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창업자에게 주는 기회의 함정 [정혜진의 Whynot 실리콘밸리]

실리콘밸리=정혜진 특파원 2022. 9. 1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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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워크 창업자' 뉴먼 재기 기회
검증된 창업가에 대규모 투자
여성·소수인종 등은 기회 줄어
높아진 투자 문턱 방증 사례로
[서울경제]
/a16z 홈페이지 갈무리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의 대표 벤처캐피털(VC)인 앤드리슨호로위츠(a16z)의 공동 창업자 마크 앤드리슨이 쓴 한 장의 추천서가 화제가 됐다. 앤드리슨 창업자는 페이스북·에어비앤비·깃허브 등에 초기 투자해 실리콘밸리에서는 ‘킹메이커’로 불릴 정도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니는 인물이다. 추천 문화가 중요한 미국 사회에서 그의 추천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도 상대에게는 믿음을 주는 ‘보증수표’가 된다.

960여 개 단어로 쓰인 그의 추천서는 위워크 창업자인 애덤 뉴먼을 위한 것이었다. 뉴먼의 새로운 스타트업 ‘플로(flow)’에 3억 5000만 달러(약 4800억 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앤드리슨은 평소 포트폴리오 기업 투자 이유를 설명하던 것과는 달리 ‘실패한 창업자’에게 기회를 줘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하는 데 긴 분량을 할애했다. 앤드리슨 창업자는 “뉴먼은 비전이 있는 리더다. 많은 평가 중에도 그가 오피스 경험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고 패러다임을 바꾸는 글로벌 기업을 이끌었다는 사실이 종종 저평가된다”며 “우리는 실패의 교훈으로부터 성장해 성공의 경험을 거둔 연쇄 창업자를 보기를 원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뉴먼은 실리콘밸리에서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인물이다. 공유 오피스 기업 위워크를 설립해 키워냈지만 내실 있는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위워크는 한때 기업 가치가 47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 받았지만 고성장 고비용 구조에 발목이 잡혔다. 결국 재무 건전성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뉴먼이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난 뒤 진행한 기업공개(IPO) 이후 시가총액은 90억 달러로 고꾸라졌다.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이끄는 비전펀드는 169억 달러를 쏟아부어 쓴맛을 봤다. 뉴먼은 애플TV+가 올 초 내놓은 시리즈 ‘우리는 폭망했다(We crashed)’에서 실패한 창업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하지만 누구도 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창업자에게 앤드리슨의 추천서는 새로운 기회를 열어줄 것으로 보인다. 뉴먼이 실패의 교훈을 발판 삼아 새롭게 성공의 경험을 이끄는 연쇄 창업자가 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견은 개방성을 중요시하는 미국 사회에 생각해 볼 만한 중요한 메시지를 던졌다. 앤드리슨의 보증 덕에 뉴먼에 대한 투자시장의 평가가 달라질 것이며, 그가 실패를 딛고 창업 생태계에 새로운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고개를 들고 있다. 심지어 플로는 아직 서비스 출범도 하지 않은 스타트업이다.

동시에 우려도 제기된다. 전 세계적 경기 불안으로 투자 생태계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실패의 경험이라도 검증이 된 기존 창업가 위주로 대규모 투자가 진행된다는 점은 우려할 만한 부분이다. 맥 콘웰 레어브리드벤처스 파트너는 개인 트위터 계정에 “경제 침체기에 자원은 보다 안전해 보이는 방향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라며 “위워크라는 프레임이 있는 뉴먼 대신 알려지지 않은 창업자에게 투자하는 건 빨리 해고당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뉴먼의 부활이 단순히 재기의 상징이 아니라 높아진 투자 업계의 문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재기한 분야가 진입 장벽이 높은 주거용 부동산 분야라는 점도 개운치 않다. 그는 손 회장에게 위워크 지분을 팔면서 23억 달러에 달하는 순자산을 확보했고 이를 통해 주거용 아파트 4000여 채를 사들일 수 있었다.

스케일업의 경험이 있는 창업자들에게만 큰 투자의 기회가 돌아가면서 그렇지 못한 창업자들의 기회는 줄고 있다. 경기가 위축되자 일부 경험이 있고 인지도가 높은 창업자들에게 VC들이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치북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 창업자에게 들어간 투자금은 전체 VC 투자의 2.3%에 불과했다. 이 같은 비중은 앞으로 더 줄어들 것이 분명해 보인다. 뚜렷한 간판이 없는 신생 창업자, 여성 창업자, 소수 인종 창업자 등의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현실을 두고 여성 창업자 어맨다 고메즈는 “100만 달러의 매출을 내고도 투자를 받지 못한 나와 달리 뉴먼은 아이디어 하나 내놓아 3억 5000만 달러를 투자받았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이 몇 년 뒤 실리콘밸리의 개방성에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사진 설명
실리콘밸리=정혜진 특파원 made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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