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지원 없다면 세계 4500만명 기근"
코로나로 많은 나라서 경제위기
우크라 전쟁 발발 후 더욱 악화
갈등과 배고픔이 반복되는 악순환
작물 생산 40% 감소한 이라크 등
국내 유민에 주민 갈등·분쟁 촉발
취약계층이 기후위기에 더 취약
각국 정부 공여금 확대 등 지원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식량 수출길이 막히면서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 비상이 걸렸다. 우크라이나에서 많은 곡물을 수입하는 이 지역 국가들은 전쟁 이전부터 각종 분쟁과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식량위기가 심각했다. 여기에 전쟁에 따른 곡물 부족까지 겹치면서 식량 가격이 폭등하고 정정 불안 우려도 커지고 있다.
코린 플라이셔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중동·북아프리카·동유럽 지역 본부장은 지난 16일 연세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중동·아프리카 지역은 배고픔이 갈등으로 이어지고 갈등이 다시 배고픔을 낳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함께 인터뷰에 응한 알리 라자 WFP 이라크 사무소장은 “분쟁과 기후변화는 특히 취약·저소득 계층과 국가에 큰 피해를 입히고 있다”면서 국제사회의 지원을 촉구했다.
플라이셔 본부장과 라자 사무소장은 중동·아프리카·동유럽 지역의 식량난 실태를 설명하고 지원을 호소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다음은 플라이셔 본부장, 라자 사무소장과의 일문일답.
- 식량위기는 얼마나 심각한가.
“불과 3년 전에 비해 많은 것이 변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으면서 많은 나라의 경제가 무너졌고, 기후위기는 수많은 사람이 삶의 터전을 떠나게 만들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낙타의 혹이 부러졌다고 표현할 정도로 모든 것이 무너져내렸다. 코로나19 이전 긴급한 식량위기에 처한 인구는 1억8000만명 정도였는데 이후 2억6000만명으로 늘었다. 그 많은 사람에게 당장 식량을 지원하지 않으면 생명 유지조차 어렵다.”(플라이셔)
- 중동·북아프리카·동유럽 상황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로 특히 더 안 좋아졌다. 우크라이나에서는 600만명이 국경을 넘어 해외 난민이 됐고, 남아 있는 인구의 3분의 1은 먹을 것이 부족하다. 중동·북아프리카 국가들은 가장 가까운 주요 곡물 수출국인 우크라이나에서 그동안 많은 식량을 사들였다. 이집트는 전체 곡물 수입량의 3분의 1을, 레바논은 약 90%를 우크라이나에서 들여오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러시아와의 전쟁 이후 곡물 수입 통로인 항구가 닫히고, 연료 가격이 상승하면서 식량 구매 비용이 급증했다. 이집트에서는 식량 구입 비용이 전쟁 이전 대비 25%, 알제리는 20% 올랐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부터 각종 분쟁과 기후위기 장기화로 이들 지역에서 곡물과 연료 가격은 상승세였다.”(플라이셔)
- 분쟁, 기후위기 영향은.
“중동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청년층 인구가 많다. 그런데 각기 다른 정치 세력과 종파 간 분쟁이 계속되면서 불경기가 이어지면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으로 일자리 500만개가 사라졌다. 일자리가 사라지면 음식을 스스로 구할 길도 사라지게 된다. 기후위기를 예로 들면 이상고온으로 물은 갈수록 부족해지고, 더 적어진 물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우고 갈등하는 상황이 생긴다. 중동 지역은 아주 슬픈 사례다. 이곳에선 배고픔이 갈등으로 이어지고, 갈등은 다시 배고픔을 낳는다.”(플라이셔)
- 기후위기로 인한 갈등 사례는.
“이라크는 최근 2년간의 기후위기로 농작물 생산량이 40% 줄었다. 물이 적어지면서 토양 염류 현상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마을과 마을 사이에 누가 먼저 물을 쓸지, 누가 더 많이 쓸지를 두고 갈등이 생긴다. 내가 직접 본 사례는 20명의 소작농이 있는 마을과 기업형 농가 마을 사이의 다툼이었다. 소작농 거주민 마을이 물줄기에 더 가깝다는 이유로 물을 더 많이 썼고, 결국 기업형 농가는 농사를 망치게 됐다. 이 마을의 토양은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없을 정도로 염도가 올라갔다.”(라자)
- 중동·아프리카 상황의 특이점은.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가장 취약한 계층이 기후위기 피해도 가장 크게 받는다는 사실이다. 이라크는 해외로 떠나는 난민보다 국내 유민 비율이 훨씬 높다. 토양 염류 등으로 황폐해진 땅을 떠나 다른 살 곳을 찾아야 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라크는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세계에서 5번째로 큰 나라다. (극단주의 단체) 이슬람국가(IS)가 물러난 이후 해외로 뿔뿔이 흩어졌던 난민들이 다시 이라크로 돌아왔지만, 이들은 기후위기라는 또 다른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이라크를 비롯해 중동·아프리카 지역은 분쟁이 가장 뚜렷하고, 경작지가 부족해 작물 생산량도 저조하다. 이 지역에 세계 전체 인구의 6%가 사는데 물은 1%밖에 없다.”(라자)
- 국제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현재 세계 각국은 그 어느 때보다 서로 연결돼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사태만 보더라도 고유가, 고물가로 그 영향이 나타나지 않나. 이라크를 예로 들면 현지에 한국 기업들이 많이 진출했다. 한국 기업과 정부가 다른 나라에 선한 영향을 미치고, 그 나라에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면 결국 한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WFP는 최근 한국 정부로부터 100만달러를 공여받았다. 지금까지 설명한 기후위기에 대한 복원력 증진에 이 돈이 사용될 예정이다. 한국 정부는 WFP를 통해 우크라이나 식량위기 인구에 현금 지원을 하고 있고, 내전 중인 예멘에 쌀도 제공하고 있다. 한국 정부와 국민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라자)
- 당장 지원이 필요한 분야는.
“당장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세계 4500만명이 곧 기근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이들이 살고 있는 국가의 정부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 우선 식량이 WFP를 통해 가장 시급한 사람들에게 공급될 수 있도록 각국 정부가 공여금을 더 많이 내줬으면 한다. 기후위기의 경우 분쟁보다 10배 많은 식량위기 인구를 만든다. 장기적으로는 더 많은 나라에서 수경재배 등 혁신적이고 기후친화적인 농경 기술을 활용해 충분한 작물 생산량을 확보할 수 있도록 관련 기술을 더 고도화해야 한다. 또 이 기술에 대한 저개발·저소득 국가들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협력해야 한다.”(플라이셔)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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