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트] 대우조선 파업노동자, 기약없는 '고용승계'..부끄러운 '조선 왕국'의 민

이문현 2022. 9. 18.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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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 신순화씨가 나갈 채비를 합니다.

오늘도 회사 작업복 대신 검정 조끼를 꺼내듭니다.

조끼를 입자 나오는 한숨.

"휴"

[신순화/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작업복을 보면 울컥하죠. 매일 입고 다니던 작업복이 몇 달째 걸려있다는 건‥ 제가 왜 이런 삶을 살고 있나 그렇게 느낄 때가 더 많습니다."

50분 정도 부지런히 걷다보면 분주한 출근길과 만납니다.

다리 하나만 건너면 신 씨가 20년 넘게 일해온 대우조선해양이 나옵니다.

하지만 넉달째 건너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신 다리 아래 세워진 농성 천막으로 옵니다.

그리고 피켓을 듭니다.

[신순화/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이 7월 22일에 끝났는데 저희는 당장 일을 하러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최우선적으로 고용을 한다’ 그런 확실한 문구가 있었고."

"우리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가 없는 거예요?"

[윤석열 대통령 (지난 7월 19일)] "불법은 방치되거나 용인돼서는 안 됩니다. 많이 기다릴 만큼 기다리지 않았나."

4.5% 임금 인상과 하청노동자 고용 승계에 합의해 이뤄진 타결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달이 지난 지금, 신순화 씨처럼 아직 복귀를 못한 노동자들이 42명입니다.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동자.

파업에 참가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소속돼있던 하청업체는 폐업을 했습니다.

폐업한 업체 직원들을 최우선으로 고용하도록 노력한다는 것이 사측의 약속이었고요.

하지만 보신 것처럼 그 약속,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7월 노사 협상에 참가했던 김형수 조선하청지회장.

국회 앞에서 7일째 단식 농성 중인 김 지회장을 만났습니다.

[김형수/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지회장 (지난달 24일/단식 7일째)] "(협상 때 사측이) 고용 문제는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된다, 쉽게 풀릴 거다' 그런데 회사 입장이나 여러 가지 이런 것들 좀 생각해서‥ ‘최대한 노력한다 정도로 문구를 정리합시다’라고 이야기를 했고‥"

하지만 42명에 대해선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결국 단식 농성까지 하게 된 겁니다.

[김형수/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지회장 (지난달 24일/단식 7일째)] "조합원이라서 (고용이) 안 된다는 거죠. 실질적으로 지금 남아 있는 두 업체 같은 경우에 조합에서 탈퇴하신 분들은 고용됐어요. 비조합원인 사람들도 고용 다 했고. 조합원만 남은 거죠."

20일 넘게 이어진 단식.

추석 연휴 직전에야 사측이 다시 한번 고용 승계를 약속했습니다.

[김형수/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지회장 (지난 8일/단식 21일째)] "(파업) 진통 끝에 합의된 내용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단식농성을 하는 것이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의 현실이고."

저희가 만난 하청 노동자들은 대우조선이 자신들을 '동료가 아니라 부품으로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현실이 이들에게 이런 느낌을 갖게 했을까요?

다시 신순화 씨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신 씨는 조선소 도색 경력 23년 차의 베테랑입니다.

[신순화/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배에 페인트칠하는 거거든요. 칠을 뿌려 놓으면 그 칠 안 들어간 쪽에 사이사이에 칠하는 거예요" [신순화/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만약에 저같은 사람이 가서 '내가 오늘 하루를 롤러 칠해볼게요' 하면 될까요?) "안 되죠. 안 돼요. 칠을 하면 말끔하게 나오고 매끈하게 나와야 되는데, 그것도 안 될뿐더러 처음 하시는 분들은 (페인트가) 뭉쳐서 제품 자체가 안 나옵니다"

기술 뿐 아니라 숙련도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건데요.

그럼 이 정도 숙련공은 얼마나 일하고 얼마나 벌까요?

신 씨의 지난 4월 업무 기록입니다.

주말 없이 22일을 연속으로 출근해 195 시간을 일했습니다.

주 52시간은 먼 나라 얘깁니다.

