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버'는 승리한다?..中企 빈 일자리 23만개여도 "대기업 갈래"
[편집자주] 사방에서 일할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한편에선 20대 청년들이 일할 곳을 못 구해 고통받고 있다. 일자리 양극화(이중구조)에 따른 '미스매치'(불일치)다. 사실상 '완전고용'에 해당하는 2.1%의 역대 최저 실업률 속 '청년 실업난'이란 아이러니를 극복할 방법은 없을까.
중소기업은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인력난에 시달리는 데 반해 청년층은 원하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취업난에 허덕이는 '일자리 미스매치'(불일치)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빈 일자리가 4년 만에 최대 수준에 이르지만, 청년들은 연봉과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복리후생 등을 이유로 중소기업에 취업하길 꺼린다.
문제는 청년들이 가고 싶어 하는 대기업들은 경력직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이런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청년들에게 업무 경험이나 훈련을 제공하는 등의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17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빈일자리수는 23만4000개 수준으로 2018년 2월 이후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7월에는 22만9000명으로 소폭 줄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빈일자리율은 코로나19(COVID-19) 이후 2020년 0.7%로 떨어진 뒤 올들어 1.1~1.3% 수준을 오가고 있다.
빈일자리수는 구인난 지표 중 하나로 마지막 영업일 현재 구인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 달 이내 일이 시작될 수 있는 일자리수를 의미한다. 빈일자리율은 빈일자리수와 전체 근로자수를 더한 값에서 빈일자리수가 차지하는 비율이다.
빈일자리 발생 사업체는 대부분 근로자수가 300인 미만인 중소기업(22만4000개)이다. 300인 이상 업체의 빈일자리수는 1만개에 불과했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빈일자리수가 1만개 이상으로 많거나 빈일자리율이 1.0% 이상으로 높은 산업은 △제조업 △도소매 △숙박음식 △운수창고 △보건복지 등 5개 산업으로 나타났다. 5개 산업의 빈일자리수는 6월 기준 전체 빈일자리의 74.3%를 차지한다. 인력난이 특히 심한 4개 세부 업종에는 △조선업 △뿌리산업 △음식점·소매업 △택시·버스업 등이 이름을 올렸다.
고용부는 코로나19에 따른 외국인력 입국 지연과 업종별 인력이동 지체, 낙후된 근로환경 등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인력난이 가중됐다고 분석했다. 청년층에서 낮은 임금과 육체노동 등 낙후된 근로환경과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 등으로 조선업이나 뿌리산업에 취업하기를 기피하는 경향도 일자리 불균형의 원인으로 꼽힌다. 청년층이 선호하는 직장은 대부분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수도권 서비스업 등으로 쏠린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중소기업 중에서도 지방에 있는 공단들은 구인난이 심한데, 청년들이 제조업 중소기업을 선택하기보다는 수도권에서 서비스업 일자리를 찾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며 "청년 입장에서는 중소 제조업은 급여도 높지 않고 일 자체가 험하다 보니 장기적으로 미래를 설계할 만한 직장이 아니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정부는 일자리 불균형 해결과 청년층 구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 재학생부터 경력설계·훈련·일경험을 제공하는 등 고용서비스를 고도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내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정부는 구직 단념 청년을 대상으로 취업역량 강화를 위한 중장기 특화 프로그램에 참여·이수한 경우 300만원을 지급하는 '청년도약 프로그램'(가칭)을 도입할 계획이다.
직무 경험을 중시하는 채용 트렌드를 고려해 청년 일경험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청년 일경험지원' 사업도 예산을 올해 50억원에서 내년에는 553억원으로 10배 늘린다.
고용부 관계자는 "코로나19 회복 국면에서 고용률이 높긴 하지만, 청년층의 '쉬었음' 인구는 여전히 많고 졸업 이후 첫 직장에 취업하기까지 걸리는 기간도 12개월에 가까울 정도로 줄어들지 않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용장려금 등 단기 일자리 확보를 위한 지원보다는 청년들이 원하는 직무와 직장을 찾을 수 있도록 직무 경험이나 채용 과정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지원 방향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학생 때부터 정책이 개입하는 방향으로 청년 맞춤형 취업 지원 정책에 예산을 늘렸고, 대기업이 참여하는 양질의 일경험 지원 등 청년들이 체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고용시장에서 미국과 중국 청년들의 표정이 엇갈리고 있다. 미국에선 이례적 구인난 속에 청년들이 '귀한 몸'이 된 반면 중국에선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경제 충격에 기업들의 고용 능력이 떨어지면서 청년 실업이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일할 데는 많아'…구직기준 높아진 美청년들
미국은 수십년래 최악의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7월 미국 기업들의 구인건수는 1120만건으로 전월보다 20만건 증가했다. 20년 만의 최대 수준이다. 구인 대 구직 비율은 2대 1에 가깝다.
