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확장억제협의체, 양국 이견 재확인
4년 8개월만의 회의 뒤 한국 정부 평가
"미 전략무기 전개 운용 한국 발언권 확보
전략자산 시의적절 전개 한국과 공조 강화"
한국은 확장억제 능력 강화에 관심있지만
미국은 신뢰성·전략커뮤니케이션에 관심
협의체 매년 정례 개최 상징적 효과 있지만
한국 발언권 확보하는 제도적 틀로는 한계
미 전략무기 한반도 정례·적시 배치 논의
미 세계전략과 상충해 일방적 희망 그칠 듯
지난 16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4년8개월 만에 열린 한-미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회의 뒤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은 “미국의 보다 강화되고 최신화된 확장억제 공약 확인”이 주요 성과라고 말했다.
양국은 확장억제전략협의체를 매년 정례적으로 개최하고 내년 회의 전에 실무 회의도 개최키로 했다. 이를 두고 한국은 미국의 전략폭격기, 항공모함 등 전략무기 전개 및 운용과 같은 확장억제정책을 집행하는 데 우리의 발언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됐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전략무기를 독자적으로 알아서 운용하려고 한다. 2006년 이후 한미는 국방장관 회담에서 확장억제 공약을 해마다 확인했지만, 확장억제를 실행하는 구체적인 절차, 내용에 대한 양국 합의는 없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확장억제를 두고 “공약(말)뿐이고 실체가 없다”는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회의 뒤 공동성명에서 한-미는 대북 억제 강화를 위해 “미국은 전략자산의 시의적절하고 효과적인 역내 전개와 운용이 지속되도록 한국과 공조를 강화할 것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한국은 미국 전략무기 정례·적시 배치도 기대했다. 확장억제전략협의체 회의 뒤 정부 고위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구체적으로 어떤 전략자산을 어떻게 추가 배치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상황에 따라 전략자산 배치를 정례화하고 적시적으로 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논의는 있었다”고 전했다.
한국 정부는 이번 확장억제전략협의체 회의가 큰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일부 진전이 있지만 기존 양국 이견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동안 양국의 확장억제 관련 논의는 능력(Capability), 신뢰성(Credibility), 전략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으로 나눠 이뤄졌다. 한-미가 중요하게 여기는 내용이 다르다. 한국은 능력 강화에, 미국은 신뢰성과 전략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이 많다. 한국은 유사시 한반도로 출동할 미국 전략무기들의 규모·수준이 확대되는 것을 확장억제 강화라고 본다. 또 미국 전략무기의 한반도 정례·적시 배치도 희망한다. 이번 회의 뒤 정부 당국자들이 “미국의 보다 강화되고 최신화된 확장억제 공약 확인”을 주요 성과로 꼽은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미국은 현재 제공하는 확장억제 전력이 충분하다고 본다. 미국은 능력 강화보다는 확장억제의 신뢰성과 확장억제 보장을 알리는 전략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에 집중하려고 한다. 예컨대 확장억제전략협의체 회의에 참석차 방미한 신범철 국방부 차관이 미국 앤드루스 합동기지를 방문해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비(B)-52 전략폭격기를 살펴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회의 뒤 공동성명은 “확장억제전략협의체 대표단의 B-52 전략폭격기 시찰이 동맹의 억제력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이를 두고 한국 당국자는 양국의 전략자산 운용 공조 차원에서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평가하자, 미국은 거리를 뒀다. 패트릭 라이더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16일(현지시각) 정례브리핑에서 “(비-52 같은) 전략자산 공개가 미국 공군 창설 75주년 기념행사로 이뤄졌다”며 “이를 축하하기 위해 앤드루스 기지에 다양한 항공기가 이번 주말 전시된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유사시 확장억제가 작동해 전략무기들이 한반도에 오게 될 경우, 관련 논의 과정에서 발언권을 확보하기를 희망한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확장억제를 판단하는 과정과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데 있어 우리 목소리를 반영하는게 가장 궁극적인 목표”라며 “이번 확장억제전략협의체 회의에서 우리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한 논의를 했다”고 말했다.
한국은 확장억제전략협의체 매년 정례 개최를 두고 확장억제정책을 집행하는 데 우리의 발언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됐다고 평가했다. 한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는 양국 외교·국방부 차관이나 실국장급이 참가하는 대화체로, 필요할 때 만날 뿐 상설 조직이 아니다. 협의체 정례화는 상징적인 효과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고정 인력 배치없이 몇 사람이 직책을 병행하는 형태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에는 한국의 발언권을 확보하는 제도적 틀로 작동하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번에 미국이 전략자산 운용 공조 강화를 약속했지만, 미국이 장거리 전략폭격기,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과 원자력 추진 잠수함 등 전략무기를 한국과 합의해 운용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의 미국 전략무기 한반도 정례·적시 배치도 한국의 일방적 희망 사항에 가깝다.
미국 전략무기는 장거리 투사 능력이 핵심이다. 장거리 투사 능력이란 전세계 어디든 마음 먹으면 군사력을 보낼 수 있는 능력인데 소련이 망한 뒤 전세계에서 미국만이 가진 능력이다. 미국 세계 패권의 바탕이 군사력이고, 미 군사력의 핵심이 장거리 투사 능력이다.
한국이 희망하는 전략무기 정례·적시·추가 배치는 미국 처지에서 보면, 지구 곳곳에서 신속하고 유연하게 작전을 수행하도록 만든 값비싼 전략무기를 ‘한반도 붙박이’로 두자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세계 전략에 차질을 빚게 하는 것은 물론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에 전략무기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위험을 자초하는 것이다. 미국이 전 세계 위협을 염두에 두고 짠 전략무기 운용 계획을 한국을 위해 바꿀 가능성은 매우 낮다. 앞서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10월 한-미 국방장관이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전략폭격기와 핵잠수함 등 미국 전략무기의 한반도 상시 순환 배치 방안을 논의했으나 미국은 이런 이유로 거절했다.
확장억제전략협의체 앞으로 활동 방향을 두고도 양국이 미묘하게 온도차를 드러냈다. 패트릭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은 “협의체는 양국 정부에게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보를 논의할 기회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확장억제의 범주를 북핵뿐만 아니라 중국 위협까지 고려해 확장할 필요성을 시사한 것이다. 보니 젠킨스 국무부 군비통제·국제안보 차관도 확장억제전략협의체 회의 모두발언에서 “지역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전략적 위험을 관리하고 감소시키는 것과 관련해 중국의 저항을 무시할 수 없다”며, 중국에 대한 대응을 논의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와 달리 한국 고위당국자는 회의 뒤 “확장억제협의체는 북핵 미사일 대응을 구체적 논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한-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 회의는 높아진 북핵 위헙에 대응해 몇가지 눈에 보이는 상징적 조처를 보여줬지만, 기존 양국 이견을 뛰어넘지 못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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