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암 투병' 안성기, '기쁜 우리 젊은날'을 꿈꾸며[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국민배우 안성기(70)가 혈액암으로 투병중이다. 지난 15일 안성기는 ‘배창호 감독 특별전’에 참석했다. 부은 듯한 얼굴에 가발을 쓰고 배우 김보연의 부축을 받으며 단상에 올랐다. 소속사 아티스트 컴퍼니 측은 17일 마이데일리에 “안성기가 현재 혈액암 치료 중이며, 평소에도 관리를 철저히 하시는 만큼 호전되고 있는 상태이다”라고 전했다. 그는 17일 압구정CGV에서 열린 영화 ‘깊고 푸른 밤’ 스페셜 시네마톡에 참석해 “다시 열정이 끓어 오른다. 영화는 나의 모든 것이다. 영화를 떠나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영화를 많이 사랑하고, 좋아하고 있다. 영화를 통해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그가 영화에 대한 열정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이다.
대학 시절 연극 공연을 통해 처음 본 혜린(황신혜)을 짝사랑한 영민(안성기)은 그녀의 연극공연 때마다 익명으로 꽃, 과일 등을 보낸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는 그는 전공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연극 대본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써서 혜린에게 보여주며 구애를 펼친다. 그러나 혜린은 산부인과 전문의와 결혼을 하고 뉴욕으로 떠난다. 어느날 영민은 지하철에서 이혼하고 돌아온 혜린을 발견한다. 허영과 욕망에 빠져있던 혜린이 이혼의 아픔을 겪고 힘들어할 때, 영민은 지극 정성으로 사랑을 고백하며 결국 결혼식을 올린다. 하지만 임신중독 증세로 산모의 생명을 장담할 수 없다는 의사의 말에 영민은 수술을 권하지만, 혜린은 진정으로 사랑했던 영민의 아이를 낳기를 소망한다.
‘기쁜 우리 젊은 날’은 충무로 최고의 멜로영화로 꼽힌다. 수많은 씨네필이 이 영화를 보고 감독의 꿈을 키웠다. 안성기는 과거 기자와 인터뷰에서 "‘기쁜 우리 젊은 날’을 보고 감독이 된 사람이 20명은 넘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무엇이 젊은 영화학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영화가 개봉했던 1987년은 거리에 최루탄이 터지고, 돌이 날아다니던 시절이었다. 군부독재 타도를 외쳤던 청춘은 혁명을 꿈꿨고, 사회적 이슈를 담은 영화에 경도됐다. 그런 사회 분위기에서 애절한 순애보 영화가 도착했다. 배창호 감독의 유려한 롱테이크와 동화같은 미장센은 영민의 순수한 열정과 어우러져 청춘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이렇게 진실한 사랑을 이토록 아름답고 유머러스하면서도 뭉클하게 담아낸 작품을 보면서 젊은이들은 로맨스 영화도 감동을 줄 수 있다는 평범한 진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혜린을 향한 영민의 사랑은 영화에 대한 안성기의 마음을 떠올리게 만든다. 놀이터에서 아버지(최불암)가 "그 여학생이 그렇게 좋아?"라고 묻자, 영민은 엉엉 울면서 ”네“라고 대답하며 아버지 가슴에 기댄다. 안성기는 영화가 그렇게 좋았다. 다섯 살 때 아역배우로 데뷔한 이후 1980년 ‘바람 불어 좋은 날’로 본격적인 성인연기를 시작한 그는 수십 년간 충무로 최고의 배우로 활약했다. 80년대의 전성기를 거쳐 90년대 ‘투캅스’로 정점을 찍은 그는 1999년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통해 조연으로 내려왔다. 그는 "주연에서 조연으로 부드럽게 기어를 바꿨다"고 회고했다. 안성기는 변화를 받아들였다. 떠오르는 청춘스타에게 주연 자리를 내주고 조연으로 수많은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오늘(18일) CGV 압구정에서 열린 ‘기쁜 우리 젊은 날’ GV는 매진됐다. 배창호 감독, 최불암, 황신혜가 참석해 영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수많은 청춘의 가슴에 영화에 대한 사랑을 심어주었던 ‘기쁜 우리 젊은 날’은 35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관객의 마음을 적신다. 2012년 유튜브에 무료로 올라온 이 영화의 조회수는 이날 현재 91만 조회수를 넘어섰다. 영민은 공중전화 박스에 꽃바구니를 놓아두고 비를 흠뻑 맞으며 하루 종일 혜린을 기다린다. 혜린이 “제가 그렇게 좋으세요?”라고 묻자, 영민은 “네”라고 답한다. “어디가 좋으세요?”고 재차 묻자, 그는 “전부 다”라고 말한다. 관객도 안성기의 '전부 다'를 좋아한다. 그가 건강한 몸으로 다시 돌아올 때, 관객은 꽃바구니를 선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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