨다. 그리고 무뚝뚝하신 분인데 우셨다고 했다. 이보다 더 좋은 공연할 수 있겠냐고. 아빠도 울린 공연이면 됐고 열심히 준비한 보람이 있다"고 먹먹해했다. 이어 대중이 가장 아이유답다고 여기는 곡 중 하나인 '너와 나' 무대로 본 공연이 마무리됐다.

조명이 꺼지고 대형 스크린엔 '러브 포엠'의 가사가 흘러나왔다. 관객의 떼창이 이어진 뒤 아이유가 이 곡을 다시 불렀다. '걸음마다 함께 할게. 우리는 완벽한 14년 지기. 친구니까'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관객들이 일제히 펼쳤다. 아이유는 "중요한 타이밍에 그럴 수 있어요. (울릴려고) 작정했네"라며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다음은 조금은 길게 이어진, 아이유의 유애나에 대한 감사 그리고 음악에 대한 겸손함의 표현이다.

"못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공연 준비를 위해) 2개월을 보낸 게 신기하기도 하고. 제가 한 게 맞나요? 사실 오늘 공연은 어려웠어요. 원래 첫공이 더 어렵고 두번째 공연은 훨씬 편해요. 근데 귀에 약간의 문제가 있어서 조마조마 했거든요. 심각한 건 아닌데. 귀를 제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목 상태는 (공연을) 잘 따랐어요. 그런데 귀가 안 좋았어요. 오늘 리허설하면서 지옥처럼 보냈습니다. 첫 곡을 시작하면서도 어떻게 될 지 몰라했죠. 항상 하는 말이지만 오늘 특히 여러분이 다 하셨어요. 다 해주셨습니다. 마스크도 쓰고 계시고 음악 소리도 큰데 저를 응원해주시고 14주년 축하해 주셔서 감사해요. 여러 번 제 공연에 오신 분들은 제 표정을 보면 아시잖아요. 사력을 다해 웃는지, 진짜 기분이 좋은 건지. 오늘 지은 웃음, 한 말의 모음 한자한자 자음 한자한자 다 진심이었어요. 사랑한다는 말도 작고, 감사한다는 말도 작고, 미안하다 작고 말로 표현할 수 없네요. 저 끝에 있는 분들도 절 사랑하는 게 느껴질 정도였어요. 이게 가능하구나 신기해하면서 3시간을 보냈어요. 오늘 공연을 계기로 겸손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할 거예요. (올림픽주경기장 콘서트가) 10대부터 도전해오고 달려온 길의 도착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애초 이 큰 무대를 꿈 꾼 적이 없죠. 연습생 때부터 조상신이 도와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쭐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응원해주시는 마음이 어떤 건지 깨달아가면서 14년 더 가겠습니다."

아이유는 전날도 "마지막 도착지가 아닌 새로운 시작이자 희망 그리고 도전이 될 거 같다"고 말했다.

아이유는 많은 이들이 위로를 받은 곡으로 안다며 '아이와 나의 바다'를 불렀고 "다음 만남은 이번 3년처럼 길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아이유의 이번 콘서트는 10만원대의 티켓 가격이 너무 싸게 느껴질 정도로 세트리스트, 공연 연출, 출연진과 스태프의 능력이 넘쳤다. 특히 아이유가 대형 프로덕션을 이끄는 기획자로서 충분한 자질을 발휘한 공연이기도 하다. 인기 가수가 아닌, 또 다른 대형 뮤지션이 태어난 신호탄이다. 정확한 관객수는 추가로 집계해야 알겠지만 전날과 이날 합쳐 약 9만명이 현장을 찾았다. 지난달 초 예매 오픈 당시 대기 인원수가 수십만명에 달했던 공연으로, 17일 오전 현장 예매 분이 풀리는 걸 잡기 위해 16일 밤부터 수백명이 대기하기도 했다. 객석엔 화려한 스타들도 즐비했다. 글로벌 슈퍼 그룹 '방탄소년단'(BTS) 정국을 비롯해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투바투) 수빈·범규, 한류스타 김수현, 카라 출신 강지영 등이 첫날 공연을 봤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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