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안오면 평생 후회"..16시간 대기에도 여왕을 추모하는 이유
사흘간 710명 응급 처치..대기 도중 기절·머리 부상
(런던=뉴스1) 정윤영 기자 =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마지막 인사를 고하고자 추모객들이 끊임없이 몰려들고 있다. 추모객들은 16시간에 달하는 대기 시간을 감내하더라도, 인생에서 단 한 번 뿐이 될 기회를 놓칠 수 없다며 참배를 결심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국장을 이틀 앞둔 17일 밤 캐롤린 데이비스(54)와 니콜라 스티븐(57)은 사우스워크파크에서 템스강변을 따라 타워브리지까지 4시간째 대기 중라며 여왕에게 축배하기 위해 와인잔을 꺼내들었다.
데이비스는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오후 4시30분부터 대기 행렬에 동참했고 밤 7시쯤 와인을 개봉해 여왕에게 축배를 들었다. 영국인으로써 어렸을 때부터 크리스마스 오후 3시만 되면 여왕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한 평생을 자라왔는데 여왕이 떠났다니 이제 우리가 그를 위해 경의를 표할 순간이 왔다. 몇 시간 동안 서 있는 것. 이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데이비스는 "처음 여왕의 서거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우리는 샌드링엄에서 지인을 방문 중이었다. 당시 우리 모두는 울음을 터트렸다"면서 "엘리자베스 여왕은 샌드링엄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데,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여왕이 머물던 곳을 둘러봤다. 그리고 오늘 이곳에 오기로 결심했다"고 전했다.
그는 "내일 새벽 5시나 돼서야 참배를 마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밤 사이 추위를 견디기 위해 옷과 장갑, 모자, 과자 그리고 '서로(each other)'를 챙겼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워낙 고령이신 탓에 오랜 시간 대기하기엔 무리라고 생각해서 가족들을 대표해 추모행렬에 동참했다. 이번 추모는 영국의 역사에 기리 남을 것이다. 영연방과 영국은 영원히 이번 일반 공개와 같은 경험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비스의 약혼자인 스티븐도 "일생일대의 기회고 12시간을 더 대기해 내일 오전이 돼서야 참배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사안이 사안인 만큼 여왕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고자 참배하기로 결정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국가의 어머니였다. 완벽한 본보기이지 않았는가"라고 말했다.
팻시 프린스(52)는 "한때 참배 대기 시간이 24시간에 달했기에 선뜻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일반 공개 마감이 임박할수록 '만일 오늘 추모 행렬에 동참하지 않을 경우 한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집밖을 나섰다"고 전했다.
프린스는 "내가 여왕을 처음으로 기억하는 나이는 여왕의 실버 주빌리(재위 25주년)가 거행됐던 7세 때였다. 나는 이제 52세가 됐는데, 여왕의 서거 소식은 생각보다 더 슬펐다. 여왕은 나의 가족이나 지인도 아니었고, 단 한 번도 만나 뵙지 못한 분이기에 이토록 감정에 북받칠 줄 몰랐다. 아무래도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감정이 들어서인 것 같다. 여왕은 죽음으로 내 안의 한 부분도 죽은 느낌"이라며 인터뷰 도중 눈물을 흘렸다.
필리스 드루어트(52)는 "TV에서 여왕의 서거 보도를 일주일 내내 시청하다 마침내 추모에 동참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만일 지금 추모 행렬에 동참하지 않으면 다시는 이와 같은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오후 4시20분부터 줄을 서기 시작했는데, 밤에 이곳에 있다니 색다른 경험이다. 사람들은 여왕이 70세, 80세, 90세가 되면 왕위를 물려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왕은 서거 바로 직전까지 업무를 수행하며 자리를 지켰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왕세녀였던 21세 나이에 '나의 삶이 길든 짧든, 평생토록 국민을 섬기는 데 헌신할 것임을 여러분 모두 앞에 선언한다'고 말했는데, 그 약속을 지켰다"고 전했다.
포르투갈에서 날아온 파울로 페레라(44)는 긴 대기 시간을 감수하고도 여왕을 참배하기로 한 결심이 '아들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그는 "오후 5시 전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며 "4시째 대기 중인데 앞으로 12시간 더 소요될 것으로 생각된다. 들어서서 어떤 감정을 느낄지는 모르겠다. 단지 여왕에게 경의를 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겸허함과 자긍심을 느끼고 있다. 여왕을 참배할 수 있는 것은 특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페레라는 "밤샘 대기를 위해 10kg에 달하는 배낭 가방을 챙겼다"면서 "이 가방 안에는 과자 초콜릿, 샌드위치, 요거트와 같은 먹을 것과 목도리, 모자, 장갑이 있다"고 했다.
헨렌 마운처(43)는 "그냥 와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여왕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하게만 느껴진다. 오후 5시부터 줄을 서기 시작했는데, 12시간이 더 소요된다고 한다. 그래도 인근에 거주 중인 사람들이 화장실을 사용하라고 자신들의 집을 개방하고 있고, 쉬다 가라고 차(茶)까지 건네는 사람들도 있었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좋은 사람들과 만나며 대기 중"이라고 말했다.
마운처는 "참배를 위해 홀에 입장하면 무슨 감정이 들지 아직까지는 모르겠다"며 자리를 떴다.
이커머스 플랫폼인 영국 이베이에서는 일반공개 대기를 위해 제공되는 입장밴드를 판매하는 추모객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일부 판매자는 해당 입장 밴드를 350파운드(약 56만원)에 올려놓기도 했는데, 추모객들은 이런 행위가 불쾌하고도 무례하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데이비스는 "상스럽고 저속한 행위다. 우리는 한평생 입장밴드를 간직할 것이다. 이 것은 역사적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프린스 역시 "저급한 이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한편, 지난 8일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관은 현재 런던 템스강 옆 웨스트민스터 홀에 안치돼 있다. 여왕의 관을 일반에게 공개해 여왕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고할 수 있는 '일반 공개'는 국장 당일인 19일 오전 6시30분까지 진행된다.
다만 영국 디지털·문화·미디어·스포츠부(DCMS)에 따르면 참배를 위한 대기 줄은 18일 현재, 한계에 도달해 신규 입장이 중단된 상태다. 전날 참배 대기 시간은 한때 웨스트민스터 홀까지 17시간에 달했다.
응급관리국에 따르면 14일부터 사흘간 응급 처치를 받은 추모객은 710명이었다. 영국 런던 응급의료서비스인 런던 앰뷸런스(구급차)는 대부분의 부상자들이 기절하면서 머리를 다쳤다고 밝혔다.
yoong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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