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해트트릭
후반 38분, 42분, 43분에 골, 골, 골. 차범근이었다. 5분 만에 3골을 넣어 1-4로 뒤지던 경기를 순식간에 4-4 무승부로 만들었다. 방석을 내던지고 야유하며 경기장 밖으로 나가던 3만 관중이 일순간에 넋이 나간 듯 얼어붙었다. 1976년 9월11일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박스컵’이라 불렸던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개막전. 한국 국가대표 1진 ‘화랑’ 팀과 말레이시아의 경기였다. 한국 축구 역사에 손꼽히는 명경기이자 가장 강렬한 ‘해트트릭’이 나온 경기로 지금도 회자된다.
축구의 해트트릭은 한 선수가 한 경기에서 3골 이상을 터트리는 것을 말하는데, 야구와 비슷한 영국의 국기(國技) ‘크리켓’에서 유래했다. 1858년, 타자 3명을 공 3개로 아웃시킨 투수에게 모자를 축하 선물로 준 것이 원조라고 한다. 이후 축구 용어로 채택됐는데, 기네스북에 오른 축구 첫 해트트릭은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 때 미국의 버트 페이트노드가 파라과이를 상대로 기록한 것이다. 한 경기 4골은 ‘슈퍼 해트트릭’, 6골은 ‘더블 해트트릭’으로 불리기도 한다.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해트트릭을 기록한 선수는 브라질의 ‘축구 황제’ 펠레다. 1956년 데뷔해 1977년 은퇴할 때까지 92회나 기록했다. 그 뒤로 현역 선수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가 각각 60회, 55회로 역대 2·3위를 달리며 각축을 벌이고 있다. 가장 빠른 시간에 달성한 해트트릭은 1964년 토미 로스가 스코틀랜드 프로 리그에서 ‘90초’ 만에 기록한 것이다. 지금처럼 골 세리머니를 하지 않고 골을 넣자마자 공을 들고 뛰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손흥민(토트넘)이 18일 프리미어리그 레스터시티와의 경기에서 후반 교체 멤버로 들어가 13분21초 만에 3골을 터뜨렸다. 이번 시즌 개막 후 공식전 8경기에서 한 골도 못 넣다가 속시원한 해트트릭으로 ‘월드클래스’의 실력을 입증한 것이다. 손흥민은 “누군가는 나를 의심할 수 있어도, 내 능력을 믿었다”고 말했다. “인생이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들라”는 서양 속담은 신맛 나는 고난과 시련을 긍정적인 태도로 이겨내라는 뜻이다. 손흥민은 이를 유쾌하게 패러디한 글로 소감을 표했다. “인생이 레몬을 주면, 해트트릭을 해버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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