[신순화/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주 52시간 하지만 여기는 안 지켜줘요. 일이 많으면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해서 받은 월급은 267만 원.

4대 보험과 세금을 제하고 234만 원이 들어옵니다.

9160원, 정확히 법정 최저 시급에 주말과 공휴일 특근 수당을 합친 금액입니다.

작업용 발판을 만드는 9년차 하청 노동자 나 모 씨도 최저 시급을 받았고, 조선소에서 비교적 몸값이 높다는 용접일을 하는 강길만 씨의 시급도 1만 원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법정 노동 시간을 무시하는 악순환이 이어집니다.

[김형수/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지회장] "(조선소) 하청 업체는 다들 52시간제 위반하고 있죠. 지키는 데가 없습니다. 하청 노동자 입장에서는 사실 일 좀 더 하면 자기한테 도움이 되잖아요. 그러니까 말 안 하는 거예요. 기본 단위시간 임금 인상을 해야 되는데 그걸 못 하니까 부족한 임금을 법 위반을 통해서 메우고 있는 거죠."

중대재해도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대우조선해양 조립 5부 공장.

이동식 철제 작업대 사이에 핏자국이 선명합니다.

지난 1일 아침 7시 15분 쯤, 하청업체 소속인 손 모 씨가 수십톤 무게의 철제 작업대 사이에 다리가 끼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나흘 뒤, 결국 손 씨는 숨졌습니다.

대우조선 직원들은 철제 작업대의 위험성을 여러차례 회사에 알렸지만, 바뀐 게 없었다고 말합니다.

[대우조선해양 노동조합 관계자] "직원들이 회사에 건의를 한 거죠. 이 부분(철제 작업대)은 위험하다. 그래서 '안전 펜스를 친다'든가 '설비가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으니 바꿔야 된다' 수차례에 걸쳐 (회사에) 한 것으로 파악이 됐거든요"

대우조선 현장에선 불과 5개월 전에도 사망 사고가 있었습니다.

한 노동자가 60미터 위에서 떨어진 와이어와 철제 소켓에 맞아 숨졌는데요,

역시 하청업체 소속이었습니다.

[이정식/고용노동부 장관 (지난 16일, 노동시장 이중구조 간담회)] (장관님, MBC 이문현 기자인데요. 언론에서도 혹시 질문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올해 조선소에서 9명 사망하셨고 이 중에 7명이 하청 노동자인데, 좀 더 명확한 대책이 필요해 보이는데요.) "지난번에 (조선소에 안전을) 당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나고 이랬는데, 이 부분이 상당 부분은 후진적인 재해. 추락·끼임 이런 건데, 그래서 이게 고민이 있습니다. 법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야 될 시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낮은 처우와 위험한 환경에 지쳐 조선업을 떠난 노동자는 최근 8년 간 11만 명이나 됩니다.

앞서 시급 1만원을 받는다고 전해드렸던 10년 차 용접공 강길만 씨도 결국 이직을 결심했다는데요.

떠나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도 들어봤습니다.

대우조선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강길만 씨는 두 달 전, 처우가 조금 낫다는 현대중공업 하청업체로 이직했습니다.

'총 인원이 30명 정도 되는데, 절반 정도는 대우에서 오신 분들'

하지만 옮겨봐도 미래는 여전히 막막했습니다.

[강길만/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전 대우조선해양)] "조선소에서 일을 하면서 원래 희망이라는 게 보여야 되는데, 날이 가면 갈수록 희망이라는 게 안 보이는 것 같아요."

결국 조선업을 떠나기로 결심한 상태입니다.

[강길만/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전 대우조선해양)] "저도 이제 자격증(용접기능사)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자격증을 따고 일단은 다른 쪽을 알아봐야겠죠. 그래서 기회가 되면 그냥 다른 분야로 이직할 수 있으면 하려고요."

대규모 건설이 한창인 경기도 평택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건설 노동자들이 몰려들면서 공장 주변엔 숙소용 건물들도 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만난 일용직 노동자 박 모 씨.

작은 방에는 이불 한 장과 아직 풀지 못한 짐이 쌓여있습니다.

