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방사선 활용 '양자물질연구' 늘리자
필자는 몇해 전에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국가 대형연구시설 활용을 총괄하는 업무를 한 적이 있다. 소재와 물질의 근간인 원자와 분자를 관측하여 물질의 구조와 기능의 비밀을 파헤치는 연구용원자로 ‘하나로’, 경주의 양성자가속기, 전자선을 활용하는 초고속방사선연구시설이 그들이다. 보임되어 생각한 것 중의 하나가 이들 시설과 연구조직의 역량을 결합한 혁신적 연구주제를 발굴하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후배들과 같이 생각해 낸 것이 양자물질 개발 연구였다. 그 당시는 양자 통신, 양자 컴퓨팅 등 양자기술에 대한 관심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미래 사회의 기술 주도권 확보를 위한 국가 간 경쟁의 전면에 등장하던 시기였다. 우리나라도 기술 격차를 줄이기 위해 연구 개발에 대한 투자가 막 시작되었으나 그 근본을 이루는 양자물질 개발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던 때였다. 방사선 연구시설은 이런 양자물질의 성질을 분석하고 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 훌륭한 인프라라는 것이 생각의 출발점이었다.
양자물질은 우리가 일상에서 보편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물리적 원리를 따르지 않는, 즉 양자역학이라는 특수한 원리를 따르는 물질계를 지칭한다. 예를 들어 양자 물질계에서 전자는 입자가 아닌 파동의 성질을 가지며 심지어 이 성질로 인해 절연체 사이를 넘어 이동할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을 보여준다.
또한 전기적으로 반발하는 전자들을 물질 내부에 모아두면 오히려 반발력을 상실하여 초전도체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전자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성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양자 현상은 원자 단위의 불순물이나 섭씨 -270도 이하의 저온에서 가해지는 아주 적은 열에 의해서도 쉽게 왜곡될 수 있어 이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고비용의 초정밀 측정 장비와 환경이 필요하기 때문에 첨단 대형 연구시설이 필수적이다.
사실 우리 생활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반도체의 근본 동작 원리는 양자역학으로만 설명이 가능하므로 어찌 보면 우리는 이미 양자 물질계의 세상에 살고 있다. 현재의 양자기술 수준은 기존에 잘 알려진 물질 혹은 소재를 이용하여 개발하고 있는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양자현상의 장점을 살려 실리콘 반도체와 전기전자 기술을 넘어서는 양자기술의 궁극의 목표, 즉 슈퍼컴퓨터보다 수천 배 빠른 연산이 가능한 양자컴퓨터, 완벽한 보안이 가능한 양자 통신, 한 개의 암세포도 측정 가능한 양자센서와 같은 양자기술의 성패는 양자현상에 특화된 새로운 물질의 개발에 달려있다.
더욱이 반도체 기술 시대의 실리콘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양자물질을 선점하는 국가는 기존 국가 기술 경쟁력의 패권을 뒤흔들어 새로운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다행히 새 정부는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글로벌 기술 주도권 확보가 필수적인 기술’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초격차 전략기술'에 차세대원전, 수소,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2차전지, 5G·6G를 포함하여 현 시점의 국가경쟁력 강화를 추구하고, 향후 미래 기술 주도권 확보를 위해 '미래전략기술' 후보로 바이오, 우주·항공, 인공지능·모빌리티, 사이버보안과 더불어 양자기술을 전면에 내세운 과학기술개발 정책을 확정하였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생산기술을 바탕으로 응용 분야의 성장을 이뤄도 기초 분야인 '소재·부품·장비' 해결력이 없으면 항상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느끼고 있다. 다행히 2017년에 제시했던 아이디어가 기반이 되어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는 2018년부터 양자물질에 대한 연구 개발을 주요 미션의 하나로 채택하고 작년부터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소중한 연구 인프라를 이용하여 층상물질의 개발 등 양자물질 연구에서 조금씩 성과가 나오고 있다. 앞으로 양자물질 연구에 대한 투자가 대폭 확대되어 이를 위해 분투하고 있는 후배들의 사기가 올라가고 기초와 응용연구가 조화를 이루며 발전하기를 고대해 본다.
나아가 이는 방사선연구시설을 이용한 연구가 국가와 과학 발전에 기여하는 좋은 실례가 되어 방사선과 원자력 활용 연구에 대한 국민의 인식 제고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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