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 없이 알아서 장애물 피해 운항..'바다 위 테슬라' 쾌속질주

박호현 기자 2022. 9. 18.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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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기업을 뛰게 하자] 3부 - 혁신 현장을 가다
<13> 선박 자율운항 실현..현대중공업 자회사 아비커스
어선·지형 등 실시간 탐색해 운항..접안도 스스로 '척척'
태평양 횡단선 최적경로로 연료 7%·온실가스 5% 절감
친환경·미래 선박기술 선도..내년 자율운항 보트 상용화
[서울경제]
인천 왕산 마리나 인근 해상에서 HD현대의 자율운항 자회사 아비커스의 자율운항 보트가 선장석을 비운 채 바다를 달리고 있다.
아비커스의 자율운항 2단계 기술이 적용된 LNG운반선 프리즘 커리지호.

최근 인천 왕산 마리나에서 HD현대(267250) 자회사인 아비커스의 자율운항 보트에 탑승했다. 선장이나 조타수 등 선원이 아무도 없었지만 보트는 알아서 인천 앞바다를 순항하기 시작했다. 아비커스 직원이 태블릿으로 몇 번의 터치만 했을 뿐이었다. 그는 경로·속도 설정만 했고 이후 달리는 보트만 지켜보고 있었다.

태블릿에 설정한 경로에 맞춰 20노트(약 시속 37㎞)로 빠르게 바다를 가르던 자율운항 보트는 갑자기 전방 100m에서 돌진하던 어선을 발견했다. 정확히 말하면 보트에 설치돼 있는 6대의 서라운드카메라와 라이다가 어선을 포착했다. 빈 선장석에 있는 조타기(핸들)가 즉시 돌아갔다. 마치 유령이 움직이듯 조타기가 몇 번 움직이더니 앞 시야에는 어선이 사라졌다. 이날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다 다시 조타기가 빠르게 움직였다. 원래 계획된 항로로 복귀하기 위해서다. 자율운항을 하다 장애물이 보이자 자율회피를 했고 장애물이 사라지자 자율운항을 시작했다. 운항 중에 앞에 나타난 어망·선박·지형 등 물체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위험 물체라고 판단하면 회피하는 일을 계속했다.

자율운항 마무리는 자동 접안이었다. 자동차로 치면 주차인데 접안은 베테랑 선장도 어려워하는 기술이라 사고도 많이 난다. 선박은 자동차처럼 브레이크도 없고 바람이나 해류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비커스 자율운항 선박은 컴퓨터로 계획된 접안 프로그래밍으로 바람과 해류 영향을 고려해 오차가 거의 없이 접안에 성공했다.

◇세계 최고 기술 구현=아비커스는 2021년 1월 현대중공업그룹의 지주사 HD현대에서 설립한 자율운항 스타트업이다. 현재 2단계 자율운항 기술인 ‘하이나스(HiNAS) 2.0’ 기술을 개발해 시범 운항 중이다. 국제해사기구(IMO)에 따르면 자율운항은 4단계로 구분한다. 1단계는 선원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수준, 2단계는 자율운항을 하며 선원이 원격제어 정도만 할 수 있다. 3단계는 선원 없이 원격제어를 하고 완전 자율운항 단계인 4단계는 선박 운영체제가 해상 상황을 스스로 판단하고 운항한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수년간의 준비와 연구개발(R&D) 끝에 2020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딥러닝 기반의 항해보조시스템 상용화에 성공했다. 6대의 서라운드카메라, 라이다, 인공지능(AI), 증강현실(AR), 딥러닝 등 첨단 기술이 접목돼 2단계 자율운항 수준까지 왔다.

미래차 시장 선두 기업 테슬라가 자율주행 기술을 선도하는 것처럼 글로벌 조선 업계 1위 현대중공업그룹이 자율운항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현재 우리나라 조선 산업은 중국의 거센 추격에 시달리고 있다. 인건비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중국은 컨테이너선 분야에서는 한국을 이미 넘어섰고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같은 선종은 아직 한국이 우위지만 중국이 한국 기술력을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다. 글로벌 1위 조선 산업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 자율운항과 같은 첨단 기술을 선제적으로 투자해 ‘세계 표준’으로 만들어야 한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적극적인 투자와 그룹사 선박에 기술을 적용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지난해 2월에는 현대중공업그룹에서 계약되는 선박에 아비커스의 항해보조시스템을 공급하고 있다. 아비커스는 올 1분기 매출 3억 원에 33억 원 영업적자를 봤지만 최근 100억 원 규모의 추가 투자도 하며 미래 기술 선점을 위해 뭉칫돈을 쏟고 있다.

◇자율운항은 친환경·저비용 선도 기술=특히 환경 규제 강도가 높아지는 해운 업계에서 향후 자율운항은 친환경 운항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비커스는 6월 세계에서 처음으로 자율운항 기술 기반으로 태평양 횡단에 성공했다. 올해 5월 1일 미국 남부에서 출발해 파나마운하 통과, 태평양 횡단 등 33일간의 운항을 마치고 충남 보령 LNG터미널까지 항해였다.

여기서 2단계 자율운항 솔루션이 적용됐는데 최적 경로를 생성해 연료 7%를 아끼고, 온실가스 5%를 절감하는 데 성공했다. 또 충돌 100회 자동 회피도 이뤄냈다. 앞으로 3~4단계 자율운항이 구현되면 연료·온실가스 절감 정도는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한 달 안팎으로 운항하는 대양 횡단에서 자율운항 기술은 친환경 운항의 대표적인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비커스는 자율운항 레저 보트를 내년께 상용화할 계획이다. 대양에서 자율운항을 하기 위해서는 IMO 규제 개정이 필요하다. 당장은 대양 자율운항이 아닌 연안에서 움직이는 레저용 보트 시장에 진출한다. 레저용 보트는 전 세계 1000만 척이 넘고 이용 가격도 비싸다. 당장 우리나라의 레저용 보트 이용 요금은 1시간에 1만 원 정도로 4인 가족이 2시간가량 타면 8만 원 정도 든다. 하지만 자율운항 솔루션이 적용되면 가격은 획기적으로 낮아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아비커스는 올해 말 미국에서 열리는 마이애미 국제보트쇼에서 자율운항 레저 보트 기술을 공개한다는 계획이다. 임도형 아비커스 대표는 “최소 100만 장 이상 모션데이터를 확보했고 내년까지 아비커스가 가장 많은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호현 기자 green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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