가족들은 울산에 있습니다.

[박OO/전 조선소 하청노동자 (용접 20년 차)] "집에 가면 해서 갖고 오고 김치 같은 거" (다 사모님께서 보내주신 반찬들인 거예요?) "상하니까 그냥 넣어놓은 거예요."

박 씨도 원래 조선소에서 20년 넘게 일해온 용접공이었다고 합니다.

[박OO/전 조선소 하청노동자 (용접 20년차)] "한 5년 전에 내가 그만뒀어요. (하청)업체 다 막 넘어가고 그러니까. 한두 번도 아니고 가는 데마다 그렇게 계속 연달아‥"

그 후 건설 현장을 돌다가 6개월 전 이곳에 와 자재 나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홀로 지내 외롭긴 하지만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습니다.

[박OO/전 조선소 하청노동자 (용접 20년차)] "그러니까 그 현장(조선소)에 계속 그렇게 해왔으면 정이 가야 되는데, 정이 안 가요 지금. 너무 힘드니까."

구조조정에서 겨우 살아 남아도 저임금에 시달려온 하청업체 노동자들.

조선업 붕괴는 막아야 한다며 막대한 세금을 쏟아부은 정부.

대우조선에는 1999년부터 지금까지 약 12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습니다.

그럼 그동안 대우조선은 뭘 했을까요?

지난 2013년과 2014년 대우조선이 공시한 영업이익은 각각 4,242억원과 4,543억원.

주요 조선업체들이 적자로 고전하는 사이 돋보이는 성과를 냈습니다.

하지만 거짓이었습니다.

감사원 감사 결과, 실제로는 2013년에 165억원, 2014년에 6,392억원의 적자를 봤습니다.

2년 동안 무려 1조 5천억원대의 분식회계를 한 겁니다.

이렇게 낸 거짓 수익으로 성과급 2천억원을 뿌렸습니다.

[유희상/당시 감사원 산업금융감사국장 (2016년 6월)] "성과성·상여금 성격의 항목이 포함된 격려금 지급에 대해, 사전 합의를 요청하자 경영관리단이 그대로 합의하도록 두는 등‥"

2016년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대우조선해양 차장급 직원의 집에서 명품 시계와 귀금속이 쏟아져 나옵니다.

집에서 압수한 금품만 15억원 어치였습니다.

[최치훈/당시 경남 거제경찰서 수사과장 (2016년 6월)] "(횡령 피의자는) 부산에 사우나 건물이 하나 있고. 재규어, 레인지로버, 인피니티. 차량은 한 6대 정도 됩니다."

무려 8년 간 회삿돈 180억원을 횡령했는데 대우조선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우조선, 이번 파업 피해 규모는 발빠르게 계산해 발표합니다.

무려 8천억‥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압박했습니다.

결국 하청 노동자들은 4.5% 임금 인상에 합의하고 파업을 끝낸건데요.

여기에 드는 돈, 약 150억원입니다.

대우조선이 1년에 쓰는 비용의 0.25% 수준입니다.

이 정도로 정말 인력 유출을 막고 끌어들일 수 있을까요?

[박종식/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조선사들이) 그냥 막연하게 다시 우리가 채용하면 사람들 올 거라고 했는데 그게(채용이) 2019년도부터 좀 안 됐거든요. 그때쯤부터 (조선사들이) 이제 처우를 좀 대폭 개선을 하거나, 근무 환경을 좀 많이 개선을 하거나. 뭐 이런 노력들이 좀 병행이 됐어야 되는데, 그 시기를 한번 놓친 것 같아요."

하지만 조선업계는 처우 개선엔 관심이 없어보입니다.

한 아르바이트 사이트.

조선소를 검색하자, 수많은 채용 공고가 검색됩니다.

그중에 하나를 클릭해봤습니다.

'올해 수주목표 초과달성, 물량 폭발'이라며 '조선 호황기를 함께할 인재 모집'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전화해봤습니다.

하루 일당은 13만원, 4대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이 돈을 다 받아갈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 ☎ 구인 하청업체 관계자] "솔직히 국민연금은 굳이 나라에다 낼 이유는 저는 잘 모르겠거든요. 4대 보험 안 들어가면 소득세 몇 퍼센트 떼는 거 말고는 공제되는 게 아예 없습니다."