미국 실업률은 8월 3.7%까지 떨어졌고 청년층의 고용 상황도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팬데믹 초기 30%에 달했던 미국 청년(16~24세) 실업률은 지난달 8%까지 떨어졌다. 1948년 집계 이래 평균치인 11.7%보다 훨씬 낮다. 블룸버그는 기업들이 인력 부족에 대응해 점점 더 어리고 경험이 적은 청년층에 손을 내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청년층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여전히 팬데믹 이전 수준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졸업 후 서둘러 취업하는 대신 관망하는 이들이 많아졌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촉발된 '대퇴직' 물결 후 직업관이 바뀐 젊은이들이 직장에 복귀하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예상하지 못했던 생사의 위기 앞에서 삶의 가치를 재고하는 이들이 증가하면서 미국에선 Z세대가 주도하는 퇴사 바람이 불었다. 올해 3월엔 자발적 퇴사자수가 454만명으로 역대 최대를 찍기도 했다.
페이스북 모회사인 메타의 인사팀에 근무하던 메디 마차도도 그 중 하나다. 마차도는 지난해 9월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메타에 입사했지만 기대하던 업무 환경이 아님을 깨닫고 6개월 만인 올해 2월에 새 직장을 구하지 않은 채 사직서를 냈다. 그는 CNBC 인터뷰에서 "지금처럼 완전한 구직자 우위의 시장에서 나는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그곳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더 좋은 조건으로 새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발표된 퓨리서치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퇴직이 이어진 올해 3월까지 1년 동안 이직자 중 60%는 임금 상승이라는 결실을 거뒀다고 답했다. 직장에 남은 사람들도 약 절반은 실질 임금이 올랐다고 했다.
기업들은 인재 이탈을 막고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임금 인상과 워라밸 개선 등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MS는 지난해 대퇴사를 막기 위해 전 직원에 1500달러 위로금을 지급했고 애플은 지난 5월 시간제 매장 직원의 최저시급을 22달러로 인상했다. 트위터와 아마존 등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종료됐음에도 재택근무를 이어가기로 했다.
다만 세계적인 금리인상 속에 경기침체가 현실화할 경우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들이 잇따라 고용을 줄이거나 해고에 나설 경우 일자리가 귀해질 수 있어서다. 최근 월마트, 포드, 스냅, 골드만삭스 등 산업 전 분야에서 감원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블룸버그는 "이직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기회의 창이 닫힐지도 모른다"며 "경기침체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면 이직을 검토하던 사람들도 보수를 더 받는 새 직장을 구하기 어려워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中청년 5명 중 1명은 무직…최악은 아직
반면 중국은 청년 실업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 푸링후이 대변인이 지난달 중국 청년(16~24세) 실업률을 발표하면서 "코로나19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신규 고용을 할 능력이 떨어졌다. 청년 고용의 큰 기둥인 서비스 부문 회복이 더디다"고 말했다.
해당 인구의 7월 실업률은 19.9%로 사상 최고치였다. 푸링후이 대변인 설명은 중국 기업들과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중국 내 청년실업 문제는 코로나19 자체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상식적이지 않은 봉쇄 정책 탓이다.
상하이는 극단적 사례였다. 근로자들이 집에 갇혀 생산이 마비된다. 도시 내, 도시간 이동 역시 자유롭지 못해 물류가 멈춘다. 경제 지표는 모두 추락하고 일자리 안정성에 대한 불안으로 지갑을 닫는다. 봉쇄가 풀려도 소비가 예전과 같지 않다보니 기업들은 더 이상 사람을 뽑지 않는다.
상하이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인 이달 초 쓰촨성 성도 청두와 기술도시 선전도 전면 또는 부분 봉쇄가 단행됐다. 봉쇄는 일상이 됐다.
빅테크 규제도 청년실업난을 부추겼다. 신규 고용은 먼 얘기다. 기존 직원들조차 언제 잘릴지 모르는 살얼음판에 놓여 있다. 알리바바와 텐센트 같은 중국 대표 빅테크들마저 4월부터 6월까지 1만4000명 넘게 해고했다.
이런 와중에 올해 1076만명 대졸자가 쏟아져 나왔다. 한 해 대졸자가 1000만명을 넘기기는 올해가 처음이다. 리커창 총리는 틈날 때마다 지방 정부들에 고용을 늘리라고 채근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그는 올 3월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연내 일자리 1100만개를 늘리고 도시 실업률을 5.5%에서 관리하겠다고 공언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3연임을 매듭지을 10월16일 제20차 공산당 당대회는 경제와 고용을 후순위로 밀어냈다. 당대회 이후 정치 시계는 내년 3월 양회를 향하게 된다. 청년실업은 아직 정점을 찍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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