4대보험 가입할 필요없다는 일, 이른바 '발판 작업'이었습니다.

만드는 배가 하도 크다보니 작업자들이 올라가 일할 발판이 배 옆에 설치돼있어야 하는데요.

수십미터 높이에서 이 발판을 설치하는 일이 바로 '발판 작업'입니다.

또 다른 해결책은 '외국 인력' 입니다.

지난달 조선3사 대표들은 산업부 장관과 고용노동부 장관을 만나 외국인 노동자들을 쉽게 뽑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후, 노동부는 외국인력 쿼터를 1만명 늘린다고 발표했습니다.

〈스트레이트〉는 고용노동부 장관을 직접 찾아가 이 대책, 정말 효과가 있을지 물어봤습니다.

장관도 미봉책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정식/고용노동부 장관 (지난 16일)] "지금 수주가 넘치고 가는데 사람이 없어서 안 간다고 그러면 어떡하겠어. 근데 이런 상태에서 일단 급한 불은 끄면서 근본적인 대책들을 해결하기 위한 차근차근 노력들이 필요한 거죠. 이걸 누가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보겠어요" (그래서 지금도 사람들이 부족한데 이제 숙련공들의 대가 끊긴다고 하고 있거든요.) "그렇죠. 그렇죠" (결국에는 이 근본적인 문제를 막지 않으면‥) "아니 그런 부분들도 계속 고민을 하고 풀어야죠" (장관님, 하나만 더 여쭤볼게요.) "‥"

심지어 이 방법, 과거 실패 사례까지 있습니다.

지난 2006년 한진중공업은 한국 대비 1/10의 인건비로 운영이 가능하다며 필리핀 수빅에 세계적 규모의 조선소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불량이 속출하는 등 품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고용이 불안하자 현지 하청업체 직원들은 기술을 배워 다른 사업장으로 떠났습니다.

각종 산업재해로 35명이 숨져 필리핀 상원의회에서는 청문회까지 열렸습니다.

결국 수빅 조선소는 지난 2019년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했고, 한진중공업은 자본잠식에 빠졌습니다.

[이은창/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조선산업 전문)] "외국 인력들은 단가는 낮지만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기업 예상보다) 인건비 세이브(절감)가 안 되는 이슈가 생길 수 있고요."

조선업은 경기에 따라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사이클 산업'으로 불리는데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감소하던 수주량은 2016년 최저점을 찍었습니다.

그러다 재작년부터 수주량이 급증합니다.

올해 상반기에는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의 45%를 국내 조선사들이 수주했습니다.

특히 LNG운반선 같이 고부가가치 선박은 62%를 휩쓸었습니다.

[이은창/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조선산업 전문)] "LNG 운반선 같은 경우에는 고기술을 필요로 하고 굉장히 안전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더라도 이런 (고부가가치) 선박들이 우리나라에 (수주가) 오게 되고요."

기술력이 중요하다는데 정작 일할 사람이 없습니다.

조선업의 앞날에 대해 걱정이 나오는 이윱니다.

[길은선/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 (고용정책 전문)] "핵심 숙련이 확보된 노동자들을 길러내는 방향으로 인력 양성이 되어줘야 되는데, 조선업에서 지금 그 (숙련공) 명맥이 상당히 끊어져 가고 있는 어려운 상황이긴 합니다."

회사가 어려울 때는 고통 분담을 외치며 세금을 받습니다.

받고 나선 방만 경영을 하고 문제 해결은 미뤄둡니다.

이제 호황의 길목에 접어드니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이나 인건비가 발목을 잡는다며 또 책임을 떠넘깁니다.

어쩌면 이 모습, 한국 조선업이 흔들린 진짜 원인 아닐까요.

[박종식/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정부에서 그냥 일방적으로 기업의 소원 수리, 민원 해결만 해주지 말고, '너희(조선소)들도 자구 노력이든 아니면 개선 노력이든' 이런 것들을 요구하는 게 맞지 않나요."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straight/6408882_